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즈 Jazz 는 소수의 음악이 되었을까?
1900년대 초 재즈의 탄생이후 록앤롤이 대두되기 전까지 재즈는 미국의 국민음악으로 번성하고 있었다. 그 중 경쾌한 '스윙 Swing 음악'은 당시 2차 대전의 발발로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과 어려운 시기의 모든 사람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며 큰 인기를 끌었다.1)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점점 파국으로 치닫자 (일본의 진주만 습격에 이은 미국의 원폭 투하 등) 더 이상 음악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빅밴드의 외국 공연이 모두 중지되었음을 물론, 악기의 개발이나 음반제작이 일시 중지되었고 춤을 추는 업소는 과세의 대상이 되었다. 밴드들의 단원들도 군 소집 영장을 받게 되어 밴드의 규모는 자연 축소되었다.
결국 재즈는, 댄스 음악으로 인기를 누렸던 스윙이 쇠퇴하고 규모면에서는 소규모로, 음악적으로는 개인 감상주의적 성향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재즈인들 스스로가 개인의 개성과 즉흥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다.
바로 이 시기 (1940년대)에 등장한 것이 ‘비밥 Bebop’ 이다. 그들은 흑인적인 빠른 리듬감과 복잡한 화성을 이용해 가장 어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스윙의 대중지향적인 면에 상반된, 예술적 경지로 다가서려는 과정에 위치하기 때문에 그 관심의 추가 점차 일반 대중보다는 뮤지션들에게로 옮겨감으로써 재즈가 대중음악으로서의 지지를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밥 뮤지션들의 진지한 음악적 태도는 재즈가 클래식과 같이 하나의 독립성을 확보하며 장으로서 진보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한 것으로 평가 된다. 초기 비밥의 8분음표 또는 16분 음표로 전개되는 빠른 리듬은 이전까지 춤을 출 수 있었던 댄스 음악으로서의 재즈와 너무도 다른, 광포한 것이었으며 또한 전율적으로 받아들여 졌다.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흐른 오늘날과 같은 평가를 얻지 못했던 1940년대 당시에는 위험한 시도, 또는 불안정한 혁명일 수 밖에 없었고, 이를 견지하던 비평가들에게서나 종래의 관습에 젖어있던 재즈 연주인들에게 조차도 외면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비밥은 그 태생부터 혁신성을 인정받았다기 보다는 다수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이단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재즈는 소수 마니아층의 음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1) swing (‘흔들리다’)의 특징은 율동감이다. 스윙의 박자는 1 & 2 & 3 & 4 의 4박자로써 중간에 and(그리고)에 악센트를 줌으로써 강한 율동감을 유도하는 식이었다. 이런 숨겨진 and 의 역할을 “Off-beat”라고 부른다.
1940년대의 재즈 : 위대한 과도기-스윙에서 비밥으로
Jazz it up,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