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0년 3월 5일부터 5개월 동안 대왕 세종은 우리 역사상 최초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토지에 부과하는 새로운 세금제도인 공법에 대한 찬반 의사를 국민들에게 직접 물었던 것이다. 그 결과 17만여 명이 투표에 참여해 60%가 찬성한 것으로 세종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소통의 정치를 세종은 이미 오래 전에 실천했던 것이다.
세종의 위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비록 찬성 의견이 조금 많았지만 시행을 미룬 채 다시 면밀한 조사와 설득작업을 하고 나아가 전라도와 경상도에 시범실시까지 했다. 마침내 국민투표를 실시한 지 14년 만에 '연분 9등-전분 6등법'으로 최선의 세법을 내놓았다.
매년 작황을 풍년과 흉년 사이 9등급으로 구분하고 또 토지의 비옥도를 6가지로 나눠 총 36개로 구분한 뒤 1결에 10두의 정액세를 거두는 새로운 형태 공법을 도입하였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관리가 직접 논밭을 돌아보면서 수확량을 확인하여 세금을 정하는 방식이어서 지주와 관리 사이의 담합에 의해 수확량을 터무니없이 작게 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이 새로운 제도 도입이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반발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세종은 흔들리지 않고 이들 기득권 세력의 조직적 저항과 반발을 전문성과 일관성으로 이겨냈다. 세금을 줄였음에도 세수입은 더욱 늘어나도록 하는 성과마저 거두었다.
고유가와 쇠고기 문제로 궁지에 몰려 있는 이명박 정부는 세종에게 배울 게 많다. 우선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구상했던 개혁프로그램에 대해 세종과 같은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촛불시위 때문에 각종 개혁을 주춤거려서는 큰일이다.
지금 바깥에서 밀려오는 고유가와 세계경제 침체의 조짐들은 이런 개혁프로그램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우선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세금환급을 중심으로 하는 고유가 대책을 내놓고, 쇠고기 추가협상을 이끌어 낸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근본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날로 커지고 있는 경제위기 조짐을 염두에 두고 경제살리기를 하려면 개혁밖에 없다. 개혁프로그램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해서도 안 된다. 오래 걸리기에 하루라도 일찍 시작해야 하고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법질서를 바로 세우고 규제 개혁을 제대로 하면 우리의 잠재성장률을 적어도 2% 높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공공부문이 갖는 방만함과 비효율성을 바로잡으면 아마도 성장률은 그 이상으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혁프로그램은 기득권의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느새 공기업 민영화는 가격인상을 가져온다는 단순 논리가 팽배해서 개혁마저 무산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이때 정부는 세종이 사용한 과학과 인내의 카드를 꺼내 들어야 한다. 개혁프로그램의 필요성과 함께 그 내용과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꾸준히 설득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포퓰리즘이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또 선거 때마다 반복해온 사탕발림식 세금깎아주기를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인기에 영합한다면 상황은 최악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대학기부금을 세액공제하자는 등 각종 세금감면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 대학기부금에 세제혜택을 줘서 대학등록금을 낮출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반대할 정치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소득층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해주려면 예산으로 직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세금을 이용한 포퓰리즘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조세개혁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제대로 되고 오래갈 수 있는 감세의 장기구상을 만들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에서 가장 자주 세금제도를 바꾸는 나라라는 오명도 씻을 수 있다.
600년 전 대왕 세종이 14년 동안 철저히 준비하고 국민을 설득해 내놓은 조세개혁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때다. 소통을 통한 개혁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사례를 21세기에 한 번 더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ㆍ객원논설위원]
[출처] 매일경제 2008.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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