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의 왕 견훤의 묘이다.
아래 설명도 있지만, 나라를 흥하고 망하게 한 인물.
한마디로 우리의 선조다.. 이말이지.
여기도 불지르기 딱 좋게 되어 있더군.
허술한 화장실하며
쓰러져가는 비석들...
분명 왕의 묘이면 그 주변의 왕과 관련된 무덤이나 다른것들이 있을건데,
나머지는 산속에 그냥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다.
일본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걔네들은 이런거 잘 보존하던데
우린 왜 이런걸 못할까,
왕릉주변에 족히 수백년을 되었을만한 고목들이 몇그루 있고
수백년은 안되었어도 수십년은 되었을 나무들도 많던데
내가 만약에 한국문화유산 불태워버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성공할 듯 하다.
- 출처 : NAVER사전검색
전주견씨(全州甄氏)의 시조이고, 본성은 이(李)이며, 아자개(阿慈介)의 아들이다.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지금의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다. 신라에 태어나 서남해(西南海) 지방 방위에 공을 세워 비장(裨將)이 되었는데,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서 892년(진성여왕 6) 반기를 들고 일어나 여러 성을 공략하고, 무진주(武珍州: 광주)를 점령하여 독자적인 기반을 닦았다.
900년(효공왕 4) 완산주(完山州:全州)에 입성하여 나라이름을 후백제라 하고 정치체제를 갖추었다. 관제를 정비하는 한편, 중국에도 사신을 보내어 국교를 맺으면서, 궁예(弓裔)의 후고구려(後高句麗)와 자주 충돌하며 세력 확장에 힘썼다. 그 뒤 왕건(王建)이 세운 고려와도 수시로 혈전을 벌여 군사적 우위(優位)를 유지했다.
927년 신라의 수도인 금성(金城:경주)을 함락하여 친려(親麗)정책을 쓰던 경애왕(景哀王)을 살해한 후, 효종의 아들인 김부(金傅)를 왕(경순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경순왕 역시 친려(親麗)정책을 고수하였으며, 신라의 민심은 고려의 왕건에게 기울어져갔다. 929년 고창(古昌: 안동)에서 왕건의 군사에게 크게 패한 후부터 차츰 형세가 기울어 유능한 신하들이 계속 왕건에게 투항하고, 934년 웅진(熊津:공주) 이북의 30여 군현, 동해연안의 110여 성이 고려에 귀속했다.
이듬해 왕위계승문제로 맏아들 신검(神劒)이 견훤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했으나 탈출하였다. 그리고 고려 왕건에게 투항하여 상부(尙父) 칭호와 양주(楊州)를 식읍(食邑)으로 받았다. 936년 왕건에게 신검의 토벌을 요청하여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려의 왕건이 신검 등을 우대하는 것을 보고 분을 못이겨 앓다가 얼마 뒤 황산(黃山:충남 논산시 연산면) 불사(佛舍)에서 등창이 나서 죽었다.
NIKON D40 / 무보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