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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만연한 사회, 그리고 변화.

박정헌 |2008.07.11 02:17
조회 41 |추천 0

얼마 전 중국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켈로부대원’ 장근주 씨가 끝내 사망했다. 한국전쟁 중 미군의 켈로부대 부대원으로서 중국에 파견된 지 58년만이었다. 그는 한국전쟁이 종전되자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수년 간 투옥생활을 하였고, 중국 국적을 받기를 거부한 채 죽는 날까지 무국적자 생활을 하였다. 그의 사정이 알려지며 국내에서 그를 돕고자 하는 운동이 펼쳐졌지만, 법무부는 그에게 국적을 부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결국 그는 "뼈라도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과 함께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장근주 씨의 사례는 우리에게 국가의 실체에 대하여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스스로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 인하여 징집되었고, 외국에 비밀리에 파견되어 첩보활동을 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국가는 그 대가로서 그에게 수년간의 타국 감옥생활을 선물했고, 죽는 순간까지도 철저히 그의 존재를 부정하며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은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물론 국가로서 대한민국은 북한을 비롯한 외세의 위협을 방지한다. 그 대가로 개인에게 국가의 체제 유지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이에 순응하는 개인에게는 체제를 위협하지 않을 만큼의 자유를 보장한다. 또한 학교교육과 군대를 통하여 끊임없이 국가의 존재와 필요성을 개인에게 인식시킨다. 그 결과 국민은 스스로를 국가와 동등한 지위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열등한 지위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여론을 통하여 위기감을 확대시키고 개인의 선택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폭력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모든 행위이다. 개인의 존엄성을 위협하는 국가로부터의 폭력에 대응하여, 국민이 보여주었던 모습 또한 폭력의 연속이었다. 비록 시대상황의 한계가 있었지만, 이른바 ‘운동권’이 국가의 폭력에 대응하였던 대표적인 방법은 과격한 시위였다. 이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더불어 국민 스스로 폭력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가 결여되었던 탓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초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단어는 아마도 ‘폭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5월부터 진행된 촛불집회는 우리에게 폭력의 변화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전히 공권력은 폭력적이었지만, 국민들은 끊임없이 ‘비폭력’을 외쳤다. 그리고 서울광장에서는 일반 시민들이 발제자와 토론자가 되어 서로를 경청하며 설득했다. 시민들의 비폭력적인 의사표현에 공권력은 무력했고, 결국 정부는 시민의 의견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폭력으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인정하고 적응할 것인지, 아니면 다양성을 존중하는 통합의 사회로 바꾸어나갈 것인지는 시민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장근주 씨가 국가에 의하여 또 하나의 희생양으로 떠나갔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을 꿈꾼다. 개인이 공동체 안에서만 존재가치를 갖는 전체주의가 절정에 이르렀던 시절에도 언제나 이에 저항하던 시민들은 존재했다. 대한민국의 시민들 또한 폭력적인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그 가능성은 그들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후에 다시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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