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 그는 강력반 형사.
영화속 그는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인 것으로 비추어진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보다는 게으르고 나태하게 그려진다.
영화초반에 나는 이러한 강철중의 성격이 몹시 못마땅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무조건 화를 내는 그의 모습은 '오버'에 다름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딸자식 라면만 먹게하는 형사 일 따위 때려치우겠다며 틈만 나면 사직서를 내는 그의 나태한 모습은, 뒤늦게 찾아온 한낱 방황의 모습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형사 말고 다른 직업을 준비해놓은 것도 아니고, 직업없이 살아갈 만큼 수중에 몇억원의 돈이 쥐어져 있는 것 역시 아니며, 여타 다른 자구책을 마련해놓은 것도 아니면서 행동만 앞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그의 이러한 성격은 경찰직을 하면서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님께 드릴 귤과 딸기를 두 손에 한가득 들고 집 근처 골목길을 태연히 걸어가고 있을 때, 나이어린 17세 소년의 칼에 배를 찔리는 나날들. 즉, 우리에겐 '일상'이 그에겐 '마지막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상황.
경찰서에서 잠 좀 잘라치면, 고딩들이 눈 시퍼렇게 뜨고 제 목소리 높여가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상황. 늘상 폭력깡패를 상대해야 하는 어둡고 무섭기도 한 분위기.
강철중은 강철중의 성격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강철중이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고 싶겠는가. 강철중이라고 세상에 대한 반감 없이 회의 없이, 세상에 만족하며 룰루랄라 즐겁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강철중을 지금의 강철중으로 만든 그 사회. 그 폭력. 그 어둠. 그것들이 못마땅한 것이지, 강철중이 못마땅해서는 안 되었다.

강철중의 성격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 그건 그저 형사직을 위한 수단이고 생계를 위한 수단일 뿐 강철중이 진정으로 그런 성격을 타고난 건 아닌 듯 하다.
감정적으로 보이지만 그건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그는 그 누구보다도 이성적으로 사건을 해결했다.
강철중과 정재영이 둘이서 싸우는 장면에서였다. 강철중은 삶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지경. 그런데도 그는 이성을 지켰다. 강철중의 손엔 총이 쥐어져있었는데도 정재영을 한 방에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는 그 총으로 정재영을 한방에 저 세상으로 가게 할 법한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재영이 자신과 같은 조건에서 싸울 수 있도록 죽지 않을 정도로 총을 쏜 다음, 비교적 대등한 상황에서 다시 싸운 바 있다. (강철중의 배에 난 상처는 정재영이 그의 부하들을 시켜 입은 상처이므로, 강철중이 정재영을 총으로 다치게 한 것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강철중이 게으르게 보이지만 그것도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일 뿐.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한해서는 부족한 잠 채울 겨를도 없이, 그 일에 몰입한다. 열정적으로 일한다. 배에 빵꾸 난 상황에서도 그 아픔을 이겨내며 일한다.
강철중! 그는 멋있다. 일을 할 때만큼은 진지하고 냉정한 그! 어쩌면 그의 신경질적인 성격과 세상 일에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태도는 형사일을 하다보니 표현되는, 겉으로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도 침착하게 일을 해내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에 솔선수범한다.
아무튼. 강철중을 겉과 속이 다른 지금의 강철중으로 만든 사회가 무섭다.
음. 그리고 영화 속 폭력사회가 정말 실재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그러한 사회를 나 몰라라 살아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강철중이 멋지다.

마지막으로 영화 장면들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그 장면은 정하연이 칼에 찔리는 끔찍한 장면도 아니다.
정육점 주인장이 정하연의 시체를 부검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도 아니다.
강철중과 정재영이 마지막을 겨루는 장면도 아니다.
그 장면은 정재영의 수하 변호사가 미소짓는 장면이다.
강철중과 정재영이 마지막을 겨룰 때 그 장면을 방관하며 웃음짓던 그 장면이다.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실감나게 싸우던 강철중과 정재영에게 초점을 맞추던 장면에서, 영화의 화면이 변호사의 웃음으로 넘어갔을 때! 관객들은 폭소를 금치 못했고 나 또한 와하하 웃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뒤돌아서서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리니, 내 얼굴엔 씁쓸한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하는 그런 웃음이 피었다.
흠. 배울 수록 비겁해질 위험도 커지나.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는 영화였고
그만큼 웃음도 많았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