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24살의 젊은 나이에 앞으로 자신과 가족, 친지들이 겪게 될 고초에도 불구하고 굴절된 역사의 아픔을 가슴에 안은 채 그저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죄(?)의 댓가로 감옥에 간 이길준 의경에 대한 지지와 존경을 표명하는 바이다.
애초에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법과 제도라는 것이 사실은 오히려 인간의 보편적 평등과 권리에 위배되고 그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입지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지극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비합법적'으로 자신의 양심과 소신에 맞게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자가 진정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상에서 그의 용단을 두고 갑론을박 말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2003년, 휴가를 나왔다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반대하는 의미로 부대에 복귀하지 않아 탈영병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당시 이등병 강철민 씨의 경우에는 그의 지지자보다는 거센 비난을 해대는 반대론자들이 수적으로 훨씬 우세했으나 ― 그를 지지하는 진보진영 운동권 선배의 말을 빌자면 당시 지지자와 반대자의 비율이 약 2:8이라고 한다 ― 이번 이길준 씨의 경우에는 대규모 반2MB 정서의 촛불의 민심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 탓인지, 비교적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이 곳 아고라를 보나 싸이월드 광장을 보나 오히려 그를 지지하는 쪽의 수가 월등히 많은 것으로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를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체로 공통적인 면이 있다. "의경은 스스로 지원해야 가능한 복무인데, 그런 자가 시위 진압에 나갔으므로 자신의 시위 진압 행위가 양심에 어긋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이는 국방 의무의 책임 회피를 위한 궁색한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남자가 병역 의무를 지기 위해 될 수 있는 건 크게 현역 군인, 전경, 그리고 의경이 있는데, 징병제를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는 나 같은 사람들은 당연히 징병제를 반대하고 모병제를 찬성하므로 현역 군인이 되는 것을 마땅히 꺼릴 터, ― 여기서 징병제에 대한 찬․반 논쟁을 벌이면 논점이 흐려지므로 일단 논외로 치자 ― 그럼 남은 대안은 전경과 의경이 되는 것인데, 전경은 말 그대로 '전투 경찰'의 줄임말이다. 그런데 그 '전투'의 상대가 외세도 아닌 자국민이므로 전투경찰이라는 것이 아직까지 현존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민주주의 역사를 거스르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군홧발이나 방패로 시위를 진압하는 전두환식 공안정국의 낡은 유물을 답습할 것인가?
그럼 남은 대안은 한 가지, 바로 의무경찰일 텐데, 이길준 씨의 양심선언문에서 "(중략) …… 제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게 된다면 저나 사회를 위해 의미있는 일에 복무하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은 의무경찰이었죠. 제 생각과는 많이 달랐고, 그에 대해 무책임한 선택이란 비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권리가 퇴색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을 보더라도 알겠지만, 그는 애초에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맞지 않는 육군 징병제와 전경제 대신, 그에 비해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맞다고 판단한 의무경찰제에 지원한 것이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말도 있듯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의경이 진압 현장에 차출되는 것은 그 자체가 불법이라고 알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병역법과 전투경찰 설치법에 의하면 군무이탈자는 최소 3년 징역 옥살이에다 흔히 말하는 '빨간 줄‘이라는 낙인이 호적에 찍히게 되어있다.
아무리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 반하는 병역 의무라도 조금만 더 참고 입 악물고 의무 기간을 때웠더라면 좀 더 사회에 빨리 나와 남들처럼 하고 싶은 연애나 하고 비교적 수월히 취직도 하고 장가도 들 텐데, 이길준 의경은 ‘양심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수월하고 평탄한’ 길을 스스로 거부하고 남이 걷지 않는 가시밭길을 걸음으로써, 진정 살아있는 양심을 몸소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더 나아가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의경제 폐지라는 우리 시대의 남겨진 숙제에 기꺼이 동참한다.
‘탈영병’이라느니 ‘용기 없는 놈’, ‘한심한 놈’, 심지어는 ‘사회에 적응 못 할 놈’이니 하는 등 많은 반대론자들이 그에게 야유를 퍼붓고 있는 와중에서도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건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저런 인신공격을 해대는 치들의 글에서는 그 어떤 논리적인 면모를 발견할 수 없다. 발견한다면 그저 ‘법’을 들먹거리는, 법에 대한 맹신적인 아우성일 뿐, ‘나는 개처럼 끌려가서 원치 않는 군복무를 충실히 이행했는데, 너는 왜 감히 안 했느냐’라는 식의 감정적 악의에 찬 비난밖엔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가수 유승준의 병역기피 사례와 이번 이길준 의경의 사례의 ‘본질’은 다르지만, 각각 이를 대하는 반대론자들의 (논리 같지 않은) 논리는 일맥상통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혹시나 해서 미리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군대도 안 간 계집년이 뭘 알고 떠드느냐'는 식의 공격은 하지 말길 바란다. 그런 치졸한 감정 싸움에 휘말리고 싶은 생각 추호도 없으니…. (그래도 한동안 군가산점제 존폐 논란이 있을 때면 난 적어도 당신네들 편이었다.)
끝으로, 내 친구의 블로그에서 그 친구가 <법과 질서>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글의 일부를 아래에 발췌해서 올린다.
☞ 1960년대 미국이 정치 사상과 온갖 운동으로 혼란에 빠져 있을때
미국 대학도 학생 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고, 큰 혼란 중이었을 때였습니다.
하버드 법대의 졸업식에서 한 학생 다음의 연설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가는 반란과 난동을 부리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으며,
공산주의자들은 이 나라를 파괴 하기 위해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지 않습니까?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들끓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가 없다면 이 나라는 생존 할 수 없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청중으로 부터 터져 나왔고 그것은 한참 동안이나 그칠줄 몰랐습니다.
시국이 어수선한 중에도 한 하버드 법대 졸업생의 소신에 찬 뜨거운 졸업사라는 반응이었지요.
박수가 가라앉을 무렵 이 학생은 조용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 방금 한 말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 내용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