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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3

조성길 |2008.09.27 20:33
조회 75 |추천 0

우울한 목요일의 잔해에 주정거리를 찾고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느 복안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지.

뭔가 의례적인 모티브가 있어 신선함을 준다면 좋겠지만

역류하는 폼이 예사스럽지 않다.

궁색의 기본은 의례 사치성을 배제하고 있지 않던가.

숙명적이라고 하기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보복심리에

지나지 않을게고 해서 색다른 풍미를 모색하는 지도 모를일이다.

전혜 예기치 않은 언행이나 행위로 자신을 비하시키려는 게다.

좀더 의지적이지 못한 행동철학일테니까.

소유에 대한 집요한 애착때문인가 보다.

상실의 미덕은 송두리 채 사라져 버렸음으로.....

개혁이라는 모순을 받아 드려야 할지.

선택이란 미묘한 갈등아래 주절하는 양심이 있다.

 

점유에 대한 막연한 쟁취의욕은 뭘까.

세분되어 가고 있는 인간사에서 올바르게 볼 식견은 있다고 보는지

답답함이 명료한 가운데 기폭을 감수해야 하는가 보다.

속쓰림이 가득하다.

입안 가득히 차 오르는 이 불안하고 불쾌한 속 쓰림은 뭔가.

잉태하는 미묘한 갈등아래 소유권을 인정해야하는 불안.

그리고 파고드는 집단이기에 희생되고 마는

희미한 존재로써의 개인,

그래서 더욱 속 쓰림이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변신의 극치미를 추구하는 형국일까.

시간의 변이 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나른한 체면 같은 것은

실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속성이 아닐까.

동전 꾸러미를 던져내는 놀이에 치중하고 있는 듯하다.

모처럼의 따스함도 이 혼란이 앗아가고 말지 않았던가.

지나치도록 인위적이라는게 안스럽다.

 

슬픔의 파편을 어느 손에 쥐고 있는 걸까.

저 깊은 심연속에 감추어진 얼굴들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중성의 가면을 쓰고 앉은 이 침묵이 두렵기만 하다.

소중함은 어디로 가고 진실은 더욱 결여된 채 떠도는 까닭은 뭔가.

좀처럼 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혼탁한 계절이 묻히고 있는 이 지저분한 시류를

어떻게 정화할수 있을 것인가.

옷을 벗어던진들 뭐 하겠는가.

동질은 이미 사그라져 버린 뒤인데.....

 

            개정판을 요구한다.

 

권태기의 말기현상인가 보다.

부지런히 사색의 창을 열어 가지만 식상한 심안을  오히려

굳게 자물쇠를 잠그고선 기나 긴 숙면에 접어든 것 같다.

점차 피곤하게 조여오는 생활의 집요한 간섭도 이제는

까탈을 부리는 것 조차 서서히 중독화 되는가 보다.

곡기를 해결하기 위해 산발하던 의지도 이미 퇴색되어

수명을 재촉하고 있지 않은가.

행선지를 잃고 방황하는 구룻터기의 속셈에 실증을 느낀 것 같다.

아, 무엇을 점유할 것인지.

고통의 측와에 편이대로 나열시키려는 의도하에서 순순히

손을 들고마는 침묵 또한 협잡하지 않는다고 어지 보장하겠는가만

그래도 현재의 불투명한 형상 아래 서 있음보다는 현명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 어떤 의욕보다도 순결미는 있지 않은가.

지우기 보다는 지키는 것이 오히려 단아해 보일수 있으므로

그렇게까지 고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애의 소유자로 남아 있는 흔적조차도 희미해져 가는 와중인데...

문득 생활의 선을 그어 놓고 꺼꾸로 서가를 한다.

오, 이지적인 망상이 득세하고 있다.

비유될수 없는 불안에 휩쌓이고 있다.

불문곡직하고 털어낼 분진의 량은 얼마나 될지.

고통의 찌거기에 밀려 넘어지는가 보다.

생략하는 묘미를 배운다면....실효성은 충분히 있을게다.

뭔가 선택적으로 일고 있는 자유 분망의 의지는 뭘까.

저물어 가는 생명의 끈을 어떤 식으로 구걸할 것이지.

환상인가...

 

거부권을 발동한다.

무지와의 투쟁에서 효과적으로 대치 할수 있는 것은 뭘까.

죽음과의 투합은 일시적인 미끼일 뿐, 분명한 의지처는

되지 못한다.

육체의 파멸조건을 형성시키기 위한 트-릭에 지나지 않다.

소지해야 할 공백의 차이는 확연히 나타나 있는데

그것을 점유할수 잇는 여유는 없으니...

빈 그릇을 내 돌리는 격에 위상되고 있음을 모르는가 보다.

결굴 한 치 혀의 울림에 기인하는가.

뚜렷하게 표명되는 색채가 없다.

색깔본에 치중하는 것을 도용하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하자. ~을 하자.

 

조용한 밤을 던져 버리고 깊은 한 숨의 요람을 세운다.

 

뜬 구름속.

격차로 밀려오는 회한의 늪은 깊기만 하다.

요란을 떠는 소음 아래서 막연한 슾기를 몸에 비비면서

불면의 시간점유하고선 길고 긴 망각의 자유를 희롱한다.

핏기 없어 하얗게 변해가는 마음보다도 거칠게 뿜어 내는

폐활량의 변덕에 주눅이 들어 간다.

몇 개의 그릇을 깨트려야 하는지 모른다.

주머니 속의 동냥 그릇일까.

부던히도 찾아오는 이 멜랑한 기우도 이제 긴 한숨곳에

뭍혀가고 있다.

아, 텅빈 가슴을 어떻게 할것인가.

보이는 것은 타고 남은 재 뿐이다.

오직 하나 뿐인 육신의 그늘인 것이다.

 

새벽은 늘 그렇지만 소리없이 닥아와 반갑다고 포옹한다.

거칠고 싸늘한 손 길...

검은 장막속엔 무엇을 숨겼을까.

희망, 사랑, 아니면....

고색 창연하다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의 새벽은 불민하다.

가까이 할수 없는 유동체일 뿐

언제나 멈출 기색도 없이 짙은 운무만을 낭비한 채 떠나간다.

그리곤 또 다시 소리없이 찾아 올 것이다.

수 많은 슬픈 이야기를 싫고서....

왜 다감해 보이지 않을까.

아무런 답이 없다.

점박이의 기생인가 아니면 숨겨 논 망상일까.

 

내가 없음이 우선 될 때

그것은 제 자리에 서 있을까.

수십개의 환상을 위해 빛을 발하고 있어 줄까.

내 눈에 투명한 이슬 방울이 맺힐 그 소중한 때에도

그것은 남아 있을까.

 

두려움은 뭔가, 소용돌이치는 환멸일까.

파괴되어 가는 과정에서 분진되는 0.8m/m의 기적일까.

세찬 흑풍에서도 존재치를 나타낼 환희 같은 것일까.

애잔한 가슴을 녹여 줄 따스한 커피 한 잔의 고마움일까.

 

피하 지방의 반란을 유위하라.

각질의 요구에 의해 희생되고 있는 단 세포의 희망을 유의해야 한다. 그것이 마지막 보루인 셈이니까.

 

세속은 뭐라 하겠나.

짐짓 생각해도 환란이 아니든가.

이 현란하기만한 타락의 온상에서 제대로 꽃필 재간이 있겠나.

헐 벗음이 먼저 찾아 든다고 해서 하는 말은 아니네만

어찌 이렇게 구차함을 어느 식으로 외면하겠는가.

대중 가요의 가사처럼 옷 함벌을 건졌지만 그게 어디

인생묘미에 비견될 것이겠나.

못남을 치부하는 꼴이지.

참으로 현묘한 세상일세.

중구난방 읖조리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워서야

정진이 되고 깨침이 있겠는가.

차자리 무지렁이의 풍상이 좋아보이는데....

칼든 세상에 몸둥아리를 내 맡긴 격.

 

중요한 결단은 행위 철학이 아닌 순수비판인 것.

때로 그것이 변란된다 하드라도 지켜 나감이 도가 아닌가.

지쳐버린 육신을 꺼꾸로 매달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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