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우리신화의 수수께끼]웅녀라는 오래된 수수께끼

정현호 |2008.09.20 02:18
조회 948 |추천 1
 

웅녀라는 오래된 수수께끼.

 

 

"태왕사신기"에서 환웅의 아이를 낳은 곰족*의 여인으로 표현되었다.

 

 

 

 

단군을 낳은 웅녀는 어디로 갔을까?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단군을 낳기 위해 잠시 자궁을 내어준 대리모 같다.

단군을 낳았다는 진술이후 웅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더 없지 않은가.

 

 

 

충남 공주의 곰나루에 가면 곰사당이 있다.

30여년 전 곰나무 부근에서 발굴된 도무지 곰 같지 않은 돌곰을 모신 사당이다.

연전에 방문했을 때는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덩그러니 돌덩이 하나만 놓여 있는 웅신각밖에는 잡초가 무성했다.

곰나루 전설의 슬픔이 사당 안에도 무성한 것 같았다.

 

충남 공주의 곰사당

 

 

돌곰신상

 

 

 

어떤남자가 나무하러 갔다가 암곰에게 자벼 굴에서 동거한다.

몇해 동안 남자와 곰사이에 새/끼 두마리가 태어난다.

자식을 낳은 후 안심하고 곰이 굴을 비운 사이 남자는 도망쳐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뒤늦게 알게 된 곰이 따라와 자식을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만 남자는 가버린다.

곰은 두자식을 물에 던지고 자신도 몸을 강물에 던진다.

곰이 죽은 후부터 배가 뒤집히는 일이 자주일어난다.

나라에서 사당을 지어 곰을 위로해 주자 그런일이 그쳤다.

 

익히 알려진 곰나루 전설이다.

그러나 이 전설에는 문면이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적잖이 숨어있다.

우선 곰과 나무꾼이 동거하고 거기서 자식이 태어난다고 하는것이 수상하지 않은가

남자의 도망과 곰의 자식 살해와 자살도 뭔가 석연찮다.

마치 최근 자주 듣게 되는 삶을 비관한 부모자식의 동반자살 같은

비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단순히 한을 품고 죽은 원귀의 억울함을 풀어주었다는

원혼 전설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웅녀의 수수 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실마리는 이외의 장소에서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어떤 사냥꾼이 사냥하러 갔다가 암곰에게 잡혀 굴에서 동거한다.

몇해 함께 사는 동안 곰은 새/끼 한마리를 낳는다.

그후 사냥꾼은 암곰이 굴을 비운 사이에 도망을 친다.

뒤늦게 알게 된 곰이 새/끼를 안고 따라오자 사냥꾼은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다.

화가난 곰은 새/끼를 두쪽으로 찢어 한쪽을 사냥꾼에게 던진다.

남은쪽은 곰으로 던져진 쪽은 에벤키 인으로 자라났다.

 

 

이 이야기는 곰나루에서는 너무도 먼

북방 홍안령 일대에 거주하는 *에벤키족의 기원신화,혹은 시조 신화이다.

그런데 놀랍지 않은가?

에벤키 족 기원 신화와 공주의 곰나루 전설이 쌍둥이 처럼 닮았다니.

운명의 갈림길인 강가에서 에벤키 족의 웅녀는

아이를 찢어 사냥꾼에게 던지고

우리의 웅녀는 제 몸을 던져 다른길을 선택하지만

강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의 진행은 동일하다.

본래 같은 이야기였다고 믿고 싶을 정도다.

우연의 일치일까,아니면 내밀한 곡절이 있는 것일까?

실마리인가 했더니 또 다른 수수께끼다.

 

 

*에벤키 족*

에벤키 족은 동쪽으로는 태평양 연안에서

서쪾으로는 오비강,이르티슈강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략 러시아 지역에 4만명,몽골에 2천명,중국동부에 2.5만명이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캄니간,퉁구스,오르존,솔론,야쿠트 등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에벤키라는 종족명으로 통일 되었다.

에벤키, 곧 '거대한 산림속에 사는 사람들' 이라는 뜻대로

이들은 주로 시베리아 산림에서 순록을 키우고 사냥을 하는

유목 수렵생활을 하고 있지만

중국.몽골의 북동부 지역에 사는 에벤키인들은

소나 말을 사육하면서 농업에 종사하기도 한다.

역사 기록으로 보면 이들은 당나라 시기의 실위,

명나라 시기의 북산야인으로 불린 종족과 관과계가 깊다.

언어학적으론 알타이어계 만주퉁구스어족으로 분류된다.

씨족마다 샤먼이 있고 샤먼은 씨족의 우두머리 역활을 하고 있으며

곰을 조상으로 숭배하는 문화가 특징적이다.

 

에벤키 족의 모습

 

 

 

단군신화의 웅녀, 에벤키족의 웅녀, 곰나루의 웅녀

 

이쯤에서 가장 유명한 웅녀,<단군신화>의 웅녀를 만나보자.

<삼국유사>에 그려진 웅녀는

굴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빈다.

물론 호랑이도 같이 빌었다.

환웅은 신령한 쑥 한 타래와 마늘 스무개를 주면서 먹고

백을동안 해를 보지않으면 사람의 형상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된, 아니 여자가 된 곰은 이번에는 아이를 베게 해달라고 빈다.

신 환웅이 사람으로 변하여 곰과 짝을 이뤄 아들 단군을 낳는다.

이것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웅녀이야기다.

 

그런데 웅녀 이야기라니?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아이를 낳게 해주세요.

두 가지 기원과 두 가지 소원 성취가 웅녀가 출연하는 이야기의 전부인데

이게 과연 웅녀의 이야기일까?

웅녀의 이야기라면 고소설<박씨전>의 박씨 부인처럼

웅녀가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이야기여야 할텐데 그렇지가 않다.

단군신화는 환웅의 아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우고 다스리는 그들의 이야기이지

웅녀의 이야기가 아니지않은가.

웅녀는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지니지 못한 인물이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허스토리(Her Story)'가 없는 여성이다.

그렇다면 웅녀의 스토리는 어디 있는가?

그리고 단군신화의 웅녀와 에벤키 족 시조신화의 웅녀,

곰나루의 웅녀는 무슨관계가 있는가?

잘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이제 남은 마지막 단서는

영남 지방에 전승되고 있는 <봉화산의 암곰>이라는 전설이다.

 

봉화산 꼭대기 커다란 소나무 아래 암곰이 살고 있었다.

암곰은 사람이 되는것이 소원이어서 백일 기도를 올려 예쁜 소녀가 된다.

이 웅녀는 사냥할 때 곰으로 변신할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길을 잃고 쓰러진 사냥꾼을 구해준다.

웅녀의 강요로 둘은 굴속에서 동거한다.

일년 후 웅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냥꾼은 처자식이 그리워 도망친다.

사실을 알게된 웅녀는 사냥꾼을 찾아 헤매다가 소나무 아래 목을 메 죽는다.

 

 

이 봉화산 웅녀는 자살을 한다는 점에서는 곰나루의 웅녀와 같다.

웅녀에게 발목을 잡힌 남자가 굴속에서 동거한다는 점에서는

에벤키족의 웅녀,또는 곰나루의 웅녀와 같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나무 아래 사는 암곰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려 여자가 된다는 전반부의 이야기다.

이 암곰의 소원과 변신이

<단군신화>에 그려진 웅녀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봉화산의 암곰>이야기에는

에벤키 족 시조신화,단군신화,곰나루 전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하지만 이들 이야기들의 얽힘이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은

<단군신화>에서 소원을 빌던 웅녀가

곰나루의 웅녀,그리고 에벤키 족의 웅녀와 절대로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 식구들이 었을 이 곰들의 이야기는

어째서 이렇게 서로 다른 얼굴로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오랜 기억의 편린들을 간직한채 전승되고 있었을까?

거기에는 신화의 역사적 변모라는 오랜 내력이 감춰져있다.

 

 

무지개 마을의 곰 이야기.

 

에벤키 시조신화에서 웅녀는 주인공이다.

수렵민이었던 이들에게 곰은 사냥감이면서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었고

곰에 대한 신앙은 이들에게 곰과 자신들이 한 핏줄이라는 관념을 낳았다.

곰에 대한 숭배와 의례를 정당화하는 시조신화에서

곰은 당연히 주인공일 수밖에없다.

곰은 남자를 나포하여 굴에서 동거하면서  새/끼를 낳고,

남자와 분리되는 순간 새/끼를 나누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한다.

몸을 반으로 나눔으로써 새/끼는 죽지만

그 죽음읠 통해 피와 살을 나눈 두 몸으로 재창조되고 있지않은가.

창조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 에벤키족의 시조가 되는 웅녀,

이것이야말로 허스토리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웅녀는 단군신화라는 새로운 신화 체계속에서 포획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물론 단군신화에 포획된 웅녀가

바로 에벤키의 시조모 웅녀라고 단정할 만한 확증은 없다.

그렇지만 몇가지의 유력한 반증은 있다.

먼저 에벤키 족이 우리와 동일 어족에 속한다는 점이 증거가 될만하다.

근래 우실하 교수는 바이칼 인근에 거주하는 에벤키족이 지금까지도

아리랑(맞이하다.)과 쓰리랑(느껴서 알다)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는 이를 우리 선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력한 단서로 보고있다.

하지만 근래 언어학계에서는 한국어의 알타이어 계통설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아쉽지만 단서 목록에서 내려놓자.

그렇다면 에벤키 족이

본래 고조선의 강역과 무관하지 않은 황하 하류와 화북 일대에 거주하다가

금석 병용기 시대에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루광티엔의 에벤키족 이동설은 어떤가?

에벤키 족과 고조선이 어떤식으로든 만났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않은가?

이런 반증도 미심쩍다면<세종실록>의 한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지개의 풍속이 여자는 모두 방울을 찹니다.

무오년 5월에 여자 셋이 벚나무 껍징ㄹ을 벗기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오고 두여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해 11월에 사냥하는 사람이 산에 들어가서 곰 사냥을 하다가

나무의 빈 구멍속에서 방울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나무를 베어 내고 보니

두여자가 모두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연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지난 5월에 벚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속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가지 못했는데,

수곰의 협박을 당하여 함께 잔 후 각각 아이를 낳았다." 라고 하였는데

그 아이들의 얼굴이 반은 곰의 모양과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 아이들을 죽이고 두 여자를 거느리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세종 21년(1493) 7월2일 함길도(함경도) 도절제사가 올린 정문의 한부분이다.

함경도 우지개라는 곳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도 수상해서

형조에까지 보고서를 올린 모양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 함경도 지역에

에벤키 신화와 유사한 전승이 15세기에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피살된 우지개의 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곰나루 전설처럼 곰 시조 신화가 전설화된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

우지개 마을의 곰 이야기는

에벤키 신화와 곰나무 전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런 증거들을 통해

우리는 에벤키 족, 혹은 적어도 에벤키 신화와 같은 신화를 지닌 종족이

고조선에 통합되면서 신화 역시 통합되었다고 보는것이다. 

이 신화의 통합 과정에서 고조선의 하부 구성원으로 된 종족의 시조신은

지배 종족의 시조신인 환웅의 작으로 상징화되면서

자신들의 종족 이야기인 웅녀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동시에 여신 웅녀의 이미지는

남신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아들을 낳기를 간걸하는

타자의 이미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단군을 낳은 단군신화의 웅녀는 어디로 갔을까?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단군을 낳기 위해 잠시 자궁을 내어준 대리모같다.

단군을 낳았다는 진술 이후 웅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지않은가.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웅녀는 건국을 위해 동원된 존재지만

웅녀는 웅녀를 시조모로 섬기는 에벤키 족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어머니였을것이다.

현재의 에벤키 족들이 시조신화를 전승하고 있는것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라.

고조선에 편입되어 동화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고조선의 해체 이후 그 찬류 집단이 북방의 유목민으로 돌아갔을 때,

혹은 그 일부만이 고조선의 유민으로 남하했을 때

전승할 입과 힘을 잃은 에벤키 족의 웅녀이야기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을까?

창조와 재생의 능력을 잃은 여신웅녀는

강물앞에서 절망하고 자살할수 밖에없지 않았겠는가

 

<곰나루전설>이나 <봉화산의 암곰>전설은

그저 '배신한 남성에 대한 절망감때문에 자살한 어떤 여성의 이야기'식의

통속적 서사만은 아니다.

웅녀의 잃어버린 신화가 묻혀 있는 신화의 유적이다.  

기필고 발굴되어야 할 유적인것이다.

 

현재 복원판 "성모웅녀"

 

 

 

-"조현설 지음"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중에서.."

 

 

http://club.cyworld.com/51839472160/103587717

 

http://www.cyworld.com/god21

 

 

추천수1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