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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앙드레 고르

유광종 |2008.05.16 11:19
조회 58 |추천 0


 

 

' D에게 보낸 편지'는, 사르트르로부터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58년간을 함께 살아온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이 책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2007년의 어느날, 그들은 프랑스의 어느 시골마을에 있는 자신들의 보금자리에서 침대에 누워 주사를 맞은 뒤 오랜 삶을 자유의지로 마감했다.

그들은 삶에서도 연대했지만 죽음에서도 연대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사랑의 기술'을

가장 모범적으로 실천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 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수 있는

자리입니다. -p.6-

 

어째서 당신은 무일푼의 이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을

선택했던 거죠? 나는 글로써는 헤로와 레안드로스, 트리스탄과

이졸데, 로미오와 줄리엣을 예로 들먹이면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두 주체가 서로 매혹되는 일, 즉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면, 사회화할 수 없는 면, 사회가 강요하는 자기들의 역할과

이미지와 문화적 소속에 거역하는 면에 끌려 서로에게 빠져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어 나는 내 현실을 휴가보낼 수 있었습니다.

 -pp.26~27-

 

 

나는 성공과 긍정의 미학 속에서 편치 못했고,

실패와 소멸의 미학 속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나는 우리를, 당신을 딛고, 우리 개별 인간을 초월하는 고찰을

통해 나와 당신을 넘어서려 했습니다.

-p.63-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늘 '호사스러운' 생활 방식과 낭비를

싫어했습니다. .....

우리는 결국 낡은 오스틴 차를 한 대 샀습니다. 차를 샀다고 해도

개인의 자가용 소유가 가증스런 정치적 선택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고 큰소리치면서 사실은 개개인을 서로 경쟁시키는 짓 말입니다.

 

가계비용 지출에 대해서는 늘 당신이 예산을 정해놓고 돈을 관리했지요. 그때를 떠올리니 당신이 일곱 살 때부터 진정한 사랑은 돈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내린 것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돈을 무시했어요. 우리는 종종 돈을 기부하곤 했습니다. -pp.71~72-

 

당신의 건강 상태가 심하게 악화되자 나는 그 의사를 만나러 갔습니다......거미막염이라는 진단 결과를 나에게만 알려줬습니다......

의학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바가 없었지요. 당신은 진통제를 습관적으로 복용하며 진통제에 계속 의존하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자기 몸과 병과 건강을 알아서 관리하기로 결심했지요.

의학적 기술과학이 당신의 몸과 당신 사이의 관계를 마음대로 휘두르게 하는 대신, 자기 생명에 대해 스스로 권한을 갖겠다는 것이었습니다. ..... 기술의학이란 훗날 푸코가 '생체권력'이라 부르게 된 것, 즉 각자가 자신과 갖는 내밀한 관계조차도 기술적 장치들이 장악하는 권력 중에서도 유독 공격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pp.78~82-

 

앞으로는 우리를 미래에 투사하지 말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우리의 '현재'를 살아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p.84-

 

나는 30년 전에 결심한 대로 살아오지 못했던 게 분명합니다.

현재에 충실하고, 무엇보다도 우리둘이 함께하는 삶이라는 풍요에

집중하며 살자고 결심했는데 말입니다. 다급한 심정으로 그런 결심을 하던 순간들이 이제 다시 눈앞을 스치는군요. 지금은 집필하고 있는 대단한 작품이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조르주 바타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존을 나중으로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pp.88~89-

 

밤이 되면가끔 텅 빈 길에서, 황량한 풍경 속에서, 관을 따라 걷고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을 봅니다.내가 그 남자입니다. 관속에 누워 떠나는 것은 당신입니다.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캐슬린 페리어의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pp.8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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