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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생에게

박상호 |2008.09.07 22:10
조회 153 |추천 3


성준아.

 

 꿈을 꾸는 것은 언제나 멋진 일이다. 꿈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은 꽤나 흥미롭지. 하지만 꿈꾸기 전에 고민해보아야할 것들도 있는 법이란다.

 

 우선 네가 그렇게 달려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울에 올라오면 첫 번째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 사람들의 이기심이란다. 하루하루가 분주한 서울이란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서로 길을 지나가다가 서로 부딪치게 되는 일쯤은 언제나 있을 수 있지.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정도, 괜찮으냐는 인사정도는 해줄 수 있을 법한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단다. 인생도 그와 같다. 네가 그렇게 네 앞만 보고 달려가려고 하면 할수록 넌 부딪치는 사람들을 외면하게 될 수밖에 없겠지. 이기심은 살아가면서 부딪치거나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정도해줄 수 있는 여유조차 빼앗아간단다.

 

 또 네 꿈을 과연 네가 스스로 꾸게 되었는가하는 것이란다. 네 주위 선생님들, 네 주위 어른들은 너에게 '성공'이라는 허황된 꿈만을 심어줄 뿐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단다. 물론 그들이 나빠서라기보다는 그들은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형이 연무고를 싫어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지. 이기심만을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우려고 할 뿐, 진정 아이들의 생각을 키워주지는 않지. 오직 경쟁과 이기심만을 긍정하고 그것에 잘 야합하는 학생은 ‘모범’적인 학생으로 치부하는 그 학교라는 이름의 이기적인 단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 말이야. 결국에 그들에게 가장 ‘착한 학생’은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학생들이겠지. 그렇게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그들에게는 그게 자랑이 되는 것이지. 너도 그들에게 분명 그렇게 배웠을 게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성공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 하지만 과연 네가 성공했을 때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넌 자신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더 성공하기 위해, 더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매진할 것 같은데……. 형이 보기에 네가 지금 꾸고 있는 꿈도 너의 주위사람들이 만들어낸 성공이라는 허황된 이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단다. 지금 네가 꾸고 있는 꿈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려무나. 과연 이 꿈을 네가 만들었는지, 네가 진정 원하는 꿈은 무엇인지. 남들이 만들어준 허황된 인생의 성공이 네 꿈인지, 네가 만족하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게 네 꿈인지를……. 물론 형의 말이 네가 무조건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네가 성공에 얽매이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더 무게를 두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란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을 꽤나 여러 번 들어봤을 게다. 맹모가 맹자를 데리고 장의사 옆집으로 이사하였더니 맹자가 장의사 흉내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엔 시장으로 이사를 하였더니 장사치 흉내를 내었지. 서당 옆으로 이사를 간 뒤에야 공부하는 시늉을 했다고 하는구나. 네가 생각하기에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어떤 내용일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환경의 중요성? 분위기? 이런 단순한 해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맹자의 어머님은 맹자에게 먼저 삶과 죽음에 대해 가르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장의사 집 옆, 시장터, 이 두 장소는 죽음과 삶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는 게지. 그렇게 죽음과 삶에 대해 가르친 뒤에 공부를 가르쳤다고 보는 게 더 옳을 듯싶다. 너도 먼저 맹자와 같이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잘 야합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그것이 곧 고등학교에서나 대학교에서나 배우는 ‘공부’라는 것- 배우기 전에 과연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그리고 네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해보렴. 그렇게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네 인생에 대해 고민한 뒤에라야 네가 배우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단다. 그러한 고민 없이 배우는 것들을 머릿속에만 집어넣는다면 흔히들 말하는 ‘돈 많은 도둑놈’밖에는 되지 않는단다.

 

 또 하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희망이라는 말도 있단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을 지칭하는 말도 만들어질 필요가 없었겠지. 분명 희망은 있단다. 네가 고민 끝에 허탈함에 빠진다거나, 혹은 어떤 역경에 부딪쳐서 좌절하려고 할 때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넌 분명 큰 사람이 될 수 있을 게다. 고생 끝에 허탈함과 허무주의만 남게 된 형의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단다. 그 녀석들 모두 희망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지. 지금은 비록 내가 말하는 이 희망이라는 단어가 고등학교 생활에서 오는 역경을 이겨내라는 말로밖에는 들리지 않을 수가 있단다. 하지만 1년 뒤에 네가 진지하게 고민한 뒤에 이 글을 읽어보았을 때는 분명 다른 의미가 또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게다.

 

 마지막으로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은 꿈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하지만, 교과서에서 배우는 ‘인간’이란 존재가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란다. 교과서에서는 네게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회라는 틀에 얽매여 이 세상을 팍팍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존재라고만 배우고 있을게다. 흔히 말하는 경제학이라든지, 사회학이라든지 모든 분야에서 ‘교과서’는 네게 인간을 부정하라고 가르친단다. 그렇게 배운 것들이 이기심이고 개인주의가 되는 게지. 네가 보기에도 사람들은 분명 이기적인 존재로 보일 게다. 모두들 자기 삶을 살아가기 바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바쁜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신은 인간을 그렇게 이기적이기만 한 피조물로는 만들지 않았단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인간성의 출발은 ‘선’이란다. 비록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라는 것이 있기는 하나 그것도 결국엔 순수했던 인간을 악한 존재가 유혹한데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인류의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붓다나 예수와 같은 사람들이 생각이 모자라서 종교의 교리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형이 생각하기에 네가 배우는 일련의 모든 것들이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로 시험을 볼지언정 그것을 통해 세상을, 사람을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성을 긍정하렴. 인간은 분명 악한 존재만은 아닌 듯싶다.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오물들을 만든 ‘잘못된 구조’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 법이란다.

 

 이러한 이야기들 말고도 형이 네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줄이는 이유는 네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형의 바람에서란다. 지금 당장 이러한 고민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나중에 시간 날 때 진지하게 고민해보렴. 분명 네가 기존에 알고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보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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