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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금메달 사건을 보며..

정현모 |2008.08.17 21:10
조회 78 |추천 0

요즘 이래 저래 동영상을 많이 본다.

 

우연찮게 본 방송중 하나가 어떤 한 여성이 스포스 선수에게 글을 달았다가 인터넷에 있는 모 사이트의 단체와 싸움이 크게 번진 사건이 있었다.

 

 

 

 

참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후에 그 여성의 신상명세며 친구들과의 개인적인 내용까지 인터넷에 공개 되어 버렸다.

 

일순간 도대체 인간이 인간을 단죄할수 있는 권리를 가질수 있는가.

 

 

 흔히 평상심이라 일컷는 것이 있다.

나는 이는 "참는다" 라는 개념이라 쓰일수도 있지만 "관조한다"라는 개념으로 쓰이는 것을 더 좋아 한다.

 

 

 하나의 사건이 인간에게서 발생하였다면 우선은 그 인간의 어떤 점에 가치를 두어 보았느냐가 중요하다.

 

 즉 하나로의 개념의 확립화 과정이 빠진 상태의 판단은 그저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는 자를 잡는 마녀사냥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든 현재든 이런 문제는 우리 생활과 밀접하게 발생되어 왔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부당하다 말했던 이들조차 어느샌가 이런 일련의 행동들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이런 식의 사건이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이 일어나는 현상을 보자면 과거에서 이어져온 현재의 그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인 인터넷을 다수의 사람을 해코지해 온 그들과 같은 논리로 이용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올수 밖에 없다.

 

 매스 미디어가 인간들의 휴머니즘을(인간중심적인 사고의 뜻보다 인간유대적인 느낌의 의미로) 그저 교통사고난 24살 정모씨, 다리붕괴로 떨어진 24살 정모씨, 익사한 24살 정모씨와 같이 우리의 친구였던 정현모를 그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정모씨.로 만들어 버린다. 이와 같은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살인사건에 둔화하고, 화재를 즐긴다. 그리고 쉽사리 사형을 내뱉고, 또 쉽사리 용서한다.

 

물런 이 문제가 먼저 이야기한 그 문제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이 들릴수도 있다.

 

 하지만 맥락상 보면 같은 논리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 선수를 잘 모른다. 축하해 줄수 있고, 아니면 축하 하기 싫을수도 있는거다.

 올림픽에 금매달을 따는 순간에 k2의 등반객은 시신이 되어 돌아 왔다.

 축하 해줄수는 있지만 강요할수는 없다.

또한 욕을 할수도 있다.

 욕이란 나쁜 행위임에 분명하나 자신이 미워했던 사람을 닮아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욱 했거나. 혹은 갑자기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거나. 말로 설명할수 없는 분위기에 취할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그럴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너무 쉽게 단죄한다.

 

그리고 너무 쉽게 잊어 버린다.

 

 

어짜피.   서울시에 사는 24살 정모씨 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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