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신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한 명의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노조원으로서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노조가 추구하는 방향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큰 고충을 주는지,
그리고 그러한 고충이
취재 현장에서 시민들에 의한 야유와 방해로 인해
얼마나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지에 대해
십분 느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애쓰시는 모습에
일단 응원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응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BS노조위원장님,
SBS사원의 한 사람으로서
억울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대해서 구구절절히 설명하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해 한 번 고민해보셨으면 합니다.
지난 5월 31일 밤,
그러니까 경찰이 처음 물대포를 쏘던 날 밤에
삼청로 쪽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당시 공중파 방송에서는
촛불집회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해 시민의 입장에서
방송하려고 노력하는 방송사는
MBC밖에는 없었습니다.
물론 KBS나 SBS 기자분들도
마음으로는 시민들을 응원하는 입장에 있었겠지만,
적어도 시민들이 느끼기에는
MBC를 제외한 방송사는
시민보다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MBC 기자분들이 나타나면 "MBC! MBC!"를 연호하며 환호했지만,
다른 언론사에서 취재를 나오면
반응이 냉담하거나
심지어는 취재를 거부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죠.
31일날 밤, 혹은 1일날 새벽,
삼청동 쪽에서 KBS 기자분들이 취재를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은
KBS의 보도방향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드러내면서
취재를 거부했죠.
나중에 진보신당 칼라TV의 진중권 교수가
KBS 기자들을 인터뷰했는데,
그 분들 살짝 울먹이면서 억울하다고 하시더군요.
자기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렇게 시민들에게 외면을 당하니까 서글프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저도 그 인터뷰를 보았고,
그날 밤 시위 중계를 지켜보던 상당히 많은 분들이
그 인터뷰를 지켜보았을 겁니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마음 한 편에서
괜시리 미안한 기분이 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어차피 저 분들도 본인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데스크의 의지에 따라서 보도를 내보낼 수밖에 없는 입장일 텐데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날 이후 KBS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우호적으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KBS에 대해 시민들이 성원을 보내기 시작한 것은
6월 3일 새벽 취재중이던 KBS 기자가
전의경들의 폭력진압에 의해 부상당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KBS가
정치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에 대한 보도 방식을 '적극적'으로 바꾸면서 부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KBS의 시도를 압박하기 위하여
표적감사나 검찰의 과잉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KBS의 공공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촉발되었습니다.
이것이 일거에 터진 것이
지난 13일 있었던 '여의도대첩',
즉 3만의 시위대가 시청에서 여의도까지
장장 7km에 달하는 거리를 도보로 행진했던 사건입니다.
요는 이렇습니다.
SBS노조위원장님이 느끼실 법한 감정적인 억울함이라든가,
잘 해보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느끼는 답답함 같은 것들에 대해서
저는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정해지는
보도 방침으로 인해
취재 현장에서 겪는 고충에 대해서도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BS를 지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SBS는
뉴스 보도에 있어서
국민들에게 '믿음'을 안겨줄 만큼의 뚝심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은 KBS나 MBC라는 방송사 자체를 사랑해서
그들에게 성원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민영화 압박이나 표적감사 등과 같은
어려운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언론의식'에 박수와 성원을 보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공성에 대한 사수가
우리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건이기에,
KBS나 MBC와 '연대'를 취하면서
이들에게 성원과 박수를 보내는 것일 따름입니다.
만일 KBS나 MBC가 그러한 공공성 사수를 포기하고 편한 길을 택하려 한다면,
국민들은 언제든지 이를 비판할 것이고,
필요한 경우에는 이들에게 화살을 던질 것입니다.
SBS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만일 SBS가, SBS노조가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 여건에도 불구하고
공중파 언론으로서의 '공공성'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국민들에게 보여준다면,
국민들은 SBS가 굳이 '외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국민들의 입장으로는
공공성을 같이 수호해 줄 단 한명의 동지라도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SBS가 그러한 의지를 보여줄 자신이 없다면,
우리 국민들은 SBS노조에 대해서
동정이나 미안함을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SBS나 SBS노조를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SBS가 공공성을 '해치는' 방향의 보도를 반복한다면,
국민들은 기꺼이 SBS의 현장 취재를 방해할 것입니다.
SBS가 밉기 때문이 아니라,
편향된 보도로 인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공공성이 침해받게 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이 조중동 기자들의 취재를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SBS노조위원장 분께 묻겠습니다.
SBS노조는 주변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SBS의 공공성 사수를 위해서
기꺼이 스스로를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태영그룹이라는 사주를 두고 있다는 민영방송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공공성 수호를 당당히 내 걸 자신이 있습니까?
지금 길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시위하는 국민들,
이러한 국민들을 취재하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주는 언론들,
모두 자기에게 닥쳐올 지 모르는 억압이나 위험을 감수한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것입니다.
KBS에게든 MBC에게든
언론으서의 공공성을 지키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일정 이상의 '도박'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SBS노조는 그러한 '도박'을 감행하고
공공성 수호를 위한 투쟁에 나설 각오가 되어있습니까?
만일 그러한 각오가 되어있지 않다면,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노조위원장께서 올리신 글은
그냥 '푸념'으로밖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러한 푸념에 대해
잠깐의 미안함과 동정을 던질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것을 전폭적인 지지나 협조로 감싸안을 만큼의 관대함은 베풀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더러 야박하다고, 속좁다고 손가락질 하셔도 좋습니다.
그만큼 우리 국민들은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공성 수호를 위해서 '도박'을 걸만한 각오가 되어있다면,
실천으로 보여주십시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정확한 보도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SBS가 공공성 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뚝심 있는 논조 유지로 확신시켜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이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호소만으로 믿어줄 수 없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지난 넉달 간, 국민들은 너무 많이 속아왔습니다.
정부에게 속았고,
여당에게 속았고,
검찰에게 속았고,
언론에게 속았고,
경찰에게 속았습니다.
그들의 말을 믿었지만 마지막에는 언제나 뒤통수를 맞았고,
그때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한탄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국민들은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신뢰를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양심,
그리고 우리들의 양심을 뒷받침해주는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 미약한 토대를 지키기 위해
함께 위험을 무릅쓰고 애를 쓰는 KBS와 MBC,
경향과 한겨레, 오마이와 칼라TV 등이 그다지 두텁지 못한 방어선을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SBS가 진정 국민들의 언론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그 의지를 보여주십시오.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은 생계를 걸고 국민과 연대했습니다.
KBS와 MBC는 사운을 걸고 국민과 연대했습니다.
경향과 한겨레는 경영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연대했습니다.
오마이와 칼라TV는 군소언론의 어려움을 딛고 국민과 연대했습니다.
SBS는 무엇을 걸 수 있으며, 무엇을 내세우시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은 SBS노조 스스로가 얻어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 답이 국민과 함께 하는 쪽으로 내려진다면,
우리는 뒤늦게라도 SBS를 환영하고 기꺼이 손잡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답이 나오지 못한다면,
국민들에게 순간적인 동정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이기적이라고 욕하실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재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원하는 답을 찾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 2008. 6. 19. 어느 평범한 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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