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 치니퀴 신부,
해설 - 레이 W. 존슨
나는 1809년에 한 로마 천주교인으로 출생하여 세례를 받고 1833년에 캐나다에서 신부의 임직을 받았다. 나는 지금 74세이다. 그러니까 내가 로마 천주교회의 위엄 있는 신부의 직분을 받은 지 오십 년이 되는 셈이다.
이십 오년 동안 나는 그 천주교회의 신부였다. 또 사실에 있어서 나는 로마 천주교회를 사랑하였고, 교회도 나를 사랑해 주었다. 나는 내 교회를 위하여서는 내 피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라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으며, 미 대륙과 그리고 전 세계 카톨릭교회의 세력과 권위의 확장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을 천만 번이라도 바칠 용의가 있었다.
나의 큰 포부는 신교도(新敎徒)들을 회개케 하여 우리의 천주교회로 돌아오게 하려는 일이었다. 그것은 로마 천주교회 밖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나는 확신하고 있었고 소위 신교도라는 무리들은 다 멸망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난 지 몇 해 후 우리집은 학교라고는 없는 어떤 곳에 가서 살았다. 나의 모친은 나의 최초의 선생님이 되셨고 어머님이 내게 글 읽기를 가르치시는 데 쓰신 최초의 책은 성경이었다. 내가 8,9 세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성경을 읽었고, 그리고 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의 모친은 그가 원하시는 대로 내가 읽을 장(章)들을 택해 주셨고, 그리고 그것들을 읽는 나는 바깥에서 나를 부르는 다른 아이들의 청을 여러번 거절했다. 나는 어떤 성경 말씀을 다른 구절들보다 특별히 더 사랑하였으며 그것들을 마음에 익혀 두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 별세하신 후 성경책은 우리집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아마도 전에 그 성경을 갖기를 원하던 어느 신부가 가져간 모양이었다. 이 성경은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의 모든 근원이 되어 있다. 그것은 내가 아직 어렸을 때에 내 영혼에 빛을 켜 주었으며,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하는 것은 그 빛은 내 일생토록 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빛은 내 영혼을 늘 밝혀 왔었다.
내가 구속받은 자들 중의 하나요, 빛을 받은 자들 중의 하나요, 그리고 진리의 맑은 샘에서 마시는 자라는 이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오늘날 느낀다는 이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의 자비로 말미암아 그 사랑하던 성경을 읽는 데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로마 천주교의 신부들은 교인들에게 성경을 읽게 하지 않느냐?”
물론 읽게 한다. 그렇게 되어 있음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날 거의 전 세계를 통하여 로마 천주교회는 신도들에게 성경 읽기를 허락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어떤 천주교 신자의 가정에나 성경책들이 있음을 본다.
그러나 내가 이미 모든 과거를 고백하기로 한 바에는 모든 사실을 다 말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신부는 그가 목회하고 있는 신도들에게 성경을 줄 때에, 또는 신부가 카톨릭교회로부터 성경을 받을 때 거기에는 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이란, 신부나 신자들이 성경을 읽을 수는 있으되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양심이나 지식에 의하여, 혹은 그들의 마음대로 그것을 단 한번이라도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신부의 임직을 받았을 때에 나는 법왕의 승낙에 의해서만 성경을 해석하겠다고 서약했었다.
형제들이여, 오늘 로마 천주교도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그들은 성경을 읽을 수 있는가? 고 물어보라. 그들은 “물론 읽을 수 있고 말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해석할 수 있느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신부들은 교도들에게, 그리고 교회는 신부들에게 그들 자신의 지혜로나 양심에 의해서 성경의 단 한 자라도 해석해서는 결코 안되며, 단 한 마디라도 그들 스스로 해석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이라고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실지에 있어서 카톨릭 신부들은 교도들에게 “만일 여러분들이 자신의 지혜로써 성경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구원에서 떨어지고 맙니다. 성경은 가장 위험한 책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읽지 않는 편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와 같은 교훈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로 신부들이나 신도들이 다 성경을 가지고는 있어도 그들은 그것을 읽지는 않는다. 가령 여러분들이 어떤 책을 읽어도 여러분들 스스로는 단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다고 설득당했다면, 여러분은 그 책을 읽겠는가? 여러분들은 읽어도 단 한 줄도 알 수 없다는 그런 책을 읽으며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겠는가?
그런데 형제들이여, 이것은 로마 천주교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많은 숫자의 성경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들은 신부들이나 천주교도들의 책상 위에 성경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일만 명의 신부들 가운데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거기에 관심을 두는 신부는 단 두 사람도 없다. 그들은 여기 저기서 몇 장씩을 읽을 뿐인 것이다.
로마 천주교회에서는 성경은 인봉(印封)된 책이다. 그러나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의 귀중성을 마음에 분명히 깨달았었고, 내가 신부가 된 후로는 나 자신이 강한 신앙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천주교회를 변호할 수 있기 위하여 나는 계속해서 성경을 읽었다.
당시 나의 큰 목표는 모든 미국의 신교의 목사들의 주장을 헐어버리는 일이었다. 나는 ‘로마 법왕들’이라는 책 한 권을 구하여 밤낮으로 성경에 비추어 연구하였다. 그것은 신교도들에 대하여 하고 싶었던 큰 투쟁을 위한 좋은 준비였다. 나는 또한 이 연구를 로마 천주교회에 대한 내 신앙을 더욱 두텁게 할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내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한 신비스러운 음성은 나를 향하여 “로마 천주교에서는 성경의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의 유전(遺?)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하는 것이다. 고요한 밤에, 그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소리내어 울었다. 그러나 그 음성은 우레같은 소리로 되풀이하여 나에게 들려왔다. 나는 거룩한 로마 천주교회 안에서만 살다가 죽기를 원하면서 하나님께 그 음성을 잠잠케 해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래도 그 음성은 더욱 크게 들려올 뿐이었다. 이와 같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천주교회의 속박으로부터 놓아 주시려고 교훈하셨지만, 그러나 처음에 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광명한 구원의 빛을 가지고 거듭 내게 임하셨어도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지금 천주교 신부들에 대하여 조금도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러분들 중에 어떤 이는 그들에 대하여 내가 어떤 악감을 갖고 있는 것 같이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불쌍한 이들이 과거의 나와 같이 지금 주님을 대적하고 있으며, 내가 그 때 가련한 자였던 것과 같이 그들은 가련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그들을 위하여 울고 있다. 만일, 천주교 신부의 고통들 가운데 하나를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여러분들은 로마 천주교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실 것이다.
몬트리올에는 일만 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한 훌륭한 성당이 있다. 나는 자주 그 성당에서 설교한 일이 있었는데, 어느 날 사교(司敎)가 나에게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설교를 부탁하므로 기꺼이 승낙하고, 나는 그 때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바와, 다른 신부들이 믿고 아무데서나 설교하는 바를 신도들에게 말하였다. 그 때 내가 한 설교의 골자는 다음과 같았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어떤 사람이 그의 임금에게 득죄(得罪)를 하였을 때에, 또는 그가 섬기는 황제에게 큰 죄를 범하였을 때에, 그는 직접 몸소 왕 앞에 나아가 용서를 구하겠습니까? 그가 그의 임금의 용서를 받으려 할진대 그와 같은 형편에 처해 있으면서 감히 자신이 왕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안될 것이올시다. 임금은 그를 책망할 것이며 처벌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어떻게 해야만 되겠습니까? 그는 그 자신이 임금께 가서 사죄하는 대신에, 임금의 친구들 가운데 한 사람, 혹은 그의 중신들 가운데서, 혹은 때로는 그의 누이나 모친을 택하여 그들에게 그의 사정을 의탁하지 않겠습니까? 그리하면 그들은 임금께 나아가 그 죄인의 용서를 위해서 진언(進言)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대게 임금은 죄인 자신 같으면 거절할 것을 그들을 보아서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들은 다 죄인입니다. 우리들은 다 그 위대하신 왕, 곧 만왕의 왕께 범죄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를 향하여 반역의 깃발을 들었었습니다. 우리들은 그의 계명을 우리들의 발로 짓밟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우리를 향하여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죄악이 가득한 우리들의 더러운 손을 들고 우리 스스로 그에게 나아가잔 말입니까? 안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왕 되신 예수님의 어머니, 곧 그의 우편에 계시는 마리아가 계십니다. 신실한 아들이라면 그의 사랑하는 모친의 부탁을 물리치지 아니하듯이, 예수님은 결코 마리아의 부탁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는 한 번도 그의 모친의 부탁을 거절하신 일이 없으십니다. 모친의 원하는 바를 들어 줌으로 그를 즐겁게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모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마리아의 아들이시며 그는 그의 모친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의 모친의 부탁을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신 것과 같이 그는 오늘도 그 모친의 부탁을 물리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아, 우리들 자신으로서는, 죄악이 가득한 우리들 직접으로는 그 위대하신 왕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들의 소원을 그의 성모에게 부탁하십니다. 그러면 그는 스스로 그의 발 아래 나아가 우리를 대신하여 용서를 얻어 주실 것입니다. 그가 우리들의 용서를 구하시면 반드시 응낙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성모께서는 또한 그리스도의 왕국에 거할 곳을, 우리를 위해 구하여 얻어 주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들의 죄를 기억치 않도록 예수님께 간구하시며, 여러분들에게 참된 회개의 길을 베푸시며,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그의 모친이 구하는 것을 모두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청중들은 그들을 위하여 밤낮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에서 중재(仲裁)해 주는 그와 같은 변호자를 가졌다는 생각에서 기뻐하는 나머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마리아가 그들의 죄의 용서를 예수님께 구하여 얻어 준다는 말을 듣고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때에 나는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진리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상식적인 종교적 형태요, 이를 반대할 말이란 도무지 없는 줄 생각했다. 설교 후 주교는 내게 와서 나에게 축복해 주시고 감사하며 말하기를, 나의 그 설교는 몬트리올을 크게 축복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날 밤 성경을 손에 들고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에 나는 내가 그 날 아침에 한 그 훌륭한 설교로 말미암아 기쁨에 넘치었다. 나는 성경을 펴서 마태복음 12장 46절에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을 읽고 났을 때에 내 귀에는 전에 듣던 그 우레 같은 소리보다 더 큰 음성이 들려 왔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치니퀴야, 너는 오늘 아침에 마리아가 예수께 구한 것은 다 얻었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예수께서 설교하시던 곳에 마리아가 도착하였을 때에 그곳은 청중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어 마리아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리아는 보통 모친들이 그런 경우에 취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소리를 높여 예수를 불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모친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의 청을 들으셨던가? 아니다. 그는 모친의 말을 듣지 않으셨다. 그것은 대중 앞에서의 책망이며 마리아도 그것을 그렇게 느꼈다. 곁에 있던 사람들은 놀랐다. 그들은 어리둥절해졌고 거의 분개까지 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하여 말하기를 “왜 나와서 모친을 대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셨던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그의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과 나의 자매들을!”이라고 하셨다. 마리아는 그의 청을 거절당하였을 뿐 아니라, 공중 앞에서 무시까지 당하였다.“
그리고 또 그 음성은 내게 다시 우레같은 능력을 말하기를 “다시금 마가복음 3장 31-35절을 읽으라”고 하였다. 또한 누가복음 8장 19-21절을 보면 거기에도 같은 사건의 기록이 있다. 예수께서는 그 모친의 청을 들으시기는커녕 도리어 그를 공중 앞에서 책망하셨던 것이다. 그 음성은 다시금 굉장한 힘을 가지고 말하기를 “예수께서는 그가 어렸을 때에는 요셉과 그의 모친께 순종하셨으나 그가 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의 구주로서, 그리고 인류의 위대한 빛으로 나타내시게 되셨을 때, 마리아는 사라져야만 했었고 빛과 생명을 얻기 위하여 세상의 눈이 바라다 보아야 할 이는 예수 뿐이었었다!”고 하였다.
그 음성은 밤이 새도록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치니퀴, 치니퀴, 너는 오늘 아침에 거짓말을 하였다. 너는 꽤 많은 우화(寓話)와 무의미한 이야기들을 전파하고 있었는데, 네가 마리아가 예수로부터 용서를 얻어줄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너는 성경과 반대되는 설교를 하였다.”라고. 나는 기도하면서 울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했었다.
그 이튿날 아침 나는 나를 아침식사에 초대한 주교보(主敎補)인 프린스 사교와 같이 식탁에 앉았다.
그는 “치니퀴 신부님, 당신은 지난 밤을 눈물로 새운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이지요?” 하고 물었다.
“사교님, 옳습니다. 저의 마음은 심히 괴롭습니다.”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어찌된 일이요?”
“아, 여기에선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한 시간 동안만 주교님의 방에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놀라운,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교와 같이 밖으로 나온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사교님은, 제가 예수께서는 언제나 그의 모친의 청을 들으신다는 설교를 마쳤을 때에 저를 크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교님, 어젯밤 저는 사교님의 음성보다 더 강한 다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염려는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만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은, 우리 로마 천주교의 신부들이나 사교님들이,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가 구하는 용서를 받아낼 권능을 가졌다고 설교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교님, 이것은 두렵건대 잔악하고도 저주 받을 과오입니다.”
사교는 “치니퀴 신부님,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신교도입니까?”라고 말하였다.
“아닙니다. 저는 신교도가 아닙니다. (성서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기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신교도라고 불리웠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어제 제가 설교한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과, 그리고 사교님께서도 이후에 예수께서는 그 모친의 청을 한 번도 거절하신 일이 없었은즉 우리들은 마리아에게 간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설교를 하시면, 그것은 곧 거짓말인 것을 저는 진심으로 두렵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교는 “치니퀴 신부님, 너무 깊이 들어갑니다.” 하였다.
“아닙니다. 사교님, 이야기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여기에 복음서가 있습니다. 읽어 보십시오.”
나는 성경을 사교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는 내가 이미 인용한 구절을 그 자신의 눈으로 읽었다. 내가 느낀 바로는 그 사교는 그 구절들을 처음으로 읽는 것 같았다. 그 불쌍한 사교는 너무나 놀라서 말을 못하고 떨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내게 묻기를 “이게 무슨 뜻입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복음서입니다. 지금 사교님이 읽으신 바와 같이 마리아가 예수님께 어떤 부탁을 하러 왔었는데 그는 마리아를 책망하셨을 뿐 아니라 그의 모친으로 여기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공중 앞에서 행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는 사람으로서의 예수의 모친이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의 모친이 아님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사교는 정신을 잃은 사람같이 되어 내게 답변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몇 가지 질문을 하겠노라고 말하고, “사교님, 사교님과 저를 십자가 위에서 구해주신 이는 누굽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시지”라고 사교는 대답하였다.
“그러면 피를 흘리면서 우리들의 죄 값을 치러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마리아입니까, 예수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라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런데 사교님, 예수님과 마리아가 이 세상에 계실 때 누가 죄인들을 더 사랑하셨습니까?”
다시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 당시에 죄인이 구원 받고자 마리아에게 나아온 일이 있습니까?”
“없었지요.”
“어떤 죄인이건 구원 받기 위하여 그가 예수님께로 나아온 사실을 기억하십니까?”
“예,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까?”
“결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향하여, ‘마리아에게로 나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구원해 주리라.’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쌍한 죄인들을 향하여, ‘내게로 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예, 그가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말씀들을 취소하신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죄인을 구원하는 데 누가 더 권세를 가졌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아! 그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면 사교님, 예수님과 마리아는 지금 천당에 계시는데, 성경에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의 사업에 대한 권능을 마리아에게 위임하셨다는 말씀이 있으면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지요.” 하고 사교는 대답하였다.
“사교님,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오직 예수님에게만 나아가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불쌍한 죄인들을 마리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까? 사교님께서 이제 고백하신 바와 같이, 마리아는 죄인들에 대한 권능이나 자비, 사랑, 그리고 긍휼에 있어서 예수님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처지에서 말입니다.”
그러자 그 불쌍한 사교는 마치 사형 선고나 받은 사람같이 되었다. 그는 내 앞에서 떨다가 내가 한 말에 답변을 하지 못하므로 용무를 빙자하여 내 앞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회심(回心)하지 못했었다. 아직도 나를 교황의 발에 잡아 매고 있는 많은 고리들이 있었다. 나를 얽매고 있는 사슬을 내가 깨뜨릴 수 있기 전에 나는 더 많은 싸움들을 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그러한 일로 인하여 마음이 괴로웠으나, 교회를 위한 열심은 잃지 않고 있었다. 사교들은 내게 중대한 직책들을 주었으며, 교황은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 주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같이 점차로 여러 가지 면으로 교회를 개혁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1851년 나는 프랑스 식민지를 창설하기 위하여 일리노이주로 갔다. 나는 프랑스계(系) 캐나다인 칠만 오천 명을 인솔하고 로마 천주교회의 소유로 만들려는 일리노이주의 대초원(大草原)에 정착하였다. 나는 식민 사업을 시작한 후 부자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많은 성경을 사서 거의 매 가호마다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사교는 나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서 크게 노하였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로마 천주교회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힘이 자라는 한 내가 맡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뜻대로 인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때에 우리 프랑스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과오를 시카고의 주교(主敎)가 저질렀다. 그것은 큰 범죄였으며 나는 그 교황에게 상소하여 주교를 파면케 했다. 그 대신에 다른 주교가 부임해 왔는데 그는 부주교(副主敎)를 시켜서 나를 방문케 하였다.
부주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치니퀴 신부님, 전 주교를 당신이 해임케 한 데 대해서는 우리가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 사람들은, 신부님은 이미 로마 천주교에 속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신부님은 이단이며, 신교도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데 - 신부님과 또 신부님이 지도하는 여러 신도들이 여전히 선량한 로마 천주교도들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널리 증명할 수 있는 한 문서를 만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찬성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내 말을 받아 부주교는 “교황께서 보내신 주교께서는 신부님으로부터 그와 같은 문서를 받고자 원하십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종이를 펴 놓았다. 밤낮으로 나에게 말하면서 내 신앙을 어지럽히던 그 음성을 잠잠케 하는 데 가장 좋은 기회같이 보였다. 나는 이 문서를 줌으로써 우리들이 로마 천주교회 내에서 다만 사람의 유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따르고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고 싶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을 적었다.
“주교님, 일리노이주 식민지에 거주하는 우리들 프랑스계 캐나다인은 신성 로마 천주교회 안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우리들은 이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음을 믿사옵고 나아가서는 이것을 주교님께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타나 있는 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서 주교님의 권위 앞에 순종할 것을 서약하나이다.”
나는 이 글에 서명을 하고 교도들에게도 서명하도록 주었다. 그들의 서명이 끝나자 나는 그것을 부주교에게 주고 그의 의향을 물었다. 그는 말하기를,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였다. 그는, 주교께서도 그 고백서를 수리하실 것이며 모든 일이 무사할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주교도 그 고백서를 읽고 역시 그것이 옳게 되었음을 알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 고백서를 주시니 기쁘기 짝이 없소. 우리는 신부님과 신부님의 교도들이 신교도나 되지 않을까 하여 염려하던 중이오.”라고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가 그 때까지도 여전히 하나님의 화평을 이루는 것보다도 일개의 인간인 주교와의 화평을 이루는 일을 더 즐거워하였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주교는 나에게 ‘화목의 서장(書狀)’을 주었고 내가 그의 훌륭한 신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나도 계속 유임할 것을 결심하고 나의 고향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하심을 따라 나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필경에는 하나님과의 화평이 아닌, 사람과의 화평을 깨뜨려 주신 것이다.
내가 물러 나온 후 주교는 전신국에 가서 다른 주교들에게 나의 고백문을 전송(電送)하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들은 당일로 그에게 일제히 회신하기를,
“치니퀴는 가장한 신교도이며, 주교님까지 신교도로 만들려고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십니까? 그가 고백서를 낸 것은 주교님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게입니다. 그 고백을 그냥 두면 주교님 자신도 신교도입니다.” 하였다.
열흘이 지난 후 나는 주교로부터 편지를 받고 그에게 갔더니, 그는 그가 일전에 나에게 준 ‘화목의 서장’을 가지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 내어 주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일전에 자기가 준 편지임에 틀림이 없음을 확인한 주교는 난로 앞으로 달려가서 그것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것을 꺼내려고 난로로 달려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편지는 타버리고 말았다.
나는 주교를 향하여 “주교님, 무슨 연고로 저의 능낙도 없이 저의 소유물인 문서를 제 손에서 빼앗아 태웁니까?” 하고 물었다.
“치니퀴 신부, 나는 당신의 상사(上司)요. 나는 변명할 필요가 없소.” 하고 말하였다.
나는,
“주교님은 과연 저의 상사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일개의 보잘 것 없는 신부입니다. 그러나 주교님이나 저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제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권리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 앞에서 각하의 불의에 대해서 항의합니다.” 하였다.
“그대는 내게 설교를 하러 왔소?”
“아닙니다 주교님. 그러나 주교님은 저를 모욕하시려고 이곳에 부르시지 않았는가 합니다.”
“치니퀴 신부, 당신이 잘 알다시피 진정한 뜻의 고백서가 아닌 문서를 당신이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부른 것이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러면 어떠한 순종의 표시를 원하십니까?”
“먼저, ‘그리스도의 복음에 나타나 있는 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라는 이 문구부터 없애야 하고, 그저 단순하게 무조건으로 나의 권위에 순종하기를 약속할 것이며, 내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것이오.”
나는 자세를 바로 잡고 이렇게 말하였다.
“주교님, 주교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은 순종의 표시가 아니라 경배의 표시입니다.
저는 그것을 거부합니다.”
“그런 고백서를 내게 줄 수 없다면 당신은 로마 천주교회의 신부로 있을 수 없소.”
나는 나의 두 손을 하나님께 들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영원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하고는 모자를 집어 들고 주교의 앞에서 물러 나왔다.
나는 호텔로 돌아와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일들을 검토해 보았다. 그 때에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로마 천주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신교도들의 입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리고 천주교회의 원수들로부터가 아니라, 바로 로마 천주교회 자신의 입을 통해서 이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만 하나의 형식적인 죽은 문서로 돌려 버리지 않는 이상 더 천주교회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음을 깨달았으며, 얼마 아니되서 내가 로마 천주교와 손을 끊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 형제들이여, 그 때 나에게는 어쩌면 그렇게도 어두운 구름이 엄습해 왔었던가! 나는 암담한 마음 속에서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의 하나님, 왜 이처럼 어두운 구름이 나의 심령을 두르나이까?’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취해야 할 길을 보여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한동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는 마침내 로마 천주교회와의 관계를 끊었다. 나는 나의 지금까지의 지위, 명예, 형제와 자매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단념하였다. 나는 교황과 사교들, 그리고 신부들이 신문지상을 통하여 혹은 강단에서 나를 공격할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나의 명예와 이름과, 그리고 아마도 생명까지도 빼앗아 갈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로마 천주교와 더불어 결사적인 투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고, 또 나의 친구 중 어느 누가 이 싸움에 임할 나를 도와줄 것인가 하고 찾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나의 절친한 친구들까지도 나를 욕하고 나를 반역자로 몰 것만이 틀림없었다. 내가 인도해 오던 사람들도 나를 배척할 것이고, 나의 많은 친구들이 살고 있던 정든 고향에서 나를 저주할 것이고,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나를 몹시 꺼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혹시 신교도들 가운데 나의 친구가 될 사람이 있는가 하여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나는 일생을 통하여 그들을 비난하고 또한 배격하는 글들을 써 왔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 싸움을 나 혼자서만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모든 일들은 나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고, 만일 하나님께서 그 무서운 시간에 나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셨던들 나는 능히 견딜 수가 없었을 것이다.
호텔의 방을 나와서,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다만 나를 반역자라고 하여 멸시하는 사람들만이 있을 차가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먼 곳에 계시는 것 같았으나, 그는 실상은 가까이 계셨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내 가슴에 떠올랐다. ‘네게는 성경이 있지 않느냐. 읽어라. 그리하면 빛을 발견하리라.’
나는 떨리는 손으로 성경을 무릎 위에 놓고 폈다. 내가 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펴신 것이었다. 내 눈이 고린도전서
7장 23절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에는,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을 읽자, 나의 마음에는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나는 사람이 깨달을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그 위대한 구원의 신비를 확연히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예수님은 나를 사셨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나를 사셨다면 그는 나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렇다. 나는 구원 받은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사업은 완전하시다! 그러므로 나는 온전한 구원 받은 자이다. - 예수님은 나를 절반 만큼만 구원하실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어린 양의 피로써 구원 받은 것이다. - 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구원 받은 것이다.’
이 말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달고 아름다운지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는데 그것은 마치 생명의 샘이 열려 새로운 빛이 홍수같이 내 심령 위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전에 생각하였던 바와 같이 마리아에게 나아감으로 구원 받을 수 없다. 나는 연옥에서 구원을 받거나 혹은 속죄표 혹은 고해(告解)로써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 받은 것이다.’ 그러자 로마 천주교의 모든 거짓된 교리들은 마치 탑이 그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듯 내 마음 속에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의 천사들도 나보다 더 행복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즐거움과 평안함을 느꼈다. 어린양의 보혈이 죄에 시달린 나의 영혼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기쁨에 넘친 큰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아, 사랑하는 예수님, 나는 이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아, 하나님의 선물이 되신 예수님, 내가 당신을 영접합니다! 나의 마음을 주관하사 영세토록 당신의 것으로 보존하소서! 하나님의 선물 되신 주여, 내 안에 거하시며 나를 정결케 하시고 강하게 하소서! 내 안에 거하사 나의 길이 되시며, 나의 빛이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소서! 나로 하여금 이제 영원토록 당신 안에 거하게 하소서. 그러나 사랑하는 예수님, 나만 구원하시지 마옵시고 내가 인도하던 사람들도 구원하소서. 그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선물을 보여 주시옵소서! 아, 그들도 당신을 영접하고 지금의 나처럼 마음이 부해지며 행복하게 하소서.”
이리하여 나는 비로소 그처럼 단순하고 아름답고 숭고하며 위대하신, 빛 되신 예수님과 우리들이 많은 구원의 위대한 신비를 발견하였다. 나는 내 심령의 문을 열고 이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을 받음으로 나는 부해졌다. 형제들이여, 구원은 선물이다. 여러분들의 할 일은 다만 그 구원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또 그 구원을 주신 이를 사랑하는 것 뿐이다. 나는 복음서에다 입을 맞추고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전파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였다.
나는 주일 아침 우리들의 식민지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들은 심히 흥분되어 나에게 밀려 와서 소식을 물었다. 그들이 교회 속에 모였을 때에 나는 그들에게 내가 얻은 구원의 선물을 소개하였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나는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것과, 예수님을 통해서 나는 죄사함과 영생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그들도 이 선물을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이렇게 물어 보았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영원히 로마 천주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나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보다 교황을, 그리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예수님의 이름보다 오히려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신다면 일어서서 저에게 표시해 주십시오.”
내가 놀란 것은, 거기에 앉았던 청중들은 한 사람도 일어나지 않고 교회당 안에는 그들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높아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이 내게 떠나갈 것을 요구할 줄 생각했었으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 그들에게는 어떤 변화 - 사람의 말로써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나는 기쁨에 넘쳐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제 나를 구원하신 능하신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나와 같이 홍해를 건너 언약의 땅에 들어가십니다. 나와 더불어 여러분들은 이 크신 선물을 영접하십시다. 그리하면 여러분들은 이 크신 선물을 영접하십시다. 그리하면 여러분들도 이 선물 안에서 행복해지며 부유해질 것입니다. 달리 물어 보겠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교황보다 그리스도를 따르며 마리아의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며, 또는 사후의 여러분들의 구원에 있어서 로마 천주교가 말하는 연옥보다도, 여러분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어린 양의 피에만 여러분들의 믿음을 의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시면, 이제 어떤 신부로 하여금 로마 천주교의 교리들을 설교케 하는 것보다, 나로 하여금 참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케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시거든, 지금 기립하심으로써 내게 표시해 주십시오. - 나는 여러분들의 사람입니다.”
그러자 회중들은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모두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내가 그들과 함께 있어 주기를 간구하는 것이었다.
선물, 곧 위대하고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은 처음으로 그들의 눈앞에 그 본연(本然)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그 선물의 귀중함을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 들였다. 회중들의 기쁨은 말로 다 전할 수가 없다. 나와 같이 그들도 그 선물 안에서 부해졌고 행복해졌었다. 1천 명의 이름들이 그 날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나는 믿는다. 그 후 6개월이 되자 새로 지음을 받은 심령들의 수는 2천 명으로 늘었다. 1년 후에는 약 4천 명으로 되었었고, 지금은 약 2만 5천 명이 어린양의 보혈에 옷을 빤 성도들이 되었다.
성경은 영감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져 있다. 그리스도 이후 수백 년 동안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글들이(신약성경)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기준이 되었다.
그러다 대도시, 특히 로마에 있는 주교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교훈이 아닌, 사람의 교훈을 유전으로 끌어들여왔다.
시일이 지나면서 그리스도 이전에 기록된 어떤 책들이 이들 유전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구약성경에 추가되었다. 이 책들은 아직껏 유대 사람들에게 의하여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이라고 인정된 일이 전연 없었으며, 히브리인들의 성경의 한 부분으로 삼은 일도 전연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히브리인의 성경에 들어 있지 않다.
또 그리스도 뿐 아니라 사도들도 이 책들 중에서 인용하여 말씀한 일이 전연 없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을 인쇄하면서 구약성경의 본래의 형태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유독 로마 천주교에서는 아직껏 이 추가된 책들을 간직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카톨릭교나 신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이들 성경 중 어느 곳에도 마리아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치는 부분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일을 옳게 보시지 않았다. 누가복음 1장 48절에 의하면, 마리아는 족히 존경을 받은 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1장 27-28절을 주의하여 읽어보라.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낳은 큰 영예를 입은 동정녀가 되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마리아를 숭배하거나 경배하도록 가르친 곳이 없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락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리도 어디에도 성자(聖者)들이 우리의 기도를 응락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도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가 되신다. 성경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가 그에게 직접 나아가야 하는 것은 그 분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인하여 하나님의 속죄 제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분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5장 14-15절에 그리스도를 믿는 진실한 신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가 말한 ‘그’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한편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나 성자(聖者)들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한 곳은 없다.
성경은 지옥을 가리켜 불신자들과 마음으로 회개치 않은 자들에 대한 형벌의 장소로 가르친다. 그러나 연옥에 대한 교육은 카톨릭 교회의 순전한 창안(創案)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것은 전연 가르친 일이 없고 사도들도 역시 전연 가르친 일이 없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그리스도인은 죽으면 주님 계신 곳에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써 우리의 죄가 완전히 사함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죄들이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과 갈보리에서의 희생으로써 남김없이 씻음을 받았다. 그는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셨다. - 죄의 일부분만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함이 있다. 히브리서 1장 3절 “…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골로새서 2장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모든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하여졌다는 것에 대하여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느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라고 말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하여 모든 죄가 기계적으로 사해진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과 회개를 통하여 그의 사죄하심과 확실한 영생을 우리의 것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실제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가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갈보리에서 고난과 희생을 당하셨다고 함을 믿는 것이며, 어떠한 종류의 기도나 선행도 믿어서는 안된다. 다만 우리가 회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된다면 저절로 선한 행위가 나타나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게 나타낼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본성(本性)으로부터 오는 모든 죄는 속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인하여 오직 하나님의 은혜(무조건적 호의)로서만이 사함을 받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연옥에서 우리가 구출함을 받기 위하여 제 멋대로 기도하고 미사도 드리는 등의 일들은 아무 쓸데없는 일이다. 주님은 모든 죄를 인하여, 그리고 모든 시대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에베소서 2장 8-9절의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미사를 드림으로 그들이 천국에 옮겨질 수는 결코 없다. 로마 카톨릭의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또 다시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히브리서 10장 10절의 말씀을 조심하여 보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우리의 신앙은 미사에게 그리스도를 다시 한 번 못박을 수 없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인하여 단 한 번 죽으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갈보리산 상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보아야 하겠다. 그리스도의 희생당하심은 신약시대에 속하는 사람들의 죄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 사실은 히브리서 9장 24-28절에 명백히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운명하실 때 “다 이루었다!”고 외치신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참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하고 완전한 속죄 제물이 ‘갈보리’ 위에서 성취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은 성도들과 천사들에 의하여 영원토록 전하고 또 전해질 것이다.
이제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 베드로가 한 간단한 말을 기억하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는 기도회와 미사를 위하여 우리의 모든 은과 금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유일의 제물은 오직 갈보리 위에서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주시지 않으시고 다만 우리의 믿음과 우리 죄를 지시고 제물이 되신 그의 아들을 의지할 것을 요구하신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9-10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였다. 그렇다. 정녕 우리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며, 우리가 돈이나 값을 지불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용서와 영생을 바로 지금 주신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씻기 위하여 할 일은 오직 믿고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것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단 한 가지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며 그는 세상의 다른 어느 것보다도 우리가 그를 더 사랑할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랑하는 것 이상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원하신다. 이것을 회개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 가운데 더 머물러 있지 않고 우리의 죄에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죽으셨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행 3:19)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바로 그것이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서의 그의 작별 인사 속에서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되풀이해서 말하기를 “…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 20:21)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진실된 마음으로 돌아와 회개하고 그를 믿을 때에 그가 우리를 영접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곧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그리스도를 완전한 구세주로 믿지 않은 채 죽는다면 영원히 버림을 받고 만다. 그리고 우리의 생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죽은 후에도 은이나 금이 도대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치니퀴 신부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라임 링컨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