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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 #295

강재진 |2008.07.01 18:33
조회 108 |추천 1


 

 

오늘은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내무반 분위기가 가장 어수선해지는 날 중 하루입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부대 전체가 그랬죠.

훈련병 때 쓰고 그 후로는 펜을 꺾었다던 그 수많은 장병들이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손편지라는걸 쓰지 않나.

늘 콜랙트콜 애용하던 이들도 지난 주부전

자기 돈으로 전화카드를 사서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고,

 

초콜렛.

밖에선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사 먹을 수 있고

PX에선 그것보다 훨씬 싼 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그것.

하지만 부대안에서는 무엇보다 간절한 그것.

받고 나면 몇달을 버틸 힘이 되는 그것.. 바로 여자친구가 보내주는 초콜렛인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초콜렛을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이를테면 여기 최이병.

 

최이병이 있는 내무반 같은 경우는요.

사실 누가 초콜릿을 받아와도 걱정인 경우죠.

말하자면 최고 고참이 솔로인 경우, 그것도 얼마 전에 여자친구에게 무참하게 차인 경우,

이런 내무반에선 왠만하면 안받기, 받아도 안받은 척 하기,

먹어도 맛 없는 척하기, 그게 불문율인거죠.

 

근데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무반에서 서열로 쳐도 나이로 쳐도 제일 꼴찌인 최이병의 여자친구가 면회를 왔다는 소식.

미리미리 '몰래몰래 보내라' 소식을 보냈던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아직 전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최이병.

미처 손 쓸 사이도 없이 여자친구가 해맑게도 그 큰 상자를 들고 면회르르 온 거 였습니다.

 

- 자기야, 여기 보면 하나씩 포장된 거 있고

그냥 포장 안되고 박스에 넣어 놓은 거 있거든. 하나씩 포장된 거는 자기 혼자 먹어야 돼.

내가 밤새 일일이 포장한 거란 말야. 절대 다른 사람들 주면 안돼. 알았지?

그리고 박스에 뭉텅이로 들어가 있는 거,

그건 내가 실패해서 모아놓은 거니까 이건 아무나 줘도 돼. 알았지? 응?

 

여자친구의 신신당부를 뒤로 하고 내무반에 들어온 최이병.

삐딱하니 앉아있는 선임들의 눈빛에 질려서

초콜렛 상자를 황급히 내려놓으며 변명하듯이 말했겠죠.

 

- 저기 말입니다. 제 여자친구가 말입니다.

부대원들과 같이 말입니다. 다 나눠먹으라고 말입니다.

 

최이병의 말이 긑나기도 전에 김병장이 상자를 열어봅니다.

 

- 그래? 그럼 이거 내가 다 먹어도 된다, 이거지?

 

으르렁 거리며,

 

- 예, 그렇습니다.

 

대답했던 최이병.

그런데 지금 그 최이병 연병장을 신나게 돌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김병장이 초콜렛을 한 알 껍질을 벗겨봤더니 그 안에 이렇게 쓰여있었다고 하네요.

 

 너 누구야. 우리 자기 초콜릿 뺏어 먹으면 죽어.

 

다른 한 알엔,

 

자기야, 자기 혼자 먹는거 맞지?

 

그 몇백 알이 되는 초콜렛 한알 한알마다 말이죠.

 

이런 날씨에 후끈 김이 나도록 연병장을 돌고 있는 최이병.

그래도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상하겠죠.

그때 진짜 재밌었다고, 그 초콜렛 정말 달콤했다고,

내 평생 가장 행복했던 발렌타인데이였다고,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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