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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좋은 이유

한동현 |2008.06.21 22:58
조회 71 |추천 2




 


일어나자마자 에인절스와 양키스의 경기를 보고, 방금 전까진 레인저스와 레드삭스의 경기를 봤다. 1시에 요미우리와 라쿠텐의 경기를 보고 이따 저녁에 삼성과 현대의 경기까지 보면 오늘 하루는 나도 작년 이대호의 타율 타점 홈런 장타율 4관왕에 못지 않은 야구관람 4관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들어 점점 야구를 더 많이 보고 있다. 초등학교 땐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김성래 응원하는 재미에 봤고, 중학교 땐 마냥 박찬호와 이승엽이 좋았다. 고등학교 땐 보충수업에 야자까지 하느라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 가서도 학교 사람들이랑 노느라 또 뜸했고... 강릉에 와서야 진짜 야구광이라 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매일 저녁 빼놓지 않고 야구를 보고, 때로는 토토에 돈을 걸기도 하고, 사무실에선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를 보며 히히덕거리고, 싸이와 개인 홈페이지에 사이비 야구 칼럼을 올리는 것도 모자라 블로그까지 운영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야구를 왜 좋아하나. 야구란 스포츠가 왜 매력이 있나. 거기에 대해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마침 마쓰자카가 복통으로 난타당하고 있기에, 티비를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문성수 동지가 어제 저녁에 98년 아시안게임 야구드림팀 1기 멤버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는 글을 쓰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그건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성수야 미안!


 


내가 야구예찬을 할 때면 항상 하는 말이 야구는 인간적인 스포츠라는 것이다. 야구에선 03~04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처럼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98~99시즌 KBL의 동양 오리온스처럼 32연패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야구는 아무리 잘해봐야 승률 7할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아무리 못해도 승률 3할 밑으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최약체의 팀이라 해도 연패를 끊어줄 에이스가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모든 프로야구 감독들은 3연전에서 2승 1패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야구에선 연승을 하고 나면 연패에 빠지게 되어 있다. 야구엔 싸이클이라는 것이 있어서 너무 페이스가 올라가도 좋지 않다. 야구는 인간적인 스포츠인 동시에 인간 중심적이기까지 하다. 야구를 제외한 어떤 구기종목에도 공이 아닌 사람이 들어와야만 점수가 나는 스포츠는 없다.


 


야구는 평등한 스포츠다. 야구엔 시간의 제약이 없다. 등 떠밀려 끝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야구엔 포기라는 것이 없다. 26년 역사의 짧은 한국 프로야구지만 9회말 투아웃에서 6점차를 역전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유명한 말이 있는 것이다. 라인업에 들어간 타자는 도중에 교체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세 번 이상의 타석에 들어갈 수 있다. 한 경기에 홈런을 열 개를 친 팀이건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한 팀이건 간에 아웃카운트 27개를 잡아내야만 경기가 끝난다는 것은 똑같다. 야구는 키가 무진장 작다고 해도 타격왕과 도루왕이 될 수 있는 스포츠고, 무진장 뚱뚱해서 잘 뛰지 못한다고 해도 홈런왕과 타점왕을 노릴 수 있는 스포츠다. 메이저리그엔 손가락이 몇 개가 없는 투수도 있었다. 타고난 신체조건의 제약이 적다는 점에서 야구는 정직하고 평등한 스포츠다.


 


야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리는 스포츠다. 혹자는 말한다. 야구는 너무 정적이고 지루해서 재미가 없다고. 하지만 야구 선수가 땀과 눈물을 쏟는 곳은 그라운드가 아닌 연습장이다. 당신이 야구를 해봤다면 선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는 외야플라이를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될 것이다. 눈으로 봐서는 절대 타구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야구선수들은 방망이가 공을 때리는 딱 소리를 듣고서 타구의 비거리를 예측해서 잡아낸다. 보통 연습 가지고는 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속 140km가 넘어가는 빠른 공을, 그것도 홈플레이트 앞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키며 꿈틀거리는 공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쳐내는 선수들.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야구를 잘할 수 없다. 17세의 펠레와 21세의 호날두가 세계 축구를 평정할 수는 있지만, 야구엔 어린 천재가 없다.


 


야구는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 사람들은 인생엔 세 번의 기회가 오는데 그 중에 한 번은 꼭 잡아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야구 속설 중에도 똑같은 말이 있다. 그래서 병살타를 세 번 치고서는 이길 수 없다는 얘기가 야구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위기를 잘 극복해내면 그 뒤엔 반드시 찬스가 오고, 찬스를 놓치면 다시 위기가 온다. 무사 만루에서 점수를 못 낸 팀은 다음 회에서 백이면 구십 정도는 점수를 잃게 되어있다. 축구는 한 골이 언제 터질까 하는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다면 야구는 인생에 찾아오는 고비와 환희처럼 사인코사인 곡선을 반복하며 역전과 재역전을 반복하는 재미가 있다. 


 


야구는 모든 팀이, 모든 선수가,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얼마만큼 열심히 했느냐, 노력했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리는 스포츠다. 장명부의 한 시즌 30승을 기억하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송진우의 통산 200승은 모두가 우러러보는 것처럼, 한 시즌에 얼마나 반짝했느냐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꾸준했느냐는 기록이 더 인정받는 스포츠다. 야구는 양신처럼 나이 마흔 살에도 여전히 최고의 타자로 자리잡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다. 공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고 너무나 사람 냄새 나는 스포츠다. 15년 전에 반짝했다 사라진 신인왕이 재활에 성공해 다시 MVP급 활약을 펼치는 것이 가능한 스포츠다. 감동을 주는 스포츠. 그래서 나는 야구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Impossible is Nothing, Baseball is Everything

[출처] 야구가 좋은 이유|작성자 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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