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이라는 영어 신문을 구독한다.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New York Times (NYT) 가 세계로 발행하는 세계 판 NYT 인 셈이다. critical reading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참에 로스쿨 시험에 도움도 될 겸해서 올해 3월부터 구독을 시작했다.
이제 그 신문을 약 3개월 정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다.
광우병 사태. 참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광우병 사태로 인해 시작된 촛불집회가 약 40일 정도 지속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인력과 생산력, 시간, 돈, 언론, 여론, 관심 등이 소모되고 있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0일 동안 세계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미얀마에서는 싸이클론이 휩쓸고 지나가 1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몇 백만 명이 수재민이 되었으며 곧 중국 스촨성에서는 대지진이 발생해 역시 15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아프리카 짐바웨이 에서는 3월에 치른 대통령선거가 부정선거라는 강력한 의혹을 제시한 수백 명의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피살을 당했고 많은 논란 속에 대통령 재선거라는 초유의 판결이 내려져서 재선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아래 남아프리카에서는 계속 되는 경제 불안으로 생계에 불안을 느낀 수 만 명의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살인과 도적을 행하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역시 그로 인해 수 만 명의 외국 노동 난민들이 생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영토분쟁으로 계속되는 대립을 하고 있고, 파키스탄의 대사는 아프간에서 탈리반에 납치되어 몇 달간 포로생활을 하다가 몇몇의 간수들을 풀어준다는 조건 하에 얼마 전에 풀려났다. 터키는 유럽 연합에 가입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고 유럽 연합은 대다수의 국민이 이슬람인 점과 인권탄압 기록 등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있다. 가까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정통 이슬람주의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단성을 띄고 있는 한 이슬람 단체에 대해 정부의 규제를 주장하며 데모를 하고 있다. 멀리 미국에서는 사상 초유로 흑인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되어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있다. 나날이 오르는 식량 곡물 값으로 캄보디아, 인도, 네팔, 베트남 등에서는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 사이 월스트릿에서는 서브프라임 몰기지로 한 동안 정체를 보이던 미국 경제가 이제는 고비는 넘겼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반대편 이라크에서는 오늘도 사상자가 발생한다. 무엇보다 바로 30 킬로미터 위인 북한에서는 몇 년 만에 다시 아사자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안 좋은 소식이 종종 들려오고 있다.
위의 정보는 5월부터 어제까지 세계에서 발생한 많은 재해, 사건들이다. 그 40일 동안 한국에서는 오로지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 집회와 정부의 무능이라는 몇 가지 키워드만이 국민들의 뇌리를 휩쓸고 지나갔고 아직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이것이 전부인양,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 양, 처음에는 차가운 객관성과 논리성을 유지했던 많은 이들도 점차 언론과 여론과 국민의 과잉 반응에 세뇌되어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나라 신문을 보자. 어떤가? 어느 성향의 신문이든 지를 떠나서 한 달 이상 동안 광우병 관련 기사가 적어도 5, 6 면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모든 사설은 촛불이야기로 뒤덮여 있다. 지금 당장 존재하지도 않는 병에 광기의 반응을 하며 감정적으로 토를 하며 개인적으로 목청을 높이고 정부를 욕하고 약한 국력을 탓하며 광우병에 모두다 서서히 죽어간다. 목숨을 건다. 이런 어리석은 국민들을 보며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 못 하고 더 오른쪽으로 기어가서 왼쪽에 서 있는 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벌써 너무나도 커져버린 이 사건에 발란스를 맞춘다는 명분아래 기름을 붓고 있다.
반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사이에 광우병, 그 중요성의 정도는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의 하루 신문의 총 18면 중 한 면의 약 1/4정도가 채 안 되는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집에 동시에 배달되는 한국신문과 영문신문을 매일 펼쳐 들며 나는 늘 생각에 잠긴다. 광우병으로 시작해 촛불시위로 끝나는 모든 기사내용의 한국신문과, 세계의 각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이슈들 사이에 조용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의 광우병 사태를 담은 영문신문. 국내와 세계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열린 생각, 또 국내의 사건을 세계의 시각에서 바라 볼 수 있는 지적 여유, 또 국내의 사건에서 벗어나 세계의 이슈와 사건들에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심적 여유, 옆의 사람들이 흥분할 때 꿋꿋이 유지할 수 있는 통찰력, 이성, 객관성, 합리성, 논리력, 그런 지적 축적을 바탕으로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는 비젼.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혹자는 이렇게 지적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이 것이 아니겠냐고. 이 문제를 해결부터 해야지 다른 일에도 관심을 돌릴 수 있지 않겠냐고. 저 지적에 대해서는 바로 통찰력과 지혜를 통한 문제해결을 강조하고 싶다.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에 쉽게 편승되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자신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또 국제적인 기준에서 어느 문제를 바라볼 때 그 문제가 갖고 있는 위험성의 수위 판단 능력, 제 3자의 객관적 입장을 취함으로서 납득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증거들에 대한 이해와 수용 능력, 또 그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적, 국수적 감정 개입의 조절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품위와 원칙을 지키며 건설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의 문제 접근 능력 등이 요구되겠다.
또 다른 혹자는 나에게 “우리 국민이 워낙 그러니, 불신으로 쓰여진 역사 안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니 그대로 받아들여라” 라고 한다. 나는 용납할 수 없다. 잘못된 점은 지적을 해야 한다. 비록 그 지적으로 마녀가 되어 불타 죽는 한이 있어도 망가져버리는 나라를 보며 한 숨만 쉬려니, 그 촛불시위에 편승되어 정부를 욕하려니, 정부의 편에 들어 어리석은 국민을 욕하려니, 내 양심과 지적 수준이 용납을 못 한다.
“소 귀에 경 읽기” 라는 옛말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모든 소가 벌써 광우병에 걸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