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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티드(wanted, 2008) - 최근에 한일이 뭐였던가..?

정지인 |2008.07.04 23:59
조회 182 |추천 0

 

원티드(2008)
제임스 맥어보이,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먼
2008.6.30 CINUS 19:35 7관.

 

 

※경고 : 이 글은 난독증을 겪는 누리꾼들에게 고통을 안겨다 줄 수 있을 정도의 길이라는 것과 다량의 스포일러 및 자세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절대 읽지 마시길 권합니다. 경고를 무시하신다면 저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꼭 유념하시길 바라며 아무쪼록 악성 댓글은 사양.

 

 

 

 

 


당신은 최근에 한 일은 무엇인가.

 

직장상사에 시달리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늘 긴장해야 하며,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번쯤 가져봤을 거창한 희망 따윈 이미 사라지고 그저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부류일 것이다.

 


웨슬리 깁슨도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뚱뚱하고 고약한 상사 제니퍼의 공포스런 스테플러고문에 발작을 일으키고, 직장동료가 자기 여친과 바람피우는 걸 알지만 대놓고 화도 못 내며, 늘 심장발작증세의 공포증으로 안정제를 달고 사는 그는 구글 검색창에 하릴없이 자신의 이름을 쳐보고는 여지없이 화면에 뜬 ‘검색결과 없음’ 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은행잔고엔 10달러도 채 들어있지 않는 답답한 인생. 남 일처럼 보이지 않는 그의 평범하고 재미없는 삶이 너무 처량 맞고 쓸쓸하다. 내 삶도 별반 다르지 않음에 동병상련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그런데, 평범한 사람에겐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일들이 그에게 찾아온다. 어디선가 갑자기 불쑥 튀어나온 여자 폭스. 이건 뭐 한번 봤다하면 눈도 떼지 못할 만큼의 매력적인 섹시녀가 눈 앞에 우뚝 서있으니 안쳐다보고 배길 남정네 어디 있으랴. 감상도 잠시. 느닷없는 총격전에 정신이 다 혼미한 웨슬리.

 

 

대체 영문도 모르고 총알 피해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지만, 몇 발짝 못가 이번엔 자동차 추격.

 

 

간지 제대로 흘러주시던 빨간 스포츠가 너덜너덜거릴 때 까지 차는 전속력으로 붕붕 날아다니니 제정신으로 버틸 사람이 어디있겠나. 진짜 그들의 액션은 대단했다. 사실적인 CG의 향연에 정신을 못차리겠고, 긴박감 넘치는 액션은 가히 탄성을 질러대게 하기 충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영화에서 그런 영상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이때부터 눈요기 거리는 충분한 영화로구나 싶었다. 하기야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안젤리나 졸리와 모건프리먼, 그리고 귀염둥이 제임스 맥어보이 주연이라는 것은 내용이 어찌되었던 한 번쯤 봐줄만한 필요성이 있었기에 원래 영화관을 찾은 목적은 ‘크로싱’이었으나, 급변경하기에 이르니.. (이런 변덕스런 1인).

  

문득 정신을 차린 곳은 똥파리가 왱왱거리는 어두침침한 공장 한 구석. 슬로언이라는 남자로부터 암살단의 일원이었던 자신의 아버지가 바로 어제 배신자무리로부터 암살당했다는 기막힌 사실과 자신 또한 아버지를 닮아 같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킬러로 선택되어진 사람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얼떨결에 파리의 날개까지 총으로 맞춰버린 웨슬리. 도저히 이 모든 사실이 믿기지 않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지만, 다음 날 잠에서 깬 그는 어젯밤 일들이 꿈이 아니란 사실에 아연실색한다. 그러나 곧 3,700만 달러(가물가물함)가 들어있는 은행잔고를 확인하고 전에 없이 UP된 표정이다. 돈도 생겼겠다 여세를 몰아 그동안 가슴속에 쌓였던 상관 제니퍼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한 무더기 내지르고(고딩 때는 분명 왕따 였을 니가 착한 인간이었다면 널 동정했겠지만 넌 정말 못된 년이다..등등), 여친이랑 바람 핀 직장동료는 아끼던 인체공학키보드로 냅다 갈겨주시고.. 유유히 회사를 걸어나온다. 이런 장면이 정말 통쾌한 거지.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 나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꾸는 행동거지인 이런 일탈은 언제 어디서봐도 가슴을 뻥 뚫어준다.

 

이제 킬러로 훈련받는 웨슬리. 맞고 또 맞고 또 맞는다. 킬러가 되는 과정이란 참으로 험난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타고난 킬러 웨슬리에겐 불가능한일만도 아닌 것. 자기 아버지를 죽인 배신자 크로스를 찾아내어 복수하겠다는 일념은 그를 최상의 킬러로 만들어놓는다.  

 

 

가장 멋진 최종적인 기술이며 관성의 법칙도 무시한 ‘총 휘돌려쏘기’까지 마스터한 그에게 이제 거칠 것은 없다. 물론, 킬러로서의 소양(?)은 아직 부족하여 첫 임무에는 실패하고 만다.

 

 

대체 그가 왜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심오한 철학적 난제에 휩싸여 고민하는 그에게 폭스는 말한다.

 

 

“1명을 죽이면 어쩌면 1000명이 목숨을 구할 수도 있어” 암살명단에 떴던 킬러를 쏘지 못한 초짜암살단원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까지 해주면서..정말일지도 모른다. 1명을 죽여 5천만명을 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살인이란 어떠한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그건 사형집행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필자에게는 사실 이런 이야기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인간윤리에 위배되는 영화라고 과감히 말하고 싶다. 그러나,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 비난하거나 따지지 말고 즐기자. 액션영화에서 사람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한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이던가. 따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결국 끝장을 내려면 이런 류의 영화 자체를 부정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단순한 킬링 타임용 액션영화를 가지고 심오한 논리까지 펼쳐가며 따지기에는 시간이 좀 아깝기도 하다.

 

 

각설하고,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한발 한발 다가서던 웨슬리는 예상치 않게 크로스를 쫓게 되고, 우연한 실수로 암살 단원이자 동료인 ‘러시안’을 죽이게 된다. 아마 러시안은 다 알고 있었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웨슬리를 쫓아왔다가 봉변당한  듯하다. 어쨌거나, 이제 차분히 복수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는 그는 자청해서 암살명령임무를 맡는다. 복수심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웨슬리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마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말이다.

 

크로스가 남긴 단서를 토대로 하여 결국 그와 맞닥뜨린 웨슬리. 대대적인 기차액션이 수백의 사람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바로 그 씬. 도대체 그 부자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이 장면을 좀 다르게 바꿨다면 어땠을까. 사족이지만, 이 씬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기차 앞쪽으로 대피하도록 하고 웨슬리 부자랑 뒤따라온 폭스만 기차 맨 뒷 칸에서 사생결단을 내는 걸로 갔으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방관하는 이 영화에 역시 최소한의 도덕적 마음가짐을 갖기 바라는 것은 무리였던가. 왜 죽여야 하는지도 납득하지 못해 첫 임무에 실패했던 웨슬리의 캐릭터를 좀 더 살렸다면..? 하기야 이미 킬러라는 건 사람을 죽이는 사람인데 정의나 윤리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기차 씬에서 대박인건 바로 반전이 있다는 사실이다. 기차에서 떨어질 뻔한 웨슬리의 팔을 잡은 크로스. 그의 표정에선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자신을 구해준 것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때는 이때다 싶은 웨슬리의 총구에선 이미 총알이 발사된 후다.
피를 잔뜩 흘리며 가까스로 말을 하는 크로스.


“YOU ARE MY SON..."


마치 스타워즈의 “I'm your father”가 오마쥬처럼 떠오르는 순간이다. (오잉!! 도대체 이 황당한 반전은 뭐임?) 이 기막힌 분노와 당황스러움. 자신을 죽이러 따라온 폭스에게 사실 확인을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YES”다. 

 

 

진실은 이러했다. 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방직기계의 암살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뜬 것을 알아차린 슬로언은 그때부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암살명단을 바꾸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웨슬리의 친아버지 크로스를 배신자로 몰았던 것이다. 굳이 웨슬리를 끌어들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친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죽이지는 못할 테니 토사구팽 할 심산 이었을 것이다. 물론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왜 옛 말 에 청출어람이 청어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가 나왔으니, 단 한 가지 슬로언의 계산착오는 웨슬리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완벽한 킬러로 훈련시켜놓고 이제 와서 죽이려고 하다니.. 자승자박 만이 남은 것인가.

 

 

아버지를 원수로 오인해 죽였다는 자책감에 괴로워할 틈 없이 웨슬리는 진짜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위해 운명을 내맡긴다. 다만, 자신의 아들은 킬러로서의 삶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가정을 갖고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삶을 살기 바랐기 때문에 앞에 나서지 못하고 멀리서나마 아들의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아버지.

 

 

크로스가 계획했던 슬로언에 대한 복수는 이제 아들 웨슬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대물림된 복수플랜에 어쩌면 이것이 운명일 것이라 직감하는 웨슬리. 그 자신이 인간무기가 되어버린 지금 그의 눈동자에 더 이상 흔들림은 없다.

 

 

단 6주 만에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으로 다른 삶을 살게 된 웨슬리. 아니, 어쩌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정해진 운명의 삶인지도 모른다. 단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일 뿐. 이제야 진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운명을 받아들인 결과라고 해야 할까.

 

러시안과 아버지의 유작..이라해야할지. 그 뜻을 이어 생쥐폭탄을 대량살상무기로 이용하여 암살단의 본거지인 방직공장을 박살내버린 웨슬리.

 

 

암살단원들에게 슬로언의 실상을 폭로해버리지만, 암살명단에는 사실 슬로언의 이름만 올라있는 것이 아니었다. 암살단 전원에게 내려진 암살명령.

 

 

그 명령에 따르고 싶다면 이 자리에서 총을 물고 목숨을 끊으라는 슬로언의 말에 모두들 당황하는 눈치다. 그러나 폭스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듯하다.

 

 

일순간 결연한 의지의 눈빛. 그녀의 휘날려 쏘기가 빛을 발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폭스가 던진 총을 잡아챈 순간 고개를 돌린 웨슬리가 본 것은 힘없이 쓰러지는 그녀의 옅은 미소였다. 살인을 정당화하면서까지 천년동안 존재해왔던 암살단 그들의 목적은 1000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명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선택했던 일이고, 그것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그녀가 던진 총이 의미하는 것은 웨슬리에게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라는 것일 게다.

 

그는 곧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와 함께 슬로언도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지난 6주간 그가 겪은 폭풍과도 같은 일들이 어쩌면 현재의 그를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는 웨슬리 깁슨. 검색창에 이름을 넣어도 여전히 그를 정의하고 있는 단어나 문장은 “검색 결과 없음” 이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런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 의해 정의 내려지지 않고 정의 내려지지 않는. 아무도 그를 모르는, 은둔의 삶이자 1000명의 목숨을 구하는 킬러의 삶.

 

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이 최근에 한 일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심오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마지막 질문이 내 가슴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최근에 한 일은 6주전 웨슬리의 평범한 삶과 절대로 다르지 않은 그런 일상의 일들 중에 하나였다. 물론, 지금 이 순간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인생을 낭비하고 허비하며 살 수는 없다고 얼토당토않은 이 액션영화를 보면서 느꼈다면, 나 너무 중뿔난 것일까.


검색창에 내 이름을 넣으면, 나를 정의하는 문장은... 아마도 6주전의 웨슬리처럼 “검색 결과 없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당당하게 최근에 네가 한 일은 무엇이냐고 묻기 위하여. 또한 당당하게 대답하기 위하여 이제부터는 좀 심오한 고민을 해봐야겠다.

 

몇 년 뒤 나의 삶이 웨슬리처럼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삶보다는 좀 더 의미심장해 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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