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적어도 10년 전) 이념이 목적이었고 투쟁은 수단이었다. 지금 십년이 지난 후 이념은 수단이고 투쟁이 목적이 되었다. 과거 이데올로기 투쟁을 만끽하던 그때의 청년들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아직도 그때의 이데올로기를 투쟁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늙수그래한 386 세대들 만이 자본주의적인 머리를 숨기고 권력 투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과거에 몸 담았던 시대에 그들의 이념과 이상은 정말 아름 다웠을것이다. 가난과 자본 집중, 독재 정권, 군사혁명, 민족 자주, 분단 국가 등, 이념이 모든 것을 지배하기에 완벽한 환경이었다. 우리는 일제 36년과 육이오를 거치면서 봉건제가 사라졌고 이 땅의 기득권은 오직 침탈세력과 흡착해 가면서 성장하였다. 가난한 사람을에게 필요한 것은 가난한 민족을 착취하는 외국세력과 결탁한 군사 정권과 재벌들을 타파하여 그들의 부를 원래 주인들에게 돌려 주는 것이었고 외부 세격들에 의해 말살되어 가는 민족 정기를 지키기위해 공산주의와 민족성 수성과 식민잔재 청산을 제 일의 가치로 살아온 북한 정권과 통일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우리만의 일등 국가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야 하는 그들의 민족주의와 인류애는 사실은 편협한 민족주의 독재에 불과하였으며 글로벌한 범 인류애적 박애주의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리고 독재 정권에 대한 민족적 항거는 폐쇄적인 자기 만족에 불과하였다. 그러한 것은 쟁취하지 못하는 이상적인 사상이거나 혹은 쟁취하더라도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리게 될 사상이었다. 현재 스피드와 효율을 제일의 가치로 삼는 현 시대에는 이러한 가치에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구시대적 기준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바뀌었다. 그들의 이상주의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더 이상 나가지 못하였다. 그렇게 원했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나 빈부격차가 없는 지상 낙원은 현실성 없는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서울대에서 조차도 막스주의를 별도 과목으로 공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ND니 PL계열이니 하면서 마치 자신들이 레지스탕스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386들이 몇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도 지금은 자식들을 과외시키러 돌아 다니고 미국에 어학연수 보내면서도 빈민아이들을 위한 자선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 짐바브웨가 어디에 있는지도, 그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 지고 있는지에 대해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버지이고 어머니가 되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새롭게 등장한 이슈가 바로 소고기 파동, 과거 그들이 정권탈취를 위해 사용했다가 사회주의 정권에서 잠시 접어 두었던 그들의 이상. 그리고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그들의 지위를 유지 할 수 있었던 이념들이 다시 전면에 정권투쟁의 상징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과거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이성적인 국민들이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향유하는 이데아 였지만 사실은 그 이상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인간의로서의 도덕적인 의무를 우리 스스로가 부 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그들은 아직도 모를리 없을 것이다. 과거와 명히 환경이 엄청나게 바뀌었음에도 그들이 이를 모를리 없다. 그들의 투쟁 대상이었던 이념의 투쟁대상이었던 정권도 재벌도 이제는 없다. 오직 경쟁자로서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념을 들고 나오는 것은 과거 군사정권이 반공과 자주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처럼 이들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사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뿐이다.
군사 정권에서 민주 정권으로 넘어 갈 때 기득권의 반발은 크지 않았다.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이미 이념을 실용주의로 바꿨던 그들의 정책은 기득권을 거리로 내몰 만큼 세지도 않았고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다만 그 정권들은 기득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사회주의 를 강령으로 택하였고 그들에게 이념적인 바탕을 제공한 사람들은 과거 길거리에서 투쟁하던 골수 사회주의자였으나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그들도 달콤한 권력이 맛에 탐닉되어 머리는 자본주의가 되고 마음만 사회주의자로 남게 되었다.
이제 정권을 내어 주어야만 했던 이들은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투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념을 사용하는 것이 달라진 것이다. 그것도 소고기를 기화로 하였다는 것은 정말 체면 구겨지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제 더 이상 이념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념 투쟁시대는 아마 10년은 지나야 다시 재개될 것이다. 이 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면 새로운 사회 이슈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슈는 이념이 아니라 사회 문제나 경제에 거한 이슈가 되어야 한다. 현재는 오직 정권을 보유한자와 아닌자의 투쟁일 뿐이다. 과거의 순수한 이념은 이제 더 이상 젊은 피를 끓게 하지 못한다. 촛불시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이 피가 끓었던 것은 이념이 아니라 소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때문이었다. 이념이 개입되면서 급격하게 견제가 늘어 난 것은 이제 더 이상 이념장사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제 이 소고기 파동이 잦아 들면 386시대의 이념 투쟁은 종식을 고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정권이 북한과 손 잡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