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재즈의 황제 - Miles Davis
트럼펫을 하고 있니? ![]()
모던재즈의 황제라고 불리우던 Miles Davis는 1991년 9월 28일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New York근교 Florence, Woodlawn Cemetery에 잠들어 있다.
재즈계의 거장, Big Band의 리더이자 작곡가인 Duke Ellington도 묻혀있는 곳이기도 하다.
Duke는 소년 Miles가 동경하던 한명으로써 신문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처음 산 레코드가
Duke Ellington과 Satchmo라고 불리우는 Louis Armstrong이였다.
Miles 는 레코드가 음이 끊어질 만큼 듣고 또 들었었다.
그 중에서도 루이 암스토롱의 트럼펫 음색에 가장 반하였다고 한다.
그가 겨우 8세때의 일이다.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다고 그의 가족이 가난했던 것이 아니다. 흑인일가의 모자람 없는 환경이였다.
아버지는 대학 출신의 개업 치과의 였고,
어머니는 교회에서 오르겐을 가르치고 바이올린, 피아노도 연주하였다.
가족들은 음악을 하고 싶으면 클래식 음악을 하도록 권하였다.
이런 유택한 환경속에서 1926년 5월 26일 Illinois Alton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살때 일가는 East St. Louis로 이주를 하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클래식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였다.
그가 13세가 되던 생일날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트럼펫을 아버지로부터 선물받았다.
잠을 잘때도 항상 꼭 안고 잘 만큼 그 트럼펫을 사랑했던 그는
고교 재학 중 학교대항밴드 콘테스트에서 우승하여 동네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등
세미프로 이상의 실력이 되어있었다.
1944년, 고교를 졸업하고 16세가 된 그에게 큰 기회가 오고 있었다.
Miles가 이 후 그의 재즈인생을 결정짓는 첫 걸음이 되는 기회였다.
인기 재즈보컬리스트이자
그 해 결성된 피아노, 드럼, 베이스, 기타의 리듬 담당 멤버 (리듬섹션)과
멜로디를 연주하는 복수의 트럼펫과 섹스폰 (혼 섹션)을 더하여 총 인원이 10인이 넘는
BIG BAND를 인솔하고 당시로선 혁신적인 재즈를 연주하고 있던
Billy Eckstine의 악단이 St.Louis에 온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Miles는 바로 그곳으로 트럼펫을 들고 찾아갔다.
그 곳에는 자신이 비교할 수도 없는
Charlie Parker (alto saxophone) 과 Dizzy Gillespie(trumpet)가 있었다.
Parker와 Gillespie 모던재즈의 발자취를 이야기 할때 빠질수 없는 연주자들로써,
Big Band를 중심으로 한 댄스적인 음악부터,
곡의 흐름안에서 자신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연주(즉흥연주=애드리브)하여 청중을 흥분시키게 하는
Bebop라고 부르는 새로운 재즈의 선구자들이다.
Billy의 악단에서는 그것들의 최신연주를 들을 수가 있었다.
리허설이 하고 싶었던 Miles에게 Gillespie가 말을 걸어 왔다.
"트럼펫을 하고 있니?" 라고...
그리고는 테스트도 없이 무대에 서라고 하였다.
Gillespie의 회상에 의하면, 3명이였던 트럼펫 연주자 중 한 명이 갑자기 병에 걸려서
그 사람의 대신으로 그냥 무대에 서서 트럼펫을 부는 흉내라고 내라고 무대에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 후 Miles는 2주동안이나 그 무대에 서서 연주에 참가하게 되었다.
"뉴욕에 오게 되면 한번 들러"
라는 Gillespie의 한마디가 Miles에게 큰 꿈을 안겨 주었다.
Miles의 양친은 그가 프로연주자가 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래서 전 미국에서 학업과 음악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줄리아드 음악원에 진학한다는 조건으로
그는 뉴욕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음악원에서의 트럼펫과 작곡코스 2년정도 밖에 다니지 않았고
학교보다는 Bird (버드) ,Parker의 애칭,와 Gillespie에게 배운게 더 많았다고 한다.
Gillespie는 Miles에게 아르바이트와 동시에 경험을 쌓을수 있는 일을 할수 있게
Thelonious Monk를 소개시켜 주었다.
Parker와 Gillespie도 함께하고,
실력파 재즈 뮤지션들이 즉흥연주를 하는 곳으로 유명한 Minton-9;s Playhouse에
빈번하게 출입하여 Bebop의 호흡을 배워나갔다.
자신의 음악력 향상에 열정적이였던 Miles는 이 곳에 들어와 연주를 해가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Charlie Parker 와 Miles Daivis*
COOL의 탄생을 위한 열정
Miles가 Parker Quintet (5인조밴드)의 멤버가 된 것은,
그가 뉴욕으로 온 그 다음해인 1945년 10월이였고,
11월에는 Parker의 연속세션에 참가하여 첫 레코딩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Miles가 첫 밴드의 리더가 되어서 한 레코딩은 1947년 8월의 세션이였다.
Parker의 밴드에 들락 날락 하던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재 결성된
Eckstine악단 (그곳에는 Art Blakey-drum 도 있었다) 에서 그를 주목하고 불러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음악적인 지식이 풍부하지 못하여 그냥 의미도 없이 모여서 즉흥연주만을 하는
Jam Session band에 만족을 하지 못하였다.
더 의식적인 재즈가 하고 싶었던 그는 Parker의 그룹에서 연주를 하고 있을 때어도
그 그룹만이 할수있는 무언가가 하고 싶은것이 그의 본심이였다.
그룹의 사운드도 그의 귀에는 그냥 형식적인 연주로 들리었다.
"창조적인 연주가 되지 않는다면 죽는것이 낫다"
라고 그는 말하였다.
Claude Thornhill악단의 주임arranger인 Gil Evans가 그를 찾아온 것은 1947년 여름의 일이다.
Gil은 발표직후인 Parker quintet의 Donna Lee를 Thornhill악단에서 연주하고 싶어했다.
이 곡은 Miles가 작곡한 곡이였다.
그 악단에는 Gerry Mulligan-bass, Lee Konitz-alto saxophone등이 있었다.
Gil, Mulligan, Konitz, John Lewis-piano와 교류가 깊어진 Miles는
Gil에게서 편곡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개인기로 즉흥연주를 하는 bebop와 같은 재즈가 아닌
다른것을 하고 싶다는 기분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Bebop의 장단을 근거로 삼아, 새로운 음색 더 섬세한 음악이 하고 싶었다.
확실한 규칙을 가지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재즈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목관악기와 혼을 참가시켜
9명 편성의 nonet를 결성하였다.
Miles와 Gil이 구상하고 결성하여 1948년 9월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클럽 간판에는 Miles Davis Band, 편곡 Gil, Mulligan, Lewis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라이브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여 밴드는 2주만에 해체되었지만,
그 새로운 연주를 아끼는 목소리들에 보답하기 위해
그 멤버들이 다시 모여서 레코딩을 하였다.
그것이 Miles의 이름은 재즈역사에 선명하게 남긴 최조의 앨범 Birth of the Cool이였다.
음악에는 장르가 있는 것일까 ![]()
Miles의 65평생은 광감한 창조를 위한 도전과 버둥거림의 반복이였다.
많은 재즈플레이여들이 빠져들었었던 마약중독에 빠져 힘들어했었고,
몇 번이고 다가오는 좌절, 중지, 침묵의 기간을 넘어서 기적적인 복귀도 이루어 냈다.
-9;자신의 음악을 재즈라고 부르지 말라-9; 이 말은 그가 자주 내뱉었던 말이었다.
이 말에서 Miles의 음악관이 상징되어 있다.
그는 이런 저런 장르가 있는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Young Lester 와 Miles Davis*
Miles의 음악적인 전진은 누구보다 진보되어갔다.
Birth of the Cool에서 세련된 사운드로 연주를 탄생시킨 후,
1955년에는 John Coltrane등이 참가한 quintet (제1의 황금quintet라고 불림)을 결성해
이전에 주류가 되었던 개인의 즉흥을 메인으로한 bebop보다 더
개개인의 멤버의 특성을 끌어내는 연주스타일 Hard Bop을 추진하여
Cookin-9; 그리고 -9;Round about Midnight등의 유명한 앨범을 내며 황금기를 쌓아갔었다.
혁신을 계속되었다.
Hard Bop의 끝을 감지한 Miles 이 때까지의 연주의 구조를 더 넓히기 위하여
Modal를 채용한다.
이 Modal Jazz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Kind of Blue인것이다.
이 앨범은 1959년 발표 이 후, 재즈의 앨범중에서 베스트 셀러에 올라 300만장 이상이 팔렸었다.
60년대 중반이 되면서 Bebop의 끝을 타개하기 위해서 모색되어진
Modal, Free, Fusion의 스타일들이 복잡하게 뒤얽히고, 혼미한 상태가 깊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속에서 Wayne Shorter, Herbie Hancock, Ron Carter, Tony Williams의
신세대 멤버로 구성된 New Quintet를 결성 (제2황금Quintet로 불리우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하였다.
*NEW QUINTET*
Wayne Shorter
Herbie Hancock
Ron Carter
Tony Williams
1968년에는 재즈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악기,
아코스틱 악기라는 전체에 도전하듯,
피아노와 일렉트릭 기타를 사용, Rock Fusion이라는 음악분야에도 도전하였다.
1970년에 발표한 Bitches Brew는 그 결과라고 할수 있다.
이 명반을 재즈계의 충격을 멈추지 않게 하였다.
Miles 처럼 기준에서 탈피한 플레이어들은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런 탈피한 음악들은 그가 바라던 새음악에 대한 결과물들이였고,
힘든 싸움이기도 하였지만, 시대가 원하는 음악적이 교류를 알아채는 날까로운 음악력이기도 하였다.
그의 수 많은 도전들은 절정을 넘어 정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어떤 때에는 COOL을 어떤때에는 HOT을...
그가 평생을 바쳐 추구한 그의 음악은 아무에게서도 찾아 볼수 없는
MILES음악... 그 자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