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가는 버스에서 창 밖으로 리어카에 폐지를 가득 싣고 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폐지 가격은 kg당 50원, 철근이라도 섞여 있다면 그건 kg당 100원. 할머니가 새벽부터 돌아다니면서 넝마주이를 하시고 고물상에 가서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보통 3~4천원. 내가 어제 본 영화의 영화표 값은 8천원이었다.
편의점이나 패스트 푸드점에서 일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나마 그런 알바 자리도 젊은 아이들을 쓰려고 하지 나이 드신 분들을 쓰려고 하지는 않는다.
대기업 노조도 있고, 중소기업 노조도 있고, 비정규직 노조도 있는데, 어째서 정말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노인 분들을 위한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많은 임금을 받아서 노동조합비를 많이 내는 대기업 노동자나, 수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보호할 가치가 있고, 정말 힘도 없고 가진 것이 없는 노인 분들은 보호할 가치가 없단 걸까.
서울시가 노점상 단속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각 구별로 노점상 단속 실적이 좋은 구에는 1억원의 재정지원을 약속하고, 이에 자극받은 구에서는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고, 용역업체에게 실적이 좋을 경우 성과금을, 실적이 나쁠 경우 벌금을 물게 한다. 용역업체에서는 결국 실적을 올리기 위해 과감한 단속에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는 폭력과 집기파손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용역업체 중에는 이름만 봐도 조직 폭력배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체들도 몇 보인다.
삼선교에는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보아 온 노점상 분들이 여럿 있다. 걸죽한 목소리로 과일을 파시는 아저씨. (굉장히 강건해 보이셨는데 많이 늙으셨다.) 군복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고 머리는 아프로 헤어를 하고 (자연 머리인 듯 하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깡마른 아저씨. 닭꼬치와 오뎅, 핫바 그리고 와플을 파는 부부 노점상. 오후 5시가 되면 포장마차를 끌고 나가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 그 옆에는 아주머니의 따님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불량식품을 10개에 천원에 팔고 계신다.
사업이 망하거나 직장을 잃어서, 아니면 애초에 가진 것이 없어서. 수중에 있는 100만원으로 그들은 노점상 가판을 맞춰서 길거리로 나온다. 그나마도 그 자본금도 없는 이들은 쉽게 빠른 '리드코프' 따위에 100만원을 빌려 3개월 정도 장사를 한 뒤, 이자를 포함해서 120만원 정도를 상환한다. (나는 대부업체를 무작정 비난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장사를 시작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노점상들에게 대부업체가 빌려주는 돈 100만원은 하나님이고 예수고 부처일 수 있다.)
무엇이 중요한가. 서울시가 노점상을 단속하는 이유는 노점상이 서울시의 경관과 환경을 해침으로서 서울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해치기 때문이다. 아무런 수익을 누릴 권리가 없는 노점상이 불법적인 도로 점거를 하면서 장사를 하며 시 행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 이유로 '생존'을 위해서 장사를 하는 노점상들의 가판을 뒤엎고 그 장사 밑천을 압수해 간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없어 붕어빵을 만들고 닭꼬치를 굽는 이들의 생계수단을 뒤집어 엎는 것이 정당화될 정도로 나의 '자유'와 '권리'가 그토록 소중한가.
대학교 1학년 때, 중동에서 여행사 가이드를 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이집트 남자가 타자 냄새가 나서 같이 못 앉겠다고, 애초에 표를 끊을 때 이 자리는 분명 혼자인 줄 알고 보딩했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항공기 사무장에게 길길이 따지던 한국인 중년 남자가 있었다.
그 순간만큼 내가 한국인이란게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자유'와 '권리'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내 것이더라도, 내가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 가 기실은 다른 이들에게 치욕을 느끼게 하고, 다른 이들의 목덜미를 짓밟은 끝에 유지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