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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받아들이기

정인영 |2008.07.06 11:56
조회 84 |추천 0

다른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그 문화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단순한 이론이지만, 바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과제이다. 영어에 대한 열의가 사뭇 거국적인 이 시점에서, 한 두 가지 예를 들어봄으로써 나의 눈에 비춰진 '한국인의 영어'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전달해 개선의 계기가 되게하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Hong, Gil Dong(홍길동)으로 적는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거의 모두가 다 그렇게 표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알파벳으로 적기는 하되, 한글의 특성대로 한 음절이 한 글자인 것을 영어에도 적용하여 음절대로 분리해 적고있는 것인데, 이는 옳지 않은 방법이다. 성이 '홍'이요, 이름이 '길동'이라면, Hong, Gildong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식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이름들은 언제나 어느 것이 first name이고, 어느 것이 middle name인지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허다하며, 홍길동의 경우에는 결국 Gil로 인식되고 불리우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라, 일본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Ko Ba Ya Shi라고, 또는 Ki Mu Ra라고 쓴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어이없는 실수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오랫동안 답습되어온 실수이기에 별반 틀렸다는 깨달음조차 없이 그냥 그렇게 쓰여지고있는 것 같다.

 

나는 기회가 닿는대로, 출판물이 발행되기 전에 내 목소리가 들려질 수만 있다면, 올바른 방식으로 표기해줄 것을 꾸준히 제의하고는 했었는데, 소수의 사람들이 신선한 생각으로 수긍하며 반겨준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수정의 밑거름이 되어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Youn Woo'라고 이름을 썼을 때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발음 상으로나 기억 면으로나 많은 어려움을 겪은 후, 새삼 영어식 이름 표기를 고민하던 '연우'라는 이름의 친구를 도울 때, 나는 'Yonoo'라고 적도록 권했었다. 우리가 '연우'를 부를 때는 '여누'라고 부르거늘, 이 얼마나 쉽고도 적절한 표기법인가! 한국인의 이름들의 음절대로 구분된 표기를 익히 봐왔기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언제나 글자 그대로 '연-우', 또는 '인-영'이라고 힘겹게 따로 분리해 발음하느라 애먹는 것을 늘 접하고는 하는데, 이는 사실, 우리의 실수로 빚어진 얼마나 불필요한 불편인지...

 

한국 사람들이 흔히 잘 쓰는 말 중에 '화이팅!'이라는 응원의 표현이 있다. 미국에서 20여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그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최근, 영어를 한글로 풀어쓸 때, 보다 소리나는 그대로 정확하게 표기하고자 하는 흐름이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일제시대식 발음의 잔재를 지우고 보다 현실에 맞는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반가웠다. 때로는 그것이 지나쳐서 문맥의 흐름에 지장을 주고, 그 단어만이 우스꽝스럽게 튀는 데에 관심이 쏠리게 되고 마는 경우도 있지만... 투쟁적 표현을 싫어하는 내 개인적 취향은 덮어두고라도, 있지도 않은 영어인 '화이팅'을 나는 그저 한국식 영어의 한 단면으로 받아들여 왔었는데, 이제 이 정체 모를 한국식 영어마저도 소위 본토적 정확성을 기하기 위함인지, '화이링'이라고 종종 쓰여지는 것을 보며 이 국적 없는 표현의 근거 없는 탈바꿈에 또 입맛이 웬지 씁쓸해지는 것을 느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나는 '감사합니다'보다는 순 우리 말인 '고맙습니다'에 더 정겨움을 느끼며, '화이팅!'보다는 '아자!'에서 한결 더 힘이 솟는다! 순 우리의 말을 사랑하고, 외국의 언어를 쓸 때는 그 문화의 이해를 바탕으로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수년 전에 YG entertainment에서 발매될 CD 커버의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YG 사장님에게 이름 표기에 대한 나의 의사를 설명했었고, 그 의사가 프린트물에 즉시 반영된 적이 있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바뀌면서 그 기뻤던 개혁은 지나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Hyun Suk Yang 대신에 Hyunsuk Yang으로 프린트되어 나온 출판물을 보며 얼마나 기쁘고 고마웠던지! 이번에 새로 일하게 된 영화 제작에 앞서, 나는 작가와 executive producer에게 영화 중에 나오게될 영화 자막에서와 영화 시작과 끝에 나올 크레딧 리스트에 나올 한국 이름들을 나의 뜻대로 올바르게 표기해줄 것을 이미 첫 미팅에서 제의했고, 단 한방에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음절마다 글자 하나하나가 끊어지는 한글과 그 쓰임새가 다른 영어를 쓸 때, 한국식으로 음절을 끊어 표기하는 것은 알파벳으로 글씨를 쓰되, 영어를 하지 않는 것과 같고, 이는 즉, 그 나라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LA나 New York에서 살되, koreatown만을 맴돌며 세계인의 한 사람으로써가 아닌, 타향에 와서 얹혀 사는 한국 사람임을 늘 마음 한구석에 짐 처럼 떠받들고 사는 것과 같다. 언제나 향수에 젖어 힘겹게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람들은 흔히 미국의 폭력 문화나 인종 차별에 대해 과장해 말하며 배타적, 소극적 자세를 고수하며 사는 듯 보이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쇄국정책을 온전히 버리라고! 자신의 마음의 문을 조금씩이라도 열어서 새로운 공기와 문화를 들락날락하게 해두고 살다 보면, 남의 문화도 내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융통성이 생기고, 이는 곧 자신의 사고와 더불어 스스로 얽매어뒀던 자신의 올가미를 풀어주게 되며, 타향이 곧 고향이되고, 한국인이라고만 믿어왔던 자신이 세계인임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자유(liberty)의 길이라고!

 

영어의 그릇된 사용에서 느꼈던 사소한 불만감을 얘기하려다가 그만 너무 길어져버렸다... 한가한 독립 기념일 연휴에 홀로 이렇게 외치고 앉아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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