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권리'란 '의무'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갈구해야만 얻어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권리'보다는 '의무'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세금 내야 하고, 일해야 하고,
나같은 경우 특수하게
선각자처럼 청렴결백해야 하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행복은
정말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모든 이에게 찾아오는 걸까?
언제쯤에야
그런 므흣한 상태가 지속되느냔 말이야.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불행을 느끼고,
자신의 목숨을 스스럼없이 버리는 걸까.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을 보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한없이 행복해 보이던,
재치와 유머로 무장한 커플이었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그런 그의 고통을 뒤로 하고,
목숨을 버린다는 건
행복할 권리를 무참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어쩌면 타인의 행복추구권까지
잔혹하게 박탈해 버리는.
행복은.
적어도 내 신념으로는.
밑바닥에서 시작된다.
어쩌면 행복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며
그 밑바닥에 잠복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가 극도의 우울과 자기비하의 상태에 빠져 있을 때,
손에 닿으면 뻗을 곳에 존재하지만.
결코 먼저 손을 내밀지는 않는, 쌀쌀하고 차가운 녀석.
비록 그녀석이 엄청나게 도도하다 할지라도,
눈앞의 행복 앞에서
어줍잖은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는 없다.
밑바닥에 닿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것을
주저하면 안된다.
'지금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고귀한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물질적 탐욕을 버린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표현한다면,
일시적인 행복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난 기본적으로 '행복'이
장기적인 목표여야 함을 인정한다.
일시적으로 느끼는 행복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얼마 전,
우울한 기분에 지하철을 탔다.
답답한 기분이 들어
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지하철 문을 통해 펼쳐진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이 나를 압도했다.
소름.
그리고 순간 행복하다... 고 느꼈다.
그 날까지 난,
행복이란 어떤 특정한 지위와 상태에 대한
만족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행복이란 특정한 순간에 느끼는
'영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그런 순간을 경험한 상태라면...
그 기억을 고이고이 저장해 두었다가
재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해, 행복해...
그런 기억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
Nell의 It's Okay에 나오는 그 대목처럼.
늘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