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시위에 동참하고 싶어하는것을 보고 있씁니다.
인터넷 뉴스 게릴라 오마이뉴스를 찾으시면
실시간 중계로 볼수가 있씁니다.
모든 언론에서 사실상 외면을 하고 차단당하고 있는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 취임 두달만에 5천년 역사의 대한민국을
뿌리채 뒤흔드는 이 정부는 반드시 물러 나야만 합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정부와는 어떤 대화도 실효성이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보1호숭례문이 화재로 전소되었씁니다.,
대운하.경제파탄.FTA졸속처리.금산분리철폐,삼성면죄부,
의료보험 민영화 ,공기업민영화,광우병 수입,
아프리카사람들이 무료원조해주는것도 거부한
발암 불임을 유발하는 유전자조작 변형옥수수전분 수입완료(식용수입 한국이 유일),
한일굴욕외교,일왕알현,독도주권포기(스스로 주일대사관홈피에 독도표기삭제)
임금 못받는 노동자외면,언론조작(현재 조중동에 시위전혀 언급없고 왜곡보도)
인터넷종량제로 여론탄압시도(가격인상)
통신개방으로 국부유출시도(통신료인상 국부유출로 내수위축)
악몽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알바및 작전세력들이
이번 집회의 목표가 단순소고기반대인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씁니다.
국민은 지금 이명박이 물러나길 원하는거지
소고기재협상이 목표가 아닌것입니다.
국민여러분 프리메이슨 이명박세력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나라 망합니다.
헌법제1조2항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씁니다.
헌법제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했씁니다.
이말이 뭡니까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란 말입니다.
모든 법은 헌법의 하위법입니다.
이명박정부는 지금 하위법으로 상위법을 엎으려드는 하극상을 하려고 하고 있씁니다.
100년전에 이완용이 나라 팔아먹을때는
국민들이 몰라서 당했씁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이 있씁니다.
전화가 있습니다.휴대폰이 있씁니다.광장이 있습니다.뭉칩시다.
대통령탄핵 법으로 안해도 됩니다.
국민의 뜻은 법위에 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을때
어린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성공한것이 바로 1960년 419혁명입니다.
여러분의 할아버지 할머니세대이지요
네이버에서는 모든 419혁명사진을 검색에서 지웠기에 직접 올립니다.
1960년 4월 19일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거리로 나선 학생들.
어제오늘 청계천시위에 여학생이 대다수인것을 남학생들은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언론들은 여학생들은 하교길에 직장인들은 퇴근길에 괜히 들른것으로 호도하고 있다.
괜히 들른 사람들이 치밀하게 피켓을 만들어 나왔나?
4월혁명 당시 사진 - 4.19 수송국민학교 학생들
고등학교와 의과대학 학생들이 시청앞을 돌아 광화문으로 진출하고 있다.
의거 엿새만인 4월25일 마침내 대학교수 258명이 시위에 나서 국회의사당으로 향했고,
다음날 시민들과 학생 10만명이 서울시내를 점령,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
(44회 4·19혁명 기념일을 하루 앞둔 18일 서울 수유리 4·19묘역을 찾은 조호순씨가 고려대 학생으로 시위에 참가했던 남편 김호성씨의 묘비를 잡고 흐느끼고 있다.)김문석기자 경향: 2004년 04월 18일
여러분의 아버지어머니 세대는 전두환노태우군사정권때
518과 610항쟁을 일으켜 629항복선언을 받아냈씁니다.
법이 뭡니까
국민을 위해서 국민이 만든것입니다.
법보다 국민이 우선인것입니다.
두달만에 나라를 망쳐놓은 이메가를 그냥 두고보자는 것들은
모두 그들의 알바에 불과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떨어내나요?
국민여러분
정부가 국민알기를 우습게 여기고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우리는 스스로 국민저항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론조작에 흔들리지 마시고 끝까지 투쟁합시다.
역사는 우리를 기억할 것입니다.
끝으로 진양숙열사의 이야기를 첨부하오니
내년부턴 419기념일에 택배로라도 꽃다발좀 보내드리시길...
○ 묘역번호 : 185
○ 생 애 : 1946.05.15 ~ 1960.04.19
○ 성 별 : 여
○ 출 생 지 : 경기 수원
1960년 4월 19일 미아리고개에서 총상 사망
.............................
44년 전 4.19 당시에는 여중생 진영숙 양이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시위대에 참가하여
"생명을 바쳐" 싸우다가 총탄을 맞고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당시 한성여중 2학년생이었던 진영숙 양은 4월 19일 거리에서
수많은 언니, 오빠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것을 목격하고
압제자들에 대한 분노와 가슴속에 맥박치는 정의감과 민족애로 온몸이 불타올랐다.
진영숙 양은 학교 친구들과 데모에 참가하기로 결의하고,
우선 집에 들러 마침 출타 중이던 어머니에게
결국 유서가 되고 만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 .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어머님,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진영숙 양은 황급하게 이 글을 남긴 후 학우들과 함께 데모에 나갔으나
진압에 나선 군경에 밀려 이날 미아리 야산에서 총탄을 맞고 꽃다운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4.19때 경찰의 총탄으로 186명이 목숨을 잃고 6천여명이 부상했다. 지금 수유리 4.19 묘소에는 진영숙 열사를 포함하여 258명의 영령이 모셔져 있다.)
진영숙 양은 그저 우연히 데모에 휩쓸려 나갔다가 유탄에 맞아 숨진 철없는 여중생이 아니라, 결연히 민족 해방을 위한 항쟁에 나서 목숨을 바친 우리 민족의 진정한 열사였다.
실제로 4.19는 단순히 이승만의 3.15부정 선거에 항의한 사건이 아니었으며,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외세의존의 분단 독재자 이승만 정권을 타도한 위대한 혁명이었다.
진영숙 열사가 지금 살아있다면 5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어,
구천에서 효순이 미선이의 넋을 어루만져주고 있으리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진영숙 열사의 겨레 사랑과 민족애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뜨겁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사월 혁명회.
<당시 서울 수송국민학교 학생 강명희의 글>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면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와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고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