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해? 영화? 뭐? 그 영화 나랑 본거잖아.
하긴.. 이상하게 봤던 것만 또 보게 되더라.
어, 난 엄마랑 요앞에 잠깐 나갔다가 방금 들어왔어.
우리 엄마 운동하거든. 밤에 앞뒤로 손벽치면서 걷는 거 있잖아.
아니, 난 손벽 안쳤지. 옆에서 걸었어.
밥? 아, 너무 많이 먹었지. 안 그럴 수가 없었어.
어제 가족들 다 앉아서 밥 먹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는거야.
계속 음식 밀어주시는거지.
'야, 이건 진짜 한우랜다. 얘.' '이건 진짜 굴비래.'
아, 예전 같았으면 배부르고 살찐다고 그냥 딱 그만 먹고 말았을텐데.
이번엔 그게 안되더라. 엄마가 너무 좋아하시니까,
계속 먹을 수 밖에 없는 거 있지.
엄마한테 잘하는 거 참 쉽구나 싶더라고,
밥만 잘 먹어도 되고,
같이 동네 한바퀴만 걸어도 되고,
회사에선 택도 없잖아.
누가 나 밥 먹는다고 이쁘다 그러겠냐.
엄마랑 같이 동네 한바퀴 걷고 달도 보고 그리고 집으로 오는데..
나 갑자기 너한테 되게 고마웠어. 작게작게 잘하는 거.
아무것도 아닌 걸로 잘하는거.
좀 귀찮아도 잘해주는 거.
이런 거..
니가 아니었으면 너한테 그때 한번 제대로 혼나고
한번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나 아직까지도 몰랐을 거 같애.
이번에도 엄마한테 막 짜증이나 냈겠지?
'아, 내가 알아서 먹을게 밥 굶고 다니는거 아니잖아.' 그랬을거고
'오랜만에 쉬는데 좀 누워있으면 안돼?' 그랬겠지?
난 사실.. 우리가 잠깐 헤어졌을 때가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좀 싫고 그랬거든.
일단, 그 전에 왜 내가 잘못했던 거 생각하면 막 귀 막고 애국가 부르고 싶어지고,
또 헤어졌던 동안 니가 너무 냉정했던 기억도 나서 좀 우울하기도 하고,
그런 일 없이 그냥 지금처럼 잘 지내왔더라면..
늘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닌 거 같기도 해.
그냥 그렇다고..
근데 나 요즘 참 좋다. 그냥 그렇다고,
그대가 없었다면,
그리고 그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사소한 것들이 이렇게나 행복하진 못했겠죠?
연휴 내내 티비 앞에서 하루종일 '과학수사대'만 봤다는 그대.
스카치 테이프만 보면 막 지문 떠야될거 같다는 그대.
그대의 낄낄낄 웃음.
끝도 없는 이야기.
어디 멀리까지 가서 한우를 절반가격에 사왔다는 엄마의 자랑.
언제나처럼 나란히 앉아 뉴스만 봐야하는 아빠와의 어색한 시간.
송편을 100개나 먹으면서 '이상하게 살이 찐다.' 고 화를 내는 누나.
그리고 아직도 전화기 저편에서 CSI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대.
같이 있어서 좋고 또 고마운 사람. 그랬던 날.
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