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 곳에 (2008)
평소 일상을 살다보면 음악이 주는 정서를 귀히 여기는 맘을 품게 된다. 음악은 현실의 냉정함을 녹이고, 이야기의 흐름에 힘을 보태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부채질을 한다. 그건 ‘밥 딜런’이 음악을 사랑의 아픔에서 정치적 고독까지 표현하려 했던 것처럼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시키게 된다. 그 어떤 예술보다 동적인 음악은 자유자제로 춤을 추듯 멈춰진 사진 앞에서 잔상을 남긴다. 소리의 순수한 음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접근할 때, 우리는 인과관계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영화는 음악과 닮았다. 똑 닮은 한 형제처럼 마음 속 다른 생각까지 핏줄로 이어진 그 무언가가 그들을 이어주게 할 것이라는 착각처럼 둘은 그렇게 은근히 닮았다. 그래서 영화 속 음악은 마치 한 사람을 위한 노래처럼 마음을 적신다.

평소 감독 ‘이준익’의 영화를 보면서 이런 음악적 정서를 통해 사람을 맘을 쉽게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왕의 남자>에서 광대인 ‘공길’과 눈을 잃은 광대 ‘장생’ 연산군 앞에서도 신명나게 서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가락과 음악이 주는 흥에 있다. 슬픔을 접고 행복을 다음 생에까지 기약할 수 있는 발산의 흥겨움이었다. <라디오 스타>의 단출한 스토리 라인은 신나는 락 음악으로 빛을 내고, 한물 간 가수 ‘최곤’과 그의 20년 지기 매니저 ‘박민수’의 우정은 마지막 장면의 빗속에서 뜨끈한 음악과 함께 정서적 완성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줘.”
그리고 그가 모든 이의 기대 속에 만들어낸 대작 <님은 먼 곳에>가 개봉하였다. 그리고 조금의 아쉬운 뒷맛을 남긴 체 ‘이준익’의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섰다. 결과적으로 그가 추구한 베트남의 전을 여자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뚜렷한 특징이 없는 이야기를 남겼다. 여자의 눈이라고 하기에는 구성에 다른 베트남 전을 그린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기도 하고, 순수한 군인들의 모습이나 위문공연단의 모습은 기존 다른 베트남 전을 그린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오히려 난잡하게 섞인 에피소드의 나열로 서사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내러티브가 손상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되었다. 단순한 이야기로 혹은 독특한 시각으로 재미를 주던 이준익 표 영화가 <즐거운 인생>을 기점으로 정체된 듯한 인상을 준다. 음악적 정서를 통해 마음을 움직이던 그가 그 음악에 영화의 서사를 떠 맡겼기에 생긴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음악적 정서에 미처 다가가기 전에 시대와 인물의 상황이 결국엔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하게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난 수일 째인 아직도 난 콧노래로 ‘님은 먼곳에’를 흥얼거린다. 분명 마음을 녹이는 멋진 음악이었다. 한마디로 적절했다. 음악이 영화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때 관객에게 해줄 수 있는 감독의 배려는 관객이 보편적인 이야기 속에 마음을 줄 수 있는 공감대의 형성이다. <즐거운 인생>부터 조금씩 추구하던 사회성과 역사성의 탐미는 관객이 생각해야 할 공란을 만들었고, 그것은 곧 완벽한 서사를 기대하는 관객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님은 먼곳에>가 놓친 가장 큰 요소는 서사적 미완성이 관객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던 탓이다. 즉, 음악과 영화가 따로 노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아드레날린을 발생시키는 순이 아니 써니의 가수로서의 자아는 그녀가 베트남을 ‘왜’ 향했는가의 물음에도 일정부분 답을 주기도 했지만, 그와 반대로 시대의 비극과 역사의 비애를 위로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한 여인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관통할 수 있을 것이란 감독의 의도는 빛이 났으나, 아쉬운 전개에 입맛을 다셔야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모든 단점을 상쇄할 만한 힘을 가진다. 애초부터 순이가 베트남까지 먼 길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이상케 여겼던 모든 관객들이 가슴으로 그것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시각이라 하기에는 부족했던 것들까지 모두 가슴으로 인정하게 되는 이 영화의 마지막 두 사람의 재회장면은 목적을 잃었기에 기묘했고, 마음은 가까웠기에 뭉클했다. 한국의 여인상이 주는 구시대적 이미지를 넘어 이준익이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사람과 사람사이의 가슴을 울리는 소통이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전장에서 두 남녀가 주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따듯한 감정의 쾌락을 맛보았다. 그것은 단순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서도 충분히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감독의 저력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한 장면을 위해 서사를 이끌었던 순이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녀가 걸어 온 길의 반환점이 보인다.
두 귀에서 울려 퍼지는 이어폰 속 음악과 버스 안 창밖이 주는 이미지를 보며 음악의 완전한 정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준익’의 영화를 사랑할 것이다. 애초부터 이런 음악적 정서를 통한 소통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던 일본 ‘이와이 월드’의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자신의 역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실은 노래로 감출만큼 만만하지 않다.’ 소년을 위로하던 이어폰 속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그저 음악 자체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준익의 영화에는 음악적 구원이 아닌 음악과 영화의 적절한 접합점이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