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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2008.08.10 01:34
조회 33 |추천 0

카자미 씨


잘 지내고 있어요?
나는 건강하게 임신 4개월째를 맞이했어요.
괜찮아요, 염려 말아요. 아버지(가 될 사람)가 있으니까.
즉, 나를 아내로 맞겠다는 기이한 사람이.
얘기를 정리해 보죠. 나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의 길이 있었어요.
1. 중절수술을 하고 오토히코와의 관계를 계속한다.
2. 중절수술을 하고 오토히코와 헤어진다.
3. 중절수술을 하고 그 사람과 결혼을 한다.
4. 중절수술을 하지 않고 그 사람과 결혼한다.
5. 자살.
6. 동반자살.
아이를 낳고 오토히코와 계속 지낸다는 것은 무리였어요. 나도 그 점만큼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정신이 좀 이상해질 것 같은 상태였어요. 실종이 가장 나다운 길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리고 내가 좀더 소설성에 철저했다면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생리가 안 나오기 시작한 때부터, 일본으로 돌아와 혼자 생활하기 시작한 때부터, 그럴 만큼의 어중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에너지와 돈이 없었어요.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믿어왔던 소설성에 대한 요구는, 즉 나의 죽음이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어머니는 실종되었습니다. 실종보다는 죽음이 낫다고, 희망을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 생각해 왔어요.


나는 죽고 싶었어요, 줄곧. 그건 정말 내 진실이었습니다. 결혼과 연인과 죽음이 똑같은 무게로,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상통하고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그러나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경향이 끝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만난 것입니다.
이른 죽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진심으로. 그 믿음이야말로 내가 걸린 저주였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 일은 몰라요. 많든 적듣 그런 것을 모두들 지니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불행같은 것. 즉 아버지의 몸에는 그런 것이 쓰여 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조금 귀엽기만 하면, 그 여자가 이국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일본인 여자라면, 딸만한 나이라도 안고 마는(불행하게도 진짜 딸을) 성격.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관적인 오토히코. 풋풋한 여고생이랑 사귀고 있는 주제에 인생에는 한 자락 희망조차 갖고 있지 않았던 쇼지 씨.
물론 이런 말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아요. 선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 경향은 개인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재능이란 얼굴이나 결점이라는 이름으로 그 실상을 드러내는 경우마저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피와 함께 그 사람의 온몸을 돌며, 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가 우리가 아니었다면, 지금쯤은 저 아름다운 보스턴의 아담한 교회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고, 조용하고 긍지 있는 삶을 꾸려가고 있을 테죠.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소설이고, 우리는 형제라는 이유때문만이 아니라, 보통 연인들이 더듬는 살벌한 길을 걸어 헤어지는 방향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이기 때문에.
이런 시시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놔서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이라면 알아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오토히코에게는 짧은 편지만 써 보낸 만큼(멋지게 사라지고 싶었거든요), 아직 울분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아무튼 상황은 빈틈없이 죽음을 향하고 있었고, 내 사고의 경향도 그랬고, 죽지 않고 살아갈 자신도 없어지니 왠지 화가 치밀었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종이에 써 내려가면서, 내 자신이 가장 취할 법하면서 취할 리 없는 길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이길입니다. 운명을 뒤틀어 놓는 듯한 느낌.
그러나 선택한 길을, 현실적으로 실행할 기력이 없어서, 당신을 부르기는 했지만, 의논을 하기도 귀찮아져, 당신이랑 동반자살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아, 물론 당신은 그냥 잠이 들 뿐, 그 옆에서 죽는다면 좀 덜 쓸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정신이 아득하고 고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동요를 일으켜,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이고 말아, 내가 먹고 죽을 약이 모자라게 되고 말았어요. 아는 친구가 나눠준다고 하기에 당신이 자고 있는 동안 가지러 가려고 했어요. 궁지에 몰려 죽음을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 참에 당신이 좀비처럼 일어나는 묘기를 부린 겁니다. 눈을 반쯤 뜨고, 목소리는 들떠 있고, 정말 무서웠습니다.하지만 가슴이 찡하도록 감동을 받았어요.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자고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최소한의 짐을 꾸려, 잘 자라고 말하고 그 방을 영원히 떠난 것입니다. 염려 말아요, 집세는 내고 왔으니까.
이제 곧 호적에 오를 거예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 드나들던 사람인데, 돈도 있는 데다 그것과는 관계없이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이런 일로 허세를 부리거나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연상의, 기본적으로는 오토히코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타입입니다.
나는 반드시 아이를 낳고 말겠어요.
혈액형도 같으니까,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입덧을 하느라 게워 낸 오물이, 어머니에게 얻어맞은 것보다 달콤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아무튼 피가 진한 아이일 겁니다.
눈이 세 개나 달려 있다거나,
한쪽 다리가 없다거나,
손가락이 여섯 개라든가, 그보다 더 혹독한 일이 생기거나 하면 상당히 곤란하겠지만, 그때 생각하기로 하겠어요. 큰소리로 떠벌릴 수는 없지만, 죽이는 것은 언제라도 가능한 일이죠.
지금이 아니더라도.
당신을 만난 이후로는, 곧잘 당신 생각을 합니다.
보호자 같은 당신.
괴로워집니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사 준 아이스크림이 아쉽게도 빨리 녹아내린 것처럼,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나쁜 짓을 하고 있으면, 갑자기 어머니의 얼굴이 플래시백 했던 것처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다가 문득 사소한 일로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고는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처럼,
내가 줄곧 보려고 노력해 온 기이하고도 좁은 세계에, 어떤 충격을 동반하고 당신이 비집고 들어온 것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즐거웠습니다. 당신은 앞으로도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겠죠. 재미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당신을 꼼꼼히 관찰하고 있었더니, 그 얼빠진 듯한 성격이며, 명랑함, 재주 없음, 사람 좋음, 어두움, 몸짓, 그런 걸 열심히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내 자신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처음으로 내게 흘러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리고 당신의 모습, 내가 무슨 질문을 했을 때의 대답, 그런 것들뿐만이 아니고, 당신이 지니고 있는 색이 눈에 비치는 많은 것들에 반영되기 시작하자, 어쩌면 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양과 도로와 자동차, 길가의 들꽃, 빌딩의 창문, 길가는 사람들에게 눈이 두 개있고, 코가 하나 있고, 입이 하나 있다는 것.
하지만 지금 당신을 가장 닮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체통입니다. 우체통은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막상 찾으려고 하면 좀체로 없는 법이죠. 허전한 길모퉁이에서 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는, 맑게 갠 날에도 비오는 날에도 한밤중에도, 온 세상에 마치 밤하늘에 뜬 달이 모든 물에 비치듯 그렇게 우체통은 존재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도.
저 비 내리는 밤, 헤어지기 어려워, 마치 팔려 가는 새끼말처럼 오토히코가 있었고, 당신이 있었던 이 여름이 감상적으로 느껴져, 머리칼을 낚아채이거나 돌아가고 싶어지지 않도록, 차 안에서 내내 우체통을 생각했습니다. 우체통이 실체화될 정도로 열심히.
지금 있는 곳에서(전화는 안 되요. 분명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테고, 끊고 나면 후회로 우울해질 테니까), 당신과 오토히코에게로 이어지는 오로지 한 가닥 길.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우체통. 우체통이라면 편지, 이 편지입니다.
편지를 보내러 나갑니다.
나는 오토히코의 아이를 키울 거예요. 그것도 아마 필사적으로. 제대로 잘 키우면 머잖아 유치원에도 보내고, 성인식을 치뤄주기도 하고, 여자아이라면 좋겠어요. 사키는 연구를 계속 하겠죠. 오토히코는 간신히 정상적인 머리로 돌아갈 것이고.
그리고 나는 우체통을 볼 때마다 영원히 당신을 생각할 거예요. 모든 것이 지속됩니다.
두 번 다시는 만나는 일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하지만 언젠가 또 다시.


스이로부터.

 

 

 

 

작가 후기 中


저를 포함하여 제 주변에도, 당신을 포함하여 당신 주변에도, '골치 아픈 사람' 은 많이 있습니다. 재능이든, 결함이든, 살아가기 힘든 무슨 문제를 짊어지고 걷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어떤 사람도, 아무도 거리낌없이 저 좋은 위치에서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바대로 살아도 무방하다는, 그러한 점을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들 잊어버릴 것 같기에, 그런 바람을 정성껏 담아 작품으로 꾸미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품 해설 中


데뷔 이래,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은 기이할 만큼 엄청나게 팔렸다. 압도적으로, 젊은 여자들이(젊지 않은 여자들에게도) 많이 읽었고, 화제에 좇아가지 못해 안달복달하는 남자들도 읽었다.
젊은 여자들이란, 지금 일본에서 유일하게 적응하려 하는 층이다. 전(前)적응이란,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상황에, 그 전 단계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 무의식중에 노력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물고기들이 물에서 뭍으로 처음 진출했을 때, 그들에게는 지느러미, 특히 총상(總狀) 지느러미의 발달이 불가결했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어느 미래에 뭍으로 올라갈 것을 예상하여, 총상 지느러미를 훈련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상한 짓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종이 있었을 뿐이다.
요컨데, 미래를 생각해서가 아니고, 일단은 살아 남아 현재를 쾌적하고 안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종류의 나약한 물고기들이 한 일이, 도래할 뭍의 생활에서는 필수적인 조건이었던 셈이다.
'선구' 란 고작해야 그런 것이다.
그것이랴말로 전적응인 것이다.
전적응 하려고 무의식적으로 노력하는 종족은, 대개 주림을 느낀다. 어떤 종족보다도 굶주려 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그런 거대한 굶주림을 껴안은 젊은 여자들에게 전국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르는 이 나라의 다른 종족들은, 심각함이 없다는 등 요시모토 바나나나 그녀의 독자들을 비판하였다.
'다가올 21세기에 대해 일본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등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생각하는 척 폼만 잡고는, 전적응하려는 노력은 꿈도 꾸고 있지 않은 치들이다.
그들은 진지하게 살고 있지 않으므로, 진지함이 뭔지도 모르면서 진지함을 동경한다.


"함께 자 줄까?"
"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걸까."
"그만해."
"가을이 되면 생각하기로 하지."
"그래, 그렇게 해."
내가 말했다.
"그러기로 하지."
오토히코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대화를 하는 사람들, 그것을 쓴 작가, 읽고서는「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독자야말로, 전적응을 바라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이 무언인지를 모른다. 다만 무언가 모자란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우선 모자라는 것이 언어다. 자신의 기분이나, 고생하여 입수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언어가 없으므로, 그리고 상대방 또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함께 자 줄까?"
"내가 해야 할 말 아니야?"
라고들 말한다.


무라카미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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