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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김윤호 |2008.09.28 21:38
조회 1,288 |추천 0

정이현 작.

 

  당신에게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 내게 고향은 잿빛 담벼락이 끝없이 이어진 낙후된 도시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담장 아래에서 나는 숨바꼭질도 하고 얼음땡도 하고 고무줄도 끊었다. '요즘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라서 간직할 추억이 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빈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쯤 무너진 담장이나 대책없이 부서진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연탄재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예쁘게 채색된 추억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고향은 낡은 열쇠와 함께 서랍 속에 영원히 봉인해 버리고 싶은 기억이다. 누구든지 '옛날엔'으로 시작해서 '좋았는데'로 끝맺을만한 고향의 기억을, 정이현은 고향을 떠나고 난 후에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더듬더듬 고백한다. 그녀의 20대는 무너진 삼풍백화점의 잔해 아래 매몰되었을 것이다. 문득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20대는 있나요. 나의 20대는 없습니다. 아마도 나라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삼풍백화점은 어느 칼럼니스트가 책상 끝에 앉아 적당히 끄적였던 '사치와 향락에 찌든 인간들' 뿐 아니라, 소시민들의 소소한 일상까지도 삼켜버렸다. 아랫집의 주부는 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기 위해 파를 반쯤 썰다가 말고 백화점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고, 누군가의 친구 R은 평소와 다름없이 매장의 한 구석에서 옷을 팔다가 희생되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 치열한 삶이었는데 우습게도 단 몇 초만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참사 후에 부실공사를 감행한 건설업체의 중견 간부가 구속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혀를 차고 욕을 했다. 이내 삼풍백화점의 귀신 목격담이 떠돌았다. 십수 일만에 살아나온 생존자들의 이야기가 언론을 도배했고, 사망자 집계가 뉴스 헤드라인에 매일같이 걸렸다. 그러나 아무도 죽은 이의 일상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었는지, 왜 하필 그곳에 가야했는지, 어떻게 죽어갔는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담장 밑에 조용히 피고 지는 들꽃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타인의 일상은 단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흘러간 시간을, 우리는 사건으로 기억해낸다. 이를테면 서울올림픽으로 1988년이 갔음을, 한일월드컵으로 2002년이 갔음을 기억하듯이. 아무도 관심가져주지 않는 그 날의 죽음들은 한 편의 기록 아래 뭉뚱그려졌다. '1995년의 사고 사망자'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자 실태' 따위의 제목이 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의 수납장에 처박혀 조용히 낡아갈 것이다. 아무래도 그 편이 참사를 다루는 데에 합리적이고 편리하므로.

 

  한 때는 모두가 기억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90년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우리들에게, 그 때 그 사건은 하나의 키워드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저마다 치열했던 개인들의 삶이, 절대 색칠할 수 없어 봉인해둔 누군가의 옛 기억이, 시간의 틈새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모두가 쉽게 잊었다. 『삼풍백화점』은 시간의 퇴적물 속에 묻혀버린, 작고 불완전한 은색 열쇠와 같은 삶을 살다간 영혼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1995년 6월 29일 5시 55분. 내 나이 열세 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어렴풋이 기억하며, 1994년 월드컵 중계를 보기 위해 새벽잠을 설쳤고, 1995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를 목도한 나는, 서태지 세대의 끝자락이다. 같은 시대를 공유한 우리들에게 서울올림픽이나 모토로라 호출기는 지난 세기를 추억하게 하는 유물이 되었다. 분홍색 외벽만 남고 가라앉은 아비규환의 장소는 이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로 대체되고 추모비만 남은 유적이 되었다.

 

  당신에게 1995년은 어떤 의미인가. 반쯤 무너진 담장이나 대책없이 부서진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연탄재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 이제와서 간신히 고백하자면, 내게 1995년은 예쁘게 채색된 과거의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었고, 그리 즐거울 것도 없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그 즈음에 초등학교를 졸업할 일도 없었다면 1995년에 내가 밥을 퍼먹었는지 젖을 물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이렇게 하찮다.

 

  어찌 되었거나, 나는 이렇게 살아서 2008년을 겪고 있다. 과거는 대체로 잊고 산다. 끝내 나는 타인의 일상에 관심이 없는 보통 남자로 성장했다. 가혹한 시절을 가로지르다 보니 저절로 체득한 생존방법이다. 두 번째 읽는 『삼풍백화점』이, 나는 참 불편했다. 언젠가 찾아올 책장 너머의 파국을 견뎌내는 것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종말을 보통 사람이 되어 접하려니 그런 모양이다. 그것은 이미 생존방법으로서의 무관심이나 망각을 초월한 고통이다. 파국이 자명한 점괘를 만날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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