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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승윤 |2008.05.08 13:24
조회 55 |추천 0

http://www.ted.com/index.php/talks/view/id/229

 

재미난 강연을 보게 되어 생각을 조금 더.

인간의 좌뇌 우뇌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와 학설들은 진부할 정도로 많이 듣고 읽었지만, 위 강연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먼저, 강연을 한 학자의 진심과 열정이었고(이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그리고 나머지는 ‘보편’과 ‘개별’로 설명한 ‘나’안의 ‘우리(“we inside of me”)’는, 인간의 오랜 역사와 예술의 속성 그리고 결국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어쩌면 영원할 이 철학적 물음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것.

이 두 가지 면에서 무척 신선하였다. 물론 마지막에 던진 제안은 다소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순수하였고, 연설 중간중간에 그녀가 던진 몇 개의 매우 중요한 질문들은 머리 속에 남는다.

 

 

 

Universe와 Particular는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항상 고민의 중심에 있었다. 인간의 본성 아니 생물학적으로 뇌 자체가 그렇게 구성된 인간은 두 가지를 가지고 늘 고민한 것 같다. ‘신과 인간’, ‘상층부과 하층부’, ‘은총과 피조물’, ‘하늘에 속한 것과 땅에 속한 것’, ‘신성과 세속’, ‘영혼과 수학’, ‘신비주의와 합리주의’, ‘신앙과 이성’, ‘열린 에너지 그리고 에너지의 조합’, ‘우주 그리고 나’, '보편과 개별'(끝도 없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을 펴서 아래로 내리고 있어 particular를 강조하고 있고, 플라톤은 손을 위로 가리키고 universe를 강조하고 있다. ‘Universe을 허용할 경우 어디서 통일성을 발견할 것인가, particular를 풀어주면 어떻게 그것을 다시 모을 수 있겠는가?’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그는 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으로 넘어가는 fuzzy period에 살았다)의 오랜 고민이었다. 현대 수학의 시조인 그는 수학(측량할 수 있는 것)으로 particular를 다루면서도 영혼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고뇌했던 수학자이자 예술가였던 그가 universe(우주가 아닌, 경제가 없는 어떤 에너지, 영혼 같은 것?)를 그리려고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그래서 회화 작품수도 적다고 한다.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중 중간부분 줌인.

 

 

 

연설자는 뇌졸중을 경험하여 좌뇌가 서서히 마비되었는데, 그때 상대적으로 우뇌기능이 우위에 있어 universe, 에너지 속의 에너지의 단지 일부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나’와 ‘나가 아닌 것’의 경계. 이의 완벽한 무너짐. 자신을 팔을 내려다 봤을 때 주위의 픽셀과 자기 팔의 픽셀이 하나로 뭉개져 더 이상 ‘나’의 경계는 없어진다. 과거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들의 현재에서의 조합을 통해 인식되었던 ‘나’는 없다. 철학자 헉슬리(Aldous Huxley)는 ‘보편universe’에 속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 환각제를 먹을 것을 강조한다. 합리에 근거를 두어야 하는 개별자를 강요하는 이 세상 속에서 뇌졸중을 경험하지 않은 한, 우주적 에너지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위한 환각제 복용은 일리는 있는 주장이다. 1960년 대 평화주의자 히피 족들도 마리화나를 애용하였다.

 

 

그러나 나는 신비주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탕과 사물의 경계가 모호한 모네의 그림들은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universe를 추상이라는 방법을 써서 창조를 시도했던 피카소의 작품까지는 그리 공감이 안 된다(물론 피카소는 particular가 아닌 universe를 그린 것 자체가 그림을 보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초현실주의 Dali의 작품은 말할 것도 없다. 역시나 우리가 우뇌의 영역으로 '선택'하여 들어가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에 반대한다기 보다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불가능할 뿐더러 초현실주의, 신비주의 그리고 무원칙주의로 흘러갈 수 있다는 노파심이 조금 생긴다.  

반면 배경에 환상적으로 스며있는 모네의 그림에는 '개별'과 '보편'의 아름다운 소통이 있다. 

 

Houses of parliament,sunset .모네.

('인간'이 세운 국회의사당 그리고 아름다운 노을이 환상적으로 포개져 나는 신과 인간 모두를 느낀다.)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나’의 인식. ‘나’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고유한 기억과 경험을 가진 하나의 세계인데 ‘너’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하고 더 나아가 섬이 아닌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나’를 알고 ‘나’와 ‘나 외의 것들’의 미세한 경계선을 이해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해하고 그리고 동시에 나는 ‘우리’가 함께있는 우주의 ‘일부’임을 아주,

 아주 겸손히 인정하는 것. 내가 가고 싶은 길이다.

 

(잠시 사족: 물론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좌뇌기능의 활성화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은 백번 동의한다. 모든 것을 ‘평가’함으로 개인을 진정 개인화시키는 지금의 사회시스템이 진정 개떡같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철저한 평가와 위계질서 속에서 particular를 역시나 개떡같이 통일시키고 있는 ‘대한민국 군대문화’, ‘대한민국 삼류유교문화’ 또한 없어져야 할 시스템 일 순위라고 생각한다. (앗, 사족이 너무 반전스럽다;))   

 

 

 

아무튼, 결국에 나의 이야기가 도달하게 된 곳은 '사랑'.

사랑은 '마술'이기 때문에 뭐를 어떻게 설명하려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 분명히 존재하는 그 신비한 감정들은 '나'와 다른 '너'가 있다는 것. 우리의 감정(뇌!)을 뒤흔드는, 인간에게 있어 압도적인 화두인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면, 

우리가 '모두universe'의 일부'만'은 아닐뿐더러 그리할 수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마술적 감정에 나를 방류하는 것은 또한 '나'를 만나는 여정이 아닐까. 

 

'나'는 무수히 많은 '너들universe' 중에서 유독 '너particular'를 사랑한다고. 

너와 나는 하나는 아니야. 우리는 '개별적'으로 이렇게 서로 떨어져,

'너'는 너의 특별한 빛을 내고 있고 '나'는 그 빛을 사랑해.

 

 

 

  

Birthday. 샤갈. (깜짝 놀란 그녀의 눈. 가만히 감은 그의 눈.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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