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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수술후 하반신마비 병원책임0%

강정화 |2008.09.29 23:52
조회 1,446 |추천 4

S교수 다시 만나다

▲2004년 수술 후 지금까지 안씨가 입원해 있는 서울 S병원.   © 이보배 기자 2004년, 안씨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일때의 일이다. 대학 1학기 #popup a:link{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visited{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hover{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active{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수시모집에 당당히 합격한 안씨는 덕분에 3학년 2학기를 편하게 보낼 수 있었다. 주말 오후 가족과 함께 TV를 시청하던 안씨의 부모님의 눈에 낯익은 의사가 들어왔다. 

어린시절 안씨를 진료했던 S교수였다. 우리나라 최고 척추 권위자로 촉망받던 S교수는 TV는 물론 각종 언론에 보도될 만큼 유명했다.

TV화면을 통해 S교수와 조우한 안씨의 부모는 안씨의 현재상태가 궁금해졌다. 자라는 동안 아무 이상 없었지만 선천성 척추 측만증이라는 굴레는 안씨의 부모를 죄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진료 예약을 하고 서울로 상경했다.

첫 번째 진료 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4살배기 어린 아이는 19세의 청년으로 성장했다. S교수는 안씨의 상태를 살펴본 뒤 “하루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4년 뒤쯤에는 하반신에 마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지난 15년 간 이상 없이 건강하게 지냈는데 '하반신 마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러운 진단은 안씨와 안씨의 부모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다.

결국 안씨 가족은 고민 끝에 수술을 결심하고 2004년 11월8일 서울 S병원에 입원했다. 수술날짜는 12일로 잡혀있었다. S교수는 “간단한 수술이니 20일도 안되면 금방 회복하고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안심시켰다.

4일 동안 수술에 필요한 정밀검사를 마친 안씨는 11월12일 드디어 수술대에 올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날이 안씨의 운명을 바꾸는 날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수술 후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린 안씨는 자신의 다리에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감지했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던 것. 수술하지 않으면 4년 내로 하반신에 마비가 온다던 S교수의 말만 믿고 수술대에 올랐건만 수술 하루 만에 하반신에 마비가 시작된 것이다.

▲하반신 마미로 앙상해진 다리. 팔뚝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이보배 기자

갑작스런 마비 증세에 놀란 안씨는 이유를 따져 물었다. 병원측은 “수술부위에 피가 고였거나 일시적으로 신경이 부어서 마비 증세가 생길 수 있다”면서 경과를 보고 다시 수술 하자고 권했다.

결국 안씨는 첫 수술 다음날인 13일 다시 수술대에 올랐고 14일 하루를 중환자실에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씨의 하반신 마비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15일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2004년, 수술 제의로 수술 했지만 결국 하반신 마비 
4년 간 병원 휠체어 신세에 극심한 #popup a:link{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visited{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hover{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active{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우울증 앓기도 해

안씨는 “거기서 끝이었다면 제보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15일 세 번째 수술 후 병실로 돌아온 안씨는 40~41도를 웃도는 엄청난 고열과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수술 부위를 알코올로 닦아보고 해열제를 투여하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며칠 뒤 “수술부위에 염증이 생겨 고열이 생긴 것 같다”는 병원의 말과 함께 치료를 이유로 22일 또 다시 수술실에 들어갔다.

염증은 심각했다. 22일 한 차례 수술실 방문(?)으로도 나아지지 않았다. 2006년 4월까지 안씨는 수술부위에서 고름이 새어나오면 찢고 꿰매고 찢고 꿰매고를 수십번 반복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안씨는 점점 지쳐갔다. 하반신 마비에는 신경도 쓰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계속됐고 진통제에 의존해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결국은 하반신 마비  

안씨는 “수술 후 생길 수 있는 염증조차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병원 탓에 2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 허덕여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첫 번째 수술 후 2년간 염증 치료를 위해 수술 부위를 찢고 봉합하기를 수십번. 2006년, 병원에서는 그제서야 “척추 측만증 수술 당시 척추에 박아놓은 핀 때문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면서 핀 제거 수술을 권했다. 너무 심한 통증과 고열에 시달린 안씨는 속는 셈 치고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랐다.

결국 2006년 4월 척추에 박힌 핀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고 수술 한 달 뒤 안씨를 괴롭히던 염증은 드디어 사라졌다. 하지만 안씨는 커다란 충격에 직면했다. 염증 치료 때문에 고열과 통증에 시달리느라 자신의 하반신 마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안씨는 염증이 치료된 후에서야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다.

앙상한 두 다리에 감각이 없어진지 벌써 2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로부터 또 2년이 지난 2008년까지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안씨에게 남은 것은 하반신 마비라는 가혹한 현실뿐이었다.

하반신 마비에 이어 안씨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젊은 나이에 대소변조차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휠체어에 앉은 채 약물을 넣어야 소변보는 것이 가능하고 대변은 이조차 힘들다. 이런 이유로 마음 놓고 바깥출입 조차 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신호(?)가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4년 척추 측만증 수술후 생긴 염증으로 안씨는 수술 부위(위 사진)를 수십번 찢고 꿰매기를 반복했다.     © 이보배 기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울증과 #popup a:link{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visited{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hover{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popup a:active{text-decoration:underline;font-size:14px;color:#0000ff;}공황장애까지 생겼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안씨에게 인터넷은 세상과 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안씨는 “내 사연을 듣고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미니홈피에 방문에 응원의 글을 남기고 있다. 요즘에는 네티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안씨의 주치의 S병원 S교수는 “척추 측만증의 대부분은 특발성 측만증이다. 선천성 측만증은 100에 2건에 불과하며 여성에게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 척추 측만증의 경우 정도가 심해지면 하반신에 마비가 오는 경우가 있고 수술 후에도 신경이 눌리거나 신경으로 가는 혈관이 차단되는 이유 등으로 마비가 생기기도 한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나와 있는 통계다.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수술이니만큼 수술 전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수술상의 착오가 아니라 합병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씨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4년 안에 하반신 마비가 생길 수 있다는 S교수의 진단을 믿고 수술에 임했지만 앞으로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매우 억울해 했다.

결국 안씨는 2005년 S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소송 진행 중이다. 안씨는 “대형 병원과 소송을 진행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은 소송 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혔다”고 설명했다.
bobae38317@hanmai.net

S병원 상대로 소송 진행중인 안재훈씨 미니인터뷰

"병원측 잘못 인정하고 치료 잘해줬으면…"

3월19일 첫 번째 만남 이후 일주일이 지난 3월26일 안재훈씨를 다시 찾았다. 첫 번째 만남과는 달리 병실에서 만난 안씨는 많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밤 통증으로 인해 한 숨도 자지 못했단다. 다음은 안씨와의 일문일답.

-병실에 와보니 혼자 지내는 것 같다. 병간호 해줄 사람이 없는 것인가.

▲집이 울산이다.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울산에 계셔야 하고 13세 여동생 때문에 어머니도 집을 비울 수 없다. 울산에서 19년을 살았다. 친구도 모두 울산에 있고 그렇다 보니 병간호 해줄 마땅한 사람이 없다. 처음에는 간병인을 두기도 했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 혼자 지내게 됐다. 

▲답답한 병실에서 4년 간 생활한 안씨에게 인터넷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이보배 기자

-몸이 아프다 보니 가족이 많이 그리울 텐데.

▲아픈것도 아픈것이지만 외로움과 우울증이 심하다. 석 달에 한번 꼴로 가족과 만난다. 휠체어에 의지하다보니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곁에 있어주길 바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에게도 내가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 싫더라.

-대학 수시 합격 이후 수술을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학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꿈같은 일이다. 수술을 하지 않았다면 예정대로 대학에 갔을 테고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었을 텐데… 수술 후 상태가 나빠져 학교에 통보했고 자퇴처리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상태로 다시 대학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현재 심경이 어떤가.

▲최근 계속되는 자살충동으로 많이 힘들었다. 정신과 치료도 함께 받고 있고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으로 많이 힘든 상태다. 항상 불안하고 초초하다. 밝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마음 놓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도 없어 외롭다. 가끔 옥상에 올라가 혼자 울고 오곤 한다. 인터넷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

▲솔직히 지금은 아무 꿈도 없다. 자신도 없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수술 전에는 능력있는 CEO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허황된 꿈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되고 싶었다.
 
-병원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마비가 온 것은 합병증 이라며 수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한다. 회복가능성도 하늘의 뜻이라고만 하면 어디에 희망을 품고 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건강과 젊음을 동시에 잃어버린 내 입장도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소송이후 “치료비용을 탕감하고 1000만원을 줄테니 퇴원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하반신 마비 치료에 최대한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지금 다시 작은 글을한번써보려고합니다

2008.03.12 일 싸이월드(www.cyworld.com)
광장이란 곳에 http://cyplaza.cyworld.com/S54/20080312161017961479
글을 올렸습니다 벌써 몇개월이란 시간이지났네요
당시많은분들이 저에게 용기를주시고 응원해주셨는데요
지금 글을쓰는 이순간까지 저는 아직 병원에 있습니다...
조금만 더있으면 제가 밝고 건강했더모습으로 입원했던날이
다가오네요 11월8일이니깐요...

아직까지 병원에서 해주는것도 하는것도 아무것도없지만
하루하루 통증에 못이겨 울고 힘들어하고있습니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시도도몇차례있었습니다...
응원해주시고 용기주는분들봐서는 그래서는안되는건데..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예수님위해서 그래선..
안되는건데 ..어리석은짓을해버렸습니다...

하루하루..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데 도저히 저로서는
너무나 힘이들고 더이상 어떻게 버텨낼힘도 용기조차없습니다..

그동안..절 한번이라두 생각해주시고 기도해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죽어서 은혜 잊지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자해다리사진

양쪽 주사 흉터.....

 

추천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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