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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치료만큼 쉬운 낙태

김주희 |2008.04.24 20:48
조회 251 |추천 0

 

‘낙태 공화국’의 그늘.
법 있어도 처벌받는 의사·산모 없어.
  


임신부를 가장한 본지 기자는 21일 서울 신촌의 L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병원 대기실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와 앳된 얼굴의 10대 소녀가 무덤덤하게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기자는 간호사에게 “임신중절수술(낙태)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주저 없이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병원이 싼 편이에요. 원장님이 아프지 않게 잘 해드려요. 30분이면 끝나요. 시간이 지날수록(임신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술비가 올라가니까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죠.”

간호사는 서류 뭉치 하나를 내밀며 “건강보험이나 국세청에 기록이 안 남는 게 좋겠죠. 동의서에 서명하세요”라고 말했다.

비밀보장을 한다는 의미였다.

법에 규정돼 있는 낙태 사유나 아기 아빠의 동의를 묻는 절차는 없었다.

모자보건법상 낙태는 ▶태아의 유전적 결함 ▶강간과 같은 범죄로 인한 임신 ▶부모의 신체 결함과 같이 극히 제한적인 경우만 할 수 있다.

인근의 Y산부인과. 고등학생이라고 밝히고 전화로 낙태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병원 측은 “학생이니 놀토(노는 토요일)에 받는 게 좋다”는 충고까지 해줬다.

성 개방과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하면서 낙태가 스스럼없이 이뤄지고 있다. 낙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고려대 의대 김해중 교수는 국내에서만 연간 34만2233건(2005년)의 낙태가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해 태어난 신생아(43만8062명)의 78%에 달한다.

의료계에서는 음성적인 낙태 건수를 포함하면 실제로는 150만 건에 달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루 평균 1000~4000여 명의 태아가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일부 젊은 층에선 감기처럼 가볍게 여겨질 정도다.

한 산부인과 간호사는 “일부 여고생들은 웃으며 낙태하러 오기도 한다”며 “낙태 후에는 감기 치료를 위해 주사 한 대 맞고 가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병원을 나선다”고 말했다.

유엔보고서와 보건복지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가임기(15~44세)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는 29.8건(2005년 기준)으로 일본(2004년)의 두 배에 달한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낙태 건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김현철 낙태반대운동연합 부회장은 “사회 분위기가 낙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부 산부인과 의사도 병원 수익을 올리기 위해 불법 시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법에 낙태죄가 있지만 처벌받는 의사나 산모는 거의 없다.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는 ‘낙태 후 증후군(PASS)’에 시달리기도 한다.

본지가 인터넷을 통해 낙태 경험이 있는 여성 8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71%가 낙태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박성철 한일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낙태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면 안 된다”며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먼저고, 종교·여성·법률·의료계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규·김은하 기자

◇낙태 후 스트레스 증후군(PASS)=낙태를 경험한 여성에게 나타나는 증세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일종이다.

자해나 자살 충동을 느끼거나 알코올·약물 남용, 폭식, 성에 대한 무관심, 우울증, 대인관계 기피, 수면장애, 불안감이 나타난다.

미국 엘리어트 연구소는 낙태한 여성의 44%가 신경쇠약, 36%가 수면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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