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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등대 1

윤정원 |2008.07.23 17:46
조회 36 |추천 0

 

 

뭉그레진 종이 위를 급하게 스치고 지난 듯 했다.

 

죽을 듯 달려온 먼 길이 후회스럽지 않았다.

입에 거품을 물고 한 달음에 훠이 훠이 갈매기 날 듯 교실까지 뜀박직을 해댔다.

 

후우~

한 숨 돌리자...

 

드리워진 커튼을 살짝 말아 올렸다.

달빛이 스물스물 초록색 책상 위를 달린다.

 

이거였구나...

 

늦은 저녁을 먹고 한참 숙제를 하던 차였다.

전화를 받은 것도 그때였다.

 

뭐해... 

그냥 있지 뭐...

 

봤어...

뭐.. 뭘...

 

못봤구나... 편지...

편지... 무슨 편지...

 

책상에 있어... 편지... 아까 특활 시간에...

끊는다...

 

저녁 먹어야지 어디 가노...

학교요... 선생님이 찾아요...

 

전활 끊자마자 냅다 달렸다.

녹슬어 이가 맞지 않은 초록색 대문을 박차고 지났다.

평소엔 잘 다니지 않던 강둑 지름길을 선택했다.

 

5분은 단축되겠지...

 

페인트 칠이 다 벗겨진 채 수명을 다 한 푸른 등대도 오늘만큼은 인사를 하지 않았다.

오래된 둠벙을 아슬아슬하게 지났다.

 

3층 맨 오른쪽 끝...

신발도 벗지 않고, 차가운 도끼다시 맨 바닥을 이소룡처럼 가로질렀다.

 

드르럭...

 

3분단 맨 뒷 자리가 내 자리였다.

지난 주, 환경미화 때 써 붙인 이름표가 누가 봐도 내 자리임을 알려 준다.

 

온 몸이 땀이다.

 

후우!

한 숨 돌리자...

 

 

창문 너머 푸른 등댄 밤에는 검기만 하다.

오늘은 달빛이 등대를 대신한다...

푸른 빛...

 

네 자리 맞지...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편지는...

 

난 수학을 잘 못해... 좋아하지도 않고... 그냥 네 자리가 어딘지 궁금했어...

 

특활은 금요일 마지막 시간이었다.

일 주일에 한 번씩 말 그대로 특별 활동 시간이 돌아오는 것이다.

담임 선생님 전공에 따라 반을 개설했는데, 우리 담임은 수학 담당이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생활수학... 뭐 그런 거다.

 

우습지... 그냥 네 자리에 앉아 보고 싶어서 생활수학 신청했어...

반장 자리라 그런지 눈에 확 띄던데...

 

큭큭... 같이 앉던 짝지가 책상 위에 반장이란 글자를 크게도 적어 놨었다.

 

8시까지 나와... 등대...

 

허걱!

게시판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시곈 벌써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8시 10분!

 

이런 젠장...

 

다시 달렸다..

 

거의 어두워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등대만 생각하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첨벙...

제기랄... 한 발이 살짝 둠벙에 빠졌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나왔다.

 

등대다.

굴 껍데기 냄새가 비릿하고 역겨웠다.

 

헉.. 헉... 헉...

 

왔어...

어......엉.

 

아까 봤어, 너 지나가는 거..

뭐! 그럼 부르지 그랬어...

 

편지 때문에... 너 그거 보러 학교 가는 거였잖아...

......

 

어두워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편지 봤어...

어.. 잘...

 

크하하하... 너 빠졌어....크하하하

아니... 응... 오다가... 둠벙에... 그래도 한 발은 멀쩡해... 히히히...

 

화들짝 웃기만 하던 웃음이 등대를 타고 흐른다.

등대가 아이가 되고, 아이가 등대가 되는 푸른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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