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목표 = 이윤.
기업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주주를 위해서라도, 기업은 이윤을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윤을 극대화해야만, 기업의 사원들을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에게 주어진 의무는, 헌법을 준수하는 것과 납세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위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켰다면, 그 기업은 이미 훌륭한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우리가 기업에게 이 이상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기업에게 이중과세를 요구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각자 일을 하고, 세금을 내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가정하자.
그런데 만약 당신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당신을 부도덕한 인간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불우이웃돕기를 한 사람, 자원봉사를 한 사람이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옳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 욕을 먹을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복지는 정부의 소관이고, 우리는 이미 세금으로 국민복지에 대한 우리 몫을 치루었기 떄문이다. 만약 정말로 주위에 불우이웃이 많다면, 그것은 국가복지가 형편없다고 이야기 할 수 있으므로 복지분야의 예산을 늘려 세금을 더 내는 것이 맞는 얘기다.
기업은 정부에 세금을 낸다. 이미 기업인과 고용자들 모두가 스스로 세금을 내는데, 기업 그 자체로 다시 법인세를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이 법인세야말로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기업의 부담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이윤만을 추구한 나머지 사회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면, 뒷짐지고 기업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차라리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헌법적인 장치를 강화하고, 정부차원에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이미 기업은 법인세로 모든 의무를 마쳤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약 현행 법인세로 그 예산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법인세를 인상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업을 한마리의 야생마에 비유할 수 있다. 그 야생마를 타고 있는 기수가 정부이며, 국민이라고 할 때, 우리가 아무리 야생마에게 도덕책을 읽혀준 들 야생마는 절대 도덕책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생존안위를 위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야생마를 부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고삐다. 고삐를 통해 야생마의 탈선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 정부는 이 야생마의 고삐를 풀어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말을 잘 듣겠지', '우리가 먹여키우니까 은혜를 갚겠지'라고 여기는 꼴이다. 그리고는 야생마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맞다. 고삐가 없다면 야생마는 더 빠르게 달릴 수 있겠지. 하지만, 과연 그들을 컨트롤 할 수 있을까?
새 정부의 광우병 관련 발표를 보고 나는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쇠고기 수입업체에게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도록 독려하겠다고 한다. 그 말은 야생마의 고삐를 모두 풀어버리고서는, 그들에게 얌전하게 있으라고 다독거리는 꼴이다.
과연 정부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기업이 저지를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능력이 있으면서 그와 같은 개방된 협상을 진행한 걸까? 혹시나 처음부터 기업의 도덕성만을 믿은 채 규제를 풀어주었던 것이라면, 이는 굉장히 국가적으로 위험한 결정이다. 위에서 말했듯, 기업은 이윤을 추구할 뿐 결코 사회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면, 정부는 이를 안정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는 이유이고, 또한 기업으로부터 법인세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헌법적 규제일 수도 있고, 정부의 관련 예산 편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현 정부는 그들이 행한 규제완화만큼 그 뒷정리를 할 여력이 있을까.
'고삐가 풀린 야생마'를 과연 그들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