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자화상 by 미당 서정주

이해인 |2008.03.28 15:46
조회 80 |추천 0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미당 서정주 시인과 처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나를 키운건 8할이 바람이었다...란 말을 하게 되어서 생각난 시.

이 시를 읽을 땐 언어영역의 공부를 위함이었는데,

살다보니 이 시의 그 문구를 사용할 일이 꽤 많았다. 사실 농담삼아 한 이야기지만...

다시금 떠올라 찾아내어 읽고 보니... 훌륭한 시다.

친일..이다 뭐다 이야기가 많긴 하나. 그런식으로 따지면 친일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으랴.

 

전통에 대한 탐닉.

그게 클래식하다는 것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다.

그냥 다만 예전에 몰랐던 멋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때는 잘 모르면서 그냥 별 것 아니야 라고 치부했던 것들에 대한 재발견

 

우리나라 것들에 대한 찬미가, 그냥 국수주의나 맹목적 애정이 아니라

정말 훌륭한 것들을 알아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음을

알게되었다.

 

이 모든 것들을 수업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와 전통으로서 어려서부터 즐길 수 있었더라면

지금쯤 더 풍요로웠을 것을.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