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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8.

이중무 |2008.06.17 00:21
조회 58 |추천 0

사랑은‘오래 참음’입니다 (고전 13:4)

 

 

히브리 사람들이 읽는 민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이 저녁 무렵 텐트 바깥에 나와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8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 터벅터벅 찔뚝거리면서 아브라함이 있는 쪽으로 걸어옵니다. 그 노인은 피곤한 표정, 남루한 옷차림, 거지에 가까운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는 무척 배고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아주 찌들은 모습이었습니다.

이 80세 된 노인이 아브라함에게 오더니 “당신 장막에서 하루 밤 쉬어 갈 수 있겠소?”라고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라 “그러세요? 들어오세요. 저희 장막에서 쉬어 가시죠”라고 흔쾌히 허락합니다. 그리고 이 노인장의 발을 정성스럽게 물로 씻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준비해서 대접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기도를 안하고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태도에 화가 난 아브라함은 노인에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식사하시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노인은 “하나님이요? 나에게는 음식이 바로 하나님이요”라고 대꾸합니다. 더욱 더 화가 난 아브라함은 “노인장, 나는 노인장 같은 노인은 우리 집에서 모시고 싶지 않소”라고 말하고 쫓아버렸습니다.

그날 밤 아브라함이 자고 있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네, 하나님.” “오늘 저녁에 너희 집에 손님이 왔지?” “네, 그랬었습니다.” “왜 쫓아냈니?” “아, 하나님도 보셨군요. 아시잖아요? 하나님을 모독하고, 음식이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쫓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말이야. 그 노인을 80년이나 참았는데. 너는 말이야, 하루 저녁, 그리고 한 시간도 참을 수가 없었더냐? ”

 

오늘 본문은 사랑은 “참음(인내)”이라고 말씀합니다. 참되 “오래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래 참는다”(마크로뒤메오)는 말은 “불평 없이 참는 것”, “참는 이유를 알고 기뻐하는 참음”입니다. 그러니까 찡찡거리거나 이를 갈면서 견딘다든지, 섶에 누워 쓸개를 핥으면서 원수 갚을 날을 기다리는 「와신상담」(臥薪嘗膽)과 같은 참음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따뜻함, 달콤함, 짜릿함이 아니라 “오래 참는 것”입니다. 본문은 사랑의 다른 특징들은 한 단어로 한 번씩만 표현합니다. 그런데 “참음”에 대해서만은 3번을 반복합니다. 4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7절 초두에 “모든 것을 참으며”, 7절 말미에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은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참음”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사랑은 오래 참음입니다.

 

(1) Love suffers long (4절)

 

“사랑은 오래 참고”는 영어로 “Love suffers long”입니다. 즉 사랑은 고통을 오래 감수해 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작은 고통을 감수합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 2 번, 3 번 고통을 이겨나갑니다. 그리고 고통을 참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겁나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참아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것이 오래 참음, 즉 사랑의 모습입니다.

 

(2) Love bears all things (7절 상)

 

본문 7절은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Love bears all things)라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품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면 인생이 재미있습니다. 왜? 사람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을 싫어한다면 큰일입니다. 어디를 가도 사람이 있는데 어디로 도망을 치겠습니까? 사람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4:5)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관용하고 품으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속상해봤자 소화만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단점과 장점, 있는 모습 그대로를 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3) Love endures all things (7절 하)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Love endures all things). 사랑은 끝까지 참아낸다는 뜻입니다. “마지막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어떤 갈등과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결국 성령의 도움으로 승리하리라!” 이런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최후 승리 때까지 십자가를 붙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최후 승리의 때까지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과 모든 형편을 참고, 품고, 끝까지 견뎌 냅시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의 삶 속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오래 참음은 삼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처럼 “오래 참음”의 사랑의 성도가 되려면 삼위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1) 오래 참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출 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long suffering)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민14:18 ; 시86:15 참조)

“노하기를 더디 한다”는 말은 “고통을 오래 참는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래 참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벌써 이 땅에서 사라졌을 것입니다. 광야생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얼마나 못되게 굴었습니까! 아무리 선지자들을 보내어 타일러도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오래 참아주시는 분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은 진작에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서 참고, 참고, 또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곁길로 갈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 때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채찍을 드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깨달을 때까지 참고, 돌아올 때까지 또 참아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오래 참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예수님은 우리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벧후 3:15)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고 모두가 다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인류를 향해, 여러분을 향해 오래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오늘까지 여러분을 향하여 그토록 오래 참으셨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도록 이 시간까지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3) 오래 참음은 성령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의 성령의 열매 가운데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오래 참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오래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다시 한 번 여러분의 귀에 대고 “한 번 더 참아라. 내가 도와줄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로 우리가 참을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참는 사랑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오랜 고통을 참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믿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인내가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슴속에 이 성령의 은혜를 주셔서 우리의 삶 속에 오래 참는 사랑, 참음으로 이기는 사랑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참으시고, 성자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참으시고, 성령님도 참으시며 우리의 참는 것을 도와주십니다.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오래 참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특징도 오래 참음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란 짜릿한 것도 달콤한 것도 아니요, 참아주는 것입니다. “주여, 참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우리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오래 참음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1)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경험한 우리들끼리 서로 참아주기를 바랍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행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 참아주며”(엡 4:2)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2-13)

 

(2) 핍박을 참는 오래 참음(딤후 3:10-12)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3) 사역에 있어서의 오래 참음(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4) 기다림의 오래 참음(약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중앙아프리카 선교사 「조지 애틀리」 ***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던 젊은 선교사 「조지 애틀리」는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의 손에 있는 영국제 윈체스터 연발총의 방아쇠를 끝까지 당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대로 쏘면 저들을 죽이고 자기는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선교사는 자기를 죽이러 오는 사람들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총을 쏘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방아쇠 한번 잡아당기면 끝날 일인데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들을 죽이게 되면 이 마을에서의 하나님의 선교는 영영 끝이 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남을 죽인 자가 전하는 예수를 누가 믿으려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총을 든 그대로 개처럼 끌려가서 사지를 찢기며 비참하게 죽습니다.

죽은 다음에 보니 그에게는 그런 놀라운 총이 있었고 탄환도 열 발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원주민들은 뒤늦게나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인내를 위한 아름다운 기도 시 ***

 우리를 인내로운 자가 되게 하시어 예의에 벗어나는 말이나 가혹한 대답이 입 밖에 나오려 할 때에 입을 다물고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하나님! 우리를 인내로운 자 되게 하시어 필요한 때에 즐겨 양보하고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우리를 인내로운 자 되게 하시어 주님의 자비로운 섭리의 마음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이끄는 주의 자비에 몸을 맡기며 차분한 마음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를 인내로운 자 되게 하여 주십시오.

어떤 어려운 일 앞에서도 주님의 자비의 힘 의지하고 극복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지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보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를 인내로운 자 되게 하시어 이웃의 결점을 억지로 고치려 하지 말고

오히려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우리를 인내로운 자 되게 하시어 이웃과 사귀는 것이 어려울 때에도

평화와 미소를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갈보리 산 위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신 주님의 인내와

하나님나라 확장과 영혼 구원을 위해 인내롭게 스스로를 바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변화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내가 오래 참음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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