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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최고은 |2008.06.18 11:21
조회 49 |추천 1


[고양이를 부탁해]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을 때 *태희*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나이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난 잘 모르겠는데. 여전히 모든 게 궁금할 뿐인데.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니면 이제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내가 가진 재능이라곤 부탁을 거절 못하고 편견 없이 사람을 대하는 마음뿐인데. 세상은 그게 버려야할 철부지의 버릇이라 내게 충고해. 그저 배부른 고민이라고. 내겐 절박한 문제들도, 답답한 현실들도 결국 감정의 사치에 불과하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끔은 이유 없이 미안하기도 해. 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는데. 아직 하나도 모르겠는데. *혜주* 미안해.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마. 항상 내 생각만 하고. 잘난 척. 아는 척. 조금도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진심없는 단어만 버릇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지. 성공하고 싶었어. 평생 무시받고 굽신거리는 저부가가치 인간이 되기는 싫었어. 구석에 모여 앉아 불평이나 변명만 늘어놓으며. 그런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았어. 즐거웠던 추억보다는,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현재의 무언가를 갖고 싶었어.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아. 너희들과 보냈던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아. 친구를 잘못 사귀었다고. 너희들과 놀던 시간에 차라리 미래를 위한 준비나 했어야 했다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나 너무 미워하진마. *지영* 부모도 없고 집도 없어. 더러운 거리의 초라한 셋방. 지긋지긋한 가난과 거동이 불편한 조부모. 신경 쓰지 않는 척 살아보려 했던, 숨기고만 싶었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나를 조여와. 무심한 너의 한마디가 내겐 뼈가 시리도록 아파. 자격지심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거리에서 행려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두려워.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처럼 세상의 모든 불행들이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너무 두려워. 부모도 없고 집도 없어. 사람들은 마치 당연한 듯 여기는 그런 것들이 내게는 없어. 세상에는 집이 무너져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온조와 비류* 고민이 없어 보이니. 외롭지 않아 보이니.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쉽게 쉽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니. 이름만큼이나 우리가 그저 우습게만 보이니. 하지만, 누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가슴 아픈 뭔가가 있는 거라구.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못하고. 특별히 착하거나 속이 깊은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나 자세히 살펴보면 가슴 아픈 뭔가는 있는 거라구. 심각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겠지만. 조금 바보처럼 살아 보는 게 어때. 조금 모자라 보이는, 가끔 무시도 당하는 조연급 인생이라고는 해도. 그냥 그렇게 살아보는 건 어때. 주연처럼 주목은 못 받겠지만, 그만큼 부담도 없는 거잖아. 조금은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는 거잖아. 우리는 각자 추위에 대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는 뒤로 돌아서고, 누군가는 황급히 목도리를 꺼내어 감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코트 속으로 어깨를 움츠리고 있었어. 추위를 타는 정도도 다르고, 추위에 약한 부분도 다르고, 추위에 대처하는 방법도 우린 모두 다른데.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겠어. 우정이란 그럴싸한 말로 위로해 봐도, 사실은 진정한 이해란, 변하지 않는 관계란 없다는 것도. 너무 아쉬워 하지마. 돌아갈 수 없는 걸 알고 있다면.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마. 선뜻 줄 수 없는 거라면 받기도 어려운 거잖아. 그냥 어딘가로 떠날 때 기르던 고양이 하나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도면 되는 거겠지. 만일 너도 갈 곳을 찾고 있다면 우리 함께 떠나자. 그리고, 돌아올 때는 가장 먼저 너희들을 찾을께. 그럼, 친구야. 고양이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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