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삼국시대의 첩보전

박인영 |2008.07.28 00:29
조회 800 |추천 0

경북 군위군 효령면 장군동과

경북 경산시 압량면 압량벌은

 

어떤 관련이 있어서 여기다 썼냐 하면은

어릴 적 시골에 가려면 대구의 북부버스정류장에 가서

새벽 5시30분에 있는 첫차를 타면,

항상 탱크가 이정표처럼 우뚝 서 있는 다부동

(다부동 근처엔 동남아시아 각 나라의 6.25참전기념비가 많다.

6.25최악의 격전지 다부동은 대구와 부산을 제외하고 완전히

점령당했던 초반전세에서 대구를 막는 마지막 길목이었다.)과

조금 더 지나가면 개울하나에 산들이 가로 늘어선

가운데 길에 좁은 벌판인 장군동을 지나가야 했다.

 

그 곳을 지나는 길이면 장군1리 장군 2리...

계속해서 장군 3리까지 있는데

그 곳을 다 지나갈 때까지 

산들 사이에 개울하나, 그리고 좁은 일차선 길이었다.

 

그렇게 시골길을 차를 타고 지나갈 때 아버지는

내내 이동네는 무슨 일이 있었고, 무슨 이야기가 있고 하는

동네마다 어찌 그리 많은 이야기들을 다 알고 해 주시는지

듣고만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장군동. 여기를 지나갈 때 왜 이름이 장군동이냐고 신기해

하면서 여쭤보니까 이 곳이 삼국시대 김유신 장군과

관련이 있는 동네였다며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내용은

압량벌에 김유신 장군은 거의 3년, 햇수로 2년을 꼬박 넘기면서

군사훈련을 시키고 있었는데, 그때 당시로는 경산시 압량벌은

백제군이 관산성을 넘어오거나,

통재(나제 통문을 말함)를 넘어와 경주로 가자면 맞딱뜨리게 되는

최전방이었고, 신라에게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당연히 삼국시대 마지막 결전의 몇 십년을

이 곳은 항상 군사 요충지였던 것이었다.

물론 요즘도 여기 가까이엔 군사요충지이다.

 

국가 중대사이자 삼국통일을 위해 태종 무열왕을 등극시킨

배후인물 김유신은 압량벌에서 군사훈련을 시켜가며

집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한다. 몇년간.

그러니 그런 집요한 김유신을 어떻게 무너뜨려 보려는 세력이

당시에도 있었지 않겠는가...역시 있었겠지?

 

뭐 내부자 일수도 백제의 끄나불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비담이 공식적으로 신라왕가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시도했었고,

혼사동맹이었던 무왕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도

세월지나고 나이들어 시들시들 해졌을 그때였을 터다.

 

이 때 당시 백제와 신라는 영화 '황산벌'에서도 볼 수 있지만,

첩자가 서로서로 백제와 신라를 넘나들며 서로에게

안좋은 소문을 내며 전쟁전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있었는데,

그 선봉장이 김유신이니 당연히 김유신에게도 뭔가가 하나

떨어졌을 터이다.

 

김유신에게도 드디어 경주를 돌아돌아 압량벌 군사막부까지

찾아온 소문이 접수가 됐다.

이른바, 김유신의 부인이 김유신이 몇해째 집에 들어오지 않자

마음을 달리먹고 서방질을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정작 장군인 김유신은 동요하지 않았으나,

아래의 장수들과 군사들에게 동요할 이야기가 되었던 것이라

쉽게 가라앉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어찌어찌 해서 김유신의 집에 전갈이 가게 되었고,

김유신 또한 눈에 뵈는 무언가를 해서 이 소문을 잠재우고

군대의 기강이 슬슬 무너지려 하는 것을 바로 잡아야 했는데,

그때 경주의 김유신의 집에 기별을 주어 가져오게 한 것은

장.

김유신은 그것을 경주까지 가는 도중에 만나

말을 탄 채 집에서 담갔다는 장 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장맛이 변하지 않음을 알았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장맛이 변하지 않은 것을 보니 그 소문은 헛소리다.'하며

압량벌로 다시 돌아갔고, 소문은 잠재워졌으며,

군사들의 사기는 흐트러 지지 않았다.

 

김유신이 말을 멈춘 그곳.

장맛을 본 그 마을 이름이 바로 장군동.

그 이름은 삼국통일 이전부터 내려온 이름이었다.

 

경상북도 군위군 효령면 장군동은 삼국시대의 군사첩보전의

한 자락을 보여주는 기록을 가진 동네다.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면 압량벌(지금의 영남대학교 자리)은

김유신이 삼국통일 이전에 군사훈련을 시켰던

최전방 군사기지였다.

 

그러면 왜 하필 장맛을 보았을까 고개가 갸웃해진다.

왜 그랬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장을 직접 담글 때는 몸가짐 단정히

나쁜 일을 끼지 않게 나쁜 맘을 먹지 않고

며칠은 공손히 보내면서 장을 담근다. 보통.

 

그렇지 않으면 장맛은 사람의 마음따라 맛이 흐트러지게 되고

맛은 커녕 장을 망친다고 하는 아주 민감한 음식인 것이다.

또한 장을 담근다고 단가?

 

장은 담그고 나서 관리가 중요하다.

관리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장을 담그면 새장만 담그는 게 아니라,

묵은 장.

그러니까 음식따라 장은 몇년씩 묵은 장을 써야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관리해 주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며,

냉장고 없던 그 시절 며칠이라도 게을리 하면 당장에

파리가 끓고 곰팡이 끼어 장을 못쓰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김유신이 장맛으로 본 것은

단지 맛이 변하지 않은 장이 아니었고,

장을 관리하기까지 그 많은 시간과 마음까지 본 것이었다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똑똑하니 장군하지..

 

이제 알 수 있으려나?

우리나라가 온 누리에 자랑할 만한 것은

바로 이런 장문화다.

 

나는 이 장을 못 담그게 되는 그날, 조선이 망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손으로 장을 담그리라 결심했다.

이것은 내가 지켜야할 최고의 문화유산이며,

나의 조국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