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섹스, 거짓말, 비디오테이프> 를 영화로 만들어 같은 해 선댄스영화제 최우수관객상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에린브로코비치, 오션스일레븐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작품으로 카프카의 일상을 재해석한 흑백 미스터리 영화.
영화는 처음 텅빈 도시의 거리를 암울하게 비추면서 시작되는데, 한 인물이 누군가에게 쫓기다 살해된다. 프라하. 카프카 (제레미 아이언스)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그는 낮에는 거대하고 조직화 된 보험회사 사무실의 평범한 사무원으로 일하지만, 밤이되면 진실을 탐구하는 작가가 되어 자기만의 글쓰기에 몰두한다.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린 한 사나이의 이야기'(후에 이 소설은 '변신'이라 불릴 것이다)를 완성한 그는 회사동료인 에두아르 라방의 갑작스런 실종을 궁금해 하면서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주위를 수소문 하던 중 에두아르의 여자친구인 로스만을 통해 에두아르가 비밀리에 활동하던 단체를 알게 되고 사회의 계급체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던 중 이어서 로스만까지 실종되고 비밀단체의 집단 피살과 더불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누군가에게 쫓기면서, 카프카는 에두아르의 죽음이 '성'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도심의 최상층인 '성' 에 잠입하여 무르나우 박사가 서의 내부에서 대중을 쉽게 조종하고 통제하기 위해 인간을 대상으로 각종 생체실험을 행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무르나우 박사에게서 '개인을 상대하기는 힘들지만 대중을 지배하기는 쉽다' 라는 말을 듣게 된다. 위험한 순간을 맞이한 카프카는 로스먼의 집에서 가지고 온 폭탄의 폭발을 틈타 극적으로 도망쳐 탈출한다. 일상으로 돌아간 카프카는 시체로 발견된 로스만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처리하는 경찰에 결국 동의하게 되고,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소설과 영화의 비교>
영화와 실제의 카프카
영화 속 주인공 카프카는 변신의 저자 프란츠 카프카 이긴 하지만 과거 카프카의 삶ㅇ르 그대로 다룬 영화는 아니다. 영화 '카프카'는 실존작가의 일대기가 아니라 작가, 작품들의 내용을 소더버그 감독이 재해석하여 엮은 다분히 포스트모더니즘 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당시 카프카는 낮에는 보험회사의 직원이고 밤에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는 사실, 그리고 카프카 주위의 인물들 역시 실존 인물도 있다는 것은 맞지만 정작 전개되는 내용들은 허구인 것이다. 소더버그는 이 영활르 통해 카프카의 일생을 재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관객에게 던져주고 있는데, 그는 카프카를 우리 시대의 세계가 감춰놓은 비밀을 잘 알고 있었던 목격자로 여겼고 그래서 영화 '카프카'로 카프카의 삶에 개입해서 다시 보여주고 있다.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격동의 20세기 전반 유럽 시대를 살다가 폐결핵으로 41세의 생애를 마친 소설가이다. 그는 평범한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하였고 죽기 직전 2개월 간의 용양기간을 제외하고는 프라하에만 머물렀던 유태인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었던 당시 카프카는 보험회사에 근무하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변신>을 집필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일부를 패러디하며 그의 인상과 영향력을 다루었듯이 스티븐 소더버그의 <카프카> 역시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과 인상으로 가득 차 있는데, 끊임없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카프카, <변신>을 집필중인 카프카, 보험회사 직원인 카프카, 프라하에 거주하는 그의 모습 등은 전기적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 사건의 배경은 카프카의 작품 <성>을 비롯해 여러 이미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의 성격
영화와 소설의 주인공 모두 주변 상황에 동화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같은 시공간 속에 이씨만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만큼 주변인들도 그에 대한 깊은 신뢰나 유대관계를 보이지는 않는다. 한발 물러서 있으면서 때로는 의심하고 감시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의사소통하고 대인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형식적이고 필요에 의한 것 외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으며 주인공 역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인상을 보인다.
아버지의 의미
카프카가 태어나던 무렵 이른바 유태인 해방령이 내려져 도시로의 유태인 이주에 대한 제약이 풀리고 난 얼마 뒤였다. 해방령 이전까지 유태인은 법령에 의해 일정한 액수의 세금을 납부해야 했고 도시마다 거주 제한을 두고 있었다. 카프카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해방령을 전후 해 프라하로 이주해 온 유태인들이었으며 프라하 상류사회에 갓 진입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친가쪽은 푸줏간을 했었고 외가쪽은 양조장을 했었는데 외가는 학자를 비롯한 의사 등의 직종에 진출한 비교적 지식인 계층이었다고 한다. 카프카는 평생을 두고 자신의 아버지와 긴장관계에 놓여 있었다.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클라우스 바겐바하는 카프카에게 물려진 정신적 유산으로 친가의 건강, 강인함, 지구력, 생활력, 사업욕과 정복욕 등을 들고 있으며 외가의 민감성, 고집, 불안감, 정의감 등을 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카프카 자신은 부계 혈통으로 상징되는 성격들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아쓰며 그의 꿈, 즉 문학을 한다는 그의 소망들은 늘 아버지로 상징되는 현실에 가로막혀 있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카프카... 현실적인 사업가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몽상가로 보였을 것이고 가족보다는 일에 몰두하는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부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사업 성공에 따라 점점 더 도심으로 진입하는 수 차례의 이사 역시 어린 그에게는 불안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역시 사업을 도와야 했기에 카프카는 늘 혼자였고, 동생들 중 몇은 2차 세계대전의 광기에 희생당하여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제국의 변방에서 또 이방인이었던 유태인으로서 상류사회에 막 진입한 아버지에게 있어 돈에 대한 소유욕과 장남인 카프카를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며,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가치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의 열망이 강한데 비해 아들인 카프카는 섬세하고 내성적인 존재였기에 부담감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불안감 그리고 현실에 막혀버린 꿈에 대한 괴로움 등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근무 중 틈틈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는 카프카의 나레이션이나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친구가 아버지를 만났다는 이야기에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 등을 보면 그에게는 아버지와 관련된 갈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진실을 알았지만 또 다시 현실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자기고백적 편지를 아버지에게 쓰는 장면은 어찌보면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와 그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이라는 공간의 의미
소설 <성>은 완전한 최고에 다가가려는 카프카의 동경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데 소설에서의 성은 여러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성은 유태인을 지배하는 일종의 율법이고 신의 은총이기도 하다. K는 인간과 그 사이를 끊임없이 가로질러 그것에 다다르려 하고 있다.
또는 환상과 현실사이.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 비인간화에 대한 사회문제 등에 대비되는 인간 실존적인 그 무엇이기도 한다. 다가가면 할수록 베일에 가려지기만 할 뿐 다다를 수 없음을 알지만 인간이 그 실존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한 '성'은 영원할 수 밖에 없다.
소설에서는 성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 밖의 사람들은 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복종하며 성을 중심으로 사고한다. 주인공 K는 성에 닿으려고 노력하나 끝까지 당도하지 못할 존재였다. 미완성작인 이 소설의 결말은 카프카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친구인 브로트가 미완성작인 대로 남겨달라는 유언에도 불구하고 완성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소설보다 성을 자세히 보여주는데, 인간을 하나의 생산도구로만 여기는 지배세력인 성과 이에 저항하는 집단,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카프카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은 사회의 표면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은밀하게 목적을 실행하는 절대권력자로서의 무자비한 횡포와 사회
부조리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에겐 또 다른 발견하지 못한 성이 있을 수 있으며 진실을 아는 자, 혹은 알고자 하는 자는 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이방인이 되어야 하기에 본질에 다가섰음에도 현실에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흑백화면과 컬러화면의 대비
시종일관 흑백화며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카프카가 성에 잠입하면서부터 반전되어 컬러 화면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카프카가 살았던 성 밖의 흑백 세상은 진실이 없는 허상의 공간이고 성 안의 컬러세상은 부정하기만 했던 진실이 숨어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허상이며 허상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