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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윤리, 과학

김영재 |2008.03.07 21:14
조회 29 |추천 0
" 과학은 항상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

교육은 항상 우리를 이렇게 테두리 안에서 가르치고 인식시킨다.
마치 한편의 쇄뇌 교육용 비디오를 보는 듯 하다.

근간에 황박사와 관련된 윤리문제를 누구나 알기 쉽게 국민들에게 드러낸 사건이 있었다.

거 뭔 조약이더냐..그와 관련된 규약(과학자의 난자 제공은 불법)을 어긴 후 황박사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는 말했다.

" ...(난자 제공 제안을) 반대했었고, 이후 제공된 난자의 출처는 몰랐다. 근간에 알게 되었다..."라고,

굳이 누군가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황박사의 사실 은폐 그 자체도 잘못이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언론도 잘못이 있다.(개인적인 견해다.)


하지만, 누군가는 또는 언젠가는 꼭 밝혀져야 할 논제 였었던 것은 분명하다.
아~ 말하려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다.

과학은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옛 과학자들이 말했지만,
그건 스스로를 옭아매는 밧줄이 아닐까 생각한다.
윤리의 테두리의 범위를 정하기 전에는 이런 윤리문제의 논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선가 반 윤리적인 의료행위나 기타의 행위(현 윤리 기준에 따름) 가 이루어져도
누군가가 나서서 그것은 잘못되었다고 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잘못되었다고 인식할 정도의 사회가 존재했나.
하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여러 종교단체나 기타 단체의 비판 대상의 소지가 있다.
절대적으로 가정이고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결국 윤리적인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정상적인 종교는 기본 윤리가 포함된다.
그 예로 인간존중(생명 존중), 주위 사람들간의 사랑...
그리고 거 뭐랄까 섬기는 마음???

하나같이 생명존중의 정신은 포함이 되어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생각 해 본적 있는가?

그런 현상의 시점은 인간의 본능 아니, 생명의 본질에서 부터
시작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럼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생명을 존중하는 윤리의식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여기서 사람은 애초부터 아무런 감정이나 선하다 악하다 하는 감정이 없이 태어난다는
가정을 하겠다.

그러면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은 주위 환경에 맞게 성장해 나간다.그리고 나중에 번식을 한다.

왜 생명들이 태어나는 것일까?
왜 짝찟기를 하는가?

그것은 본능이다. 유전자적인 '번식' 본능에 의해 사람이나 동물들, 즉 생명을 가진 개체들은
하나같이 '번식'이란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번식'이 아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른 개체의 것보다 더 많이 더 멀리 퍼뜨리는것이
본능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한 쌍의 개체들과 짝찟기를 하지 않고,
상대를 바꾸어 가면서 짝찟기를 행하는 것이다.
(물론 가끔씩 예외도 발생한다.)

인간도 이에 대해서는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아무 먼 옛날 과거로 돌아갔다는 가정이다.)
쌍의 분별 없이 좀 더 나은 좀 더 강한 유전자 형질을 가진 자손을 '번식'시키려 했을 것이다.
이에 따르는 분쟁 또한 발생했던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유전적인 형질을 좀 더 넓게 퍼뜨리기 위해서는 다른 개체의 존재를
없애는 방법도 이 중 한가지 였을 것이다.

지금에서도 나타나는 예를 들면, 뻐꾸기의 새끼는 다른 새 둥지의 새끼들을
본능적으로 죽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자신 혼자만 남을때까지..)


이렇게 본능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는 행위는 인간도 행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지능이 뛰어나 서로간의 필요없는 분쟁은 번식을 방해한다고 느꼈고,
그로 인해 서로간의 약속인 조약등이 맺어졌을 것이다.
이런 조약들을 좀더 보편화하고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그것 중 하나가 바로 종교가 아닐까 한다.(어디까지나 가정이다. 터치하지 말아달라)
누구나 쉽게 받아들이고, 군말 없이 절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사람이 다가갈 수도 없고, 이해의 필요성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 그 자체였다.

그 존재를 '신'이라 지칭하고, 그를 따르지 않는 것은 유전자의 단종(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럼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는가?
왜 그 '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지금 현 세계에서 드러나듯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냐고...

당연한 의문이다. 그러나 답은 간단하다.
생성 시기와 생성 장소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시기와 장소가 다르므로...
교과서에서 배운 세계 10대 문명에도 드러나지 않는가...그 당시에도 종교는 아니었어도
그와 비슷한 형태가 존재했을 것이다.

문명이 많았음에, 그 존재들도 수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 시기에는 왜 이리 한정적일까 하는 것이다.
천천히 이에 답하겠다.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상당히 과학적이면서도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시작 하려 한다.
원래 부터 에너지는 항상 보존되어 있고, 상태 변화만 될 뿐이라는 것을 과학시간에 배웠을 것이라고 본다.
질량보존의 법칙...등등 그렇다 과학적으로 에너지는 항상 보존된다.

인간의 에너지. 즉 동양에서는 기(氣)라고 표현하고 서양에서는...모르겠다.<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 height="1" src="http://netnabi.tistory.com/plugin/CallBack_bootstrapperSrc" wmode="transparent" invokeurls="false" autostart="false" id="bootstrappernetnabitistorycom319741" allowscriptaccess="never" enablecontextmenu="false" flashvars="&callbackId=netnabitistorycom319741&host=http://netnabi.tistory.com&embedCodeSrc=http%3A%2F%2Fnetnabi.tistory.com%2Fplugin%2FCallBack_bootstrapper%3F%26src%3Dhttp%3A%2F%2Fcfs.tistory.com%2Fblog%2Fplugins%2FCallBack%2Fcallback%26id%3D31%26callbackId%3Dnetnabitistorycom319741%26destDocId%3Dcallbacknestnetnabitistorycom319741%26host%3Dhttp%3A%2F%2Fnetnabi.tistory.com%26float%3Dleft" swliveconnect="true">
인간에게는 활동하는데 필요한 육체적 에너지 말고도, 정신적으로 조정하고 활동을 조절하는 정신적 에너지도
가지고 있다. ( 이렇게 2가지로 분리할 수도 있겠다. )

육체적 에너지는 에너지를 섭취하고 움직임으로써 그 순환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에너지도 그와 같은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위에서 꺼냈던 '본능(여기서는 번식)'도 위의 정신적인 에너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났기에 서로의 '번식'이 안정적으로 원하는 수준까지 끌어오르기 위해서
서로간의 조약 또는 약속을 했을 것이라고 위에서 말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약속이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은 퍼져나가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사실 사람 혼자서 훌쩍 뛰어나가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히 살아가기 쉬운 환경에서 여럿이 모여 살다보면, 땅이 좁아진다.

생각해보라. 50 마리용 닭장 속에 100마리 200마리 넣으면 어떻게 되는가?
답답해지고 병에 걸리기 쉬워 죽기 쉽지 않은가? 그렇다고 닭들은 닭장에서 탈출할 능력은 되지 않는다.
자연스레 죽어간다.

하지만, 인간들은 달랐다. 이런 인구의 증가로 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너지)는 분출이 되야 했고,
그것은 '폭력'이라는 또 다른 '본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원래부터 폭력은 본능이 아니다. 단지 생존(번식) 이라는 본능에 충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필수 불가결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이래저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폭력이란 형태로 이루어져 분출이 되었으며,
이런 에너지(스트레스)가 같은 흐름을 탔을때,
인간이 '전쟁'이라 불리우는 초대형 폭력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여기서도 인간은 지능이 뛰어나서, 다른 이들과 전쟁을 일으킬때에도 '명분'이라는 허울 좋은 방패막이를
이용했다. 그것 중 하나가 '종교 전쟁'이 아니었을까 한다. 현재에도 엄연히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원래의 종교가 그 당시에 왜곡당하고 악이용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종교든 이런 구절은 항상 갖고 있다.

' 나 이외의 다른 신은 섬기지 말라 ' 라고.

이것은 너무나도 악용하기에 알맞은 구절이 아닌가. 종교가 형성되었을 당시의
미래에 분명히 일어나게 될 분쟁의 알맞은 '명분'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이미 이런 정신적인 분출구는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게 아닐까 한다.

그럼 또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현재는 종교 전쟁도 없고, 철저하게 분쟁을 방지하는 대책도 만들어서 시행중인데 그게 무슨 소리냐고..

그건 개풀 뜯어 먹는 소리다.
물론 일상생활(코리아 South.Korea)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살인이나 폭력 사건등은
가볍게 넘기겠지만, 이미 전 세계는 엄청난 빈부 격차와 끊임없는 종교분쟁으로 인해 지쳐있다.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마저도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폭탄 맞아 죽고,
윤리의 사각지대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전 세계에 뿌려지는 신문 해럴드 트리뷴(Herald Tribune)을 본 적 있는가?
매일 나오는 기사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으로 인한 사망소식들이 끊이질 않는다.

가끔씩 여러 잘 사는 서방국가와 기타 단체가 어렵게 사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를 도와주는 기사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은 도움이나 구호라고 볼 수가 없는것은 당연한 사실 아닌가.

이유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과 관련된 만행은 누가 주도했는지,
왜 그들이 그토록 못살고 힘겹게 되었는지는 우리들이 더욱 더 알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구호 활동들은 거의 '보상'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빗나갔다.

위에서 얘기했던 종교의 수가 왜 줄었는가 한 이유는
문명간의 분쟁 또는 전쟁에 따르고, 그 이후에 오는 지배 구조에 따라
변해왔을 것이다.

강한것이 약한것을 집어먹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기까지 오다보니 결론은 어디론가 쑥 달아나 버린 듯하다.

윤리 얘기에서 이렇게까지 흘러나와버린듯...

옛부터 그랬듯이 스스로 옭아 맨 밧줄은 스스로 풀게 되어 있다.
매는 법을 알고서 묶었듯이 푸는 법 또한 이미 알고 있다. 단지 풀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인간 스스로 정해버린 윤리('번식'을 편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는
언젠가는 완화되거나 변색되 버릴 것이다.
스스로 묶여서 발생하는 정신적인 에너지는 분출할 공간을 찾아 헤맬 것이고,
이렇게 윤리 외 적인 문제로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만이 끝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이런 현상들은
끝없이 나타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이와 같이 항상 똑같은 윤리로 옭아매어
분출하는 에너지를 강제로 막을 것인가.

다른 방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윤리적인 규정들을 완화하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밀려나올 비윤리적인(현 세태에 맞춘)행동들을
감당이나 할 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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