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욕설도 아니었다. 격한 항의도 아니었다. 단지 'low ball?'이라는 짧은 영어 한 마디였다. 그런데도 올림픽결승전을 맡았던 푸에르토리코 심판은 포수인 강민호에게 극약처방과도 같은 퇴장명령을 내렸다. 우째 이런 일이~!
강민호가 시합 직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하면 ; 경기 초반에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던 공을 9회말 들어 심판은 계속 볼이라고 판정했다. 그걸 보고 강민호는 순간 "우리가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심판 장난 때문에 일이 어그러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볼넷이 나왔을 때 "어이가 없어서" 글러브에 공을 꽉 쥐고 있었다. 심판이 빼내려고 하는데도 계속. 그리고는 공이 낮았느냐고 물어보려고 심판에게 ‘low ball?’이라고 멀했다. 그랬는데 심판은 강민호를 바로 퇴장시켰고, 강민호는 너무 화가 나서, 마스크랑 글러브를 땅바닥에 집어 던졌다... etc.
심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면, 공을 끝까지 움켜지고 있는 강민호의 행동이 불쾌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다 'low ball?'이라고 물어 보기까지 했으니 속 좁은 심판으로선 강민호가 자기에게 항의 내지는 조롱하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렇다 해서 올림핌야구 결승전이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그것도 한점 차라는 살얼음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포수에게 퇴장을 명한다? 그건 말이 안되는 만행이다. 몰상식의 극치다.
심판이 무슨 제왕적 존재인가? 심판은 경기를 원만히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진행요원일 뿐이다. 한국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섬기는 자'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판정에 항의하는 게 기분 나쁘다고 경기의 핵심이랄 수 있는 배터리를 멋대로 퇴장시킬 수 있는 그런 무소불위한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선수가 스트라이크존 문제로 심판에게 따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투수가 던진 공을 스트라이크나 볼로 판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심판의 재량에 맡겨진 일이므로. 그러나 그것은 공평하고 일관된 심판의 판정을 전제하고서 성립하는 말이다.
심판도 물론 사람인 이상, 판정이 흔들릴 수가 있다. 그럴 때 배터리나 감독은 어필할 수가 있고, 이때 선수나 감독의 어필이 도를 넘거나 너무 지나치면 극단적으로 퇴장을 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강민호의 행동이 과연 그러한 범주에 속한 것이었든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메이저리그를 보라, 그들이 어떤 식으로 심판에게 대드는지...
게다가 심판의 판정이 어떤 항의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일관되고 공평했다면 말을 안 한다. 강민호의 고백 아니라도, 이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은 쿠바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9회말 들어 크게 요동쳤다. 공 한 두개로 승부가 뒤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전에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던 공을 느닷없이 볼로 판정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어이없는 일이 자주 연출됐던 것이다.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시라.
윗그림은 9회말 1사 만루에서 류현진의 뒤를 이어받은 정대현이 쿠바의 6번타자 구리엘에게 던진 공이고, 아랫그림은 그 직전에 류현진이 던진 공이다. 어느 쪽 공이 더 높은가? 언뜻 봐도, 정대현의 공이 류현진의 공보다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게다. 공 높이와 포수글러브 위치, 그리고 포수의 왼쪽발이 땅에 밀착된 정도를 비교해 보면 대충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심판은 정대현의 공을 스트라이크로, 류현진의 공을 볼로 판정했다. 타자는 그 덕분에 볼넷으로 진루했고, 그 다음 타자 또한 심판이 아웃사이드 꽉 차는 공을 볼로 판정해주는 바람에 덩달아 진루했다. 강민호의 어필과 심판의 퇴장명령, 그리고 1사 만루의 절대위기상황은 그 직후 벌어진 것들이다.
이런 사람을 심판으로 어찌 신뢰할 수 있을까. 다행히 한국팀이 우승해서 올림픽금메달을 땄으니 망정이지, 만의 하나 심판의 장난으로 승부가 뒤집혔다면, 아아, 그 다음 일은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글을 맺기 전에 잠깐. 이 모양 자신의 허물은 전혀 돌아볼 줄 모르고 선수가 항의하는 몸짓을 보였다 하여 자신의 직위를 남용해 선수를 퇴장시키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를 남발하는 심판을 보고 있자니, "참 MB스러운 심판"이라는 탄식과 더불어 욕지기가 절로 인다. 지조때로 잣대에다 편파의 연속, 거기에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어필하는 자에게는 극단적 보복조치를 가하는 것까지, 하는 짓들마다 영낙없이 MB를 쏙 빼닮은 탓이다.
똑같은 초등학생 글이라도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선생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옮겨서 대서특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어린이들까지 정치에 이용한다"며 사법처리 운운하고, 자기가 어떤 잘못을 범했든지 그것을 보도하거나 비판하는 글은 언론과 인터넷을 통제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입도 뻥끗 못하게 하고, 자신에게 비판적인 촛불시위를 하고 또 광고주에게 항의했다 하여 네티즌들을 법으로 옭아매 구속을 남발하고... 그러나 그렇다 하여 촛블과 정의의 승리를 뒤바꿀 수는 없을 것이니, 나는 이것을 푸에르토리코 심판의 농간에도 불구하고 한국 야구팀이 승리한 것에서 본다. 대한민국 파이팅~! 한국인이라는게 정말 자랑스럽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