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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 컨피덴셜]그는 진정한 저항의 상징이었는가?

정주영 |2008.10.04 21:34
조회 77 |추천 0

 

이 다큐멘터리가 개봉하기 전날,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성기완씨와 김작가씨를 모시고 영화 상영 후 간담회를 가졌었다. 넥스트플러스여름영화축제의 한 편으로 상영된 이 다큐멘터리의 원제는 <미국 대 존 레논>인데, 2년 전 뉴욕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예고편을 보고 한국에서도 꼭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그 해 나다 회원의 밤에서 2007년 라인업을 소개하는 자리에 이 다큐멘터리가 들어가 있어서 매우 기뻤는데 또 해를 미루어 지각 개봉하게 되었다. 지금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는 내부수리 중에 있어 일시적으로 영화를 틀 수 없게 되었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수리 전에 상영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2006년 여름, 뉴욕 센트럴 파크의 풍경. 존 레논이 피살된 자신의 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센트럴 파크고 그는 이 곳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팬들은 그를 기려 그가 자주 찾았던 이 곳에 이렇게 그를 기리는 장소를 마련해 놓고 이 곳을 '스트로베리 필드' 라고 이름 지었다. 대략 이 스트로베리 필드를 두어 번 갔던 것 같은데 갈 때마다 누군가 이렇게 꽃을 놓아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노 요코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 듯한 이 다큐멘터리는 비틀즈 이후의 존 레논을 조명한다. 오노 요코를 만나기 이전까지의 존 레논의 여자 관계라든가, 그와 결혼하기 이전의 요코의 사생활 등은 묻혀져 있고 이벤트를 벌여 혁명을 일으킨 해프닝들과 그를 둘러싼 여러 관계자들의 인터뷰 식으로 짜여진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혁명의 메세지로 설파한 것은 평화였다고 밝힌다. 오노 요코는 여전히 존 레논이 피살되었던 그 아파트를 떠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유명인사들이 산다고 알려진 그 아파트는 집값 비싸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들은 혁명을 통해 돈을 벌었던 것인가?

 

정확히 따지자면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미국 정부 대 존 레논>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영국에서의 마약 전과를 문제삼아 미국에 거주할 수 없도록 한 미 당국의 결정은 긴 소송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존 레논 측의 승리로 끝나는데 다큐멘터리는 존 레논이라는 인물이 혁명의 아이콘이 된 이유를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하며 미국 정부와 그가 대립각을 세우게 된 몇몇 사건들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일을 정부가 문제삼아 크게 부풀린 듯한 감도 없잖아 있고 인종차별 등 미국의 정책에 저항하는 인물들과 교류했다는 이유로 감시의 대상이 되었던 그는 현명하게도 그런 사태를 역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대담자들도 지적했지만 그가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자본 덕에 가능했다. 신혼여행지의 호텔룸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신들의 시위를 이슈화한 것 등부터 그 자신이 홀로 가수활동을 하기 이전에 스타였고 또 스타가 어떻게 미디어의 제물이 되는지를 알았던 터라 그 주도권을 쥐려고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다큐멘터리를 따른다면 비틀즈 시절 '우리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 라는 말로 근본주의자들이 몰려있는 미국 내에서 반감을 산 이후부터 서서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 당국이 그를 주시하게 된 건 그가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 정부가 베트남과 전쟁을 하고 있던 때라든가 이런저런 사정들을 미국의 독트린에 반하는 인물로 간주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러니까 평화란 언제나 추구될 수 있고 그래야 할 가치임은 누구나 알지만 하필 그가 그런 주장을 한 시기가 문제였던 거다. 그런 설명을 하지는 않지만 인터뷰들과 기록물들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그런 생각을 가능케 해준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 리처드 드레이퓌스가 주연한 <홀랜드 오퍼스>.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로의 직분과 그의 개인사가 두 축을 이루는 이 영화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정을 전하는 노래를 직접 부르는데, 바로 존 레논이 오노 요코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션을 위해 지은 <뷰티풀 보이>다.  덧붙이자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홀랜드가 아기의 청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안 후 수업하는 장면이다. 그는 베토벤의 일화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귀가 점점 멀어가는 베토벤은 다리를 자른 피아노의 건반에 귀를 대고는 그것을 치며 마루의 울림을 통해 음을 들으려 했다고. 그렇게 그의 개인사와 교사로서의 생활은 겹쳐지기도 한다.  

 

 


외국기자의 눈으로 본 캄보디아 내전을 다룬 영화 <킬링 필드>. 존 레논과 이 영화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엔딩 송으로 존 레논의 <이매진>이 나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존 레논 컨피덴셜>에도 이 노래가 나온다. 노래 가운데 '당신은 나를 몽상가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라는 가사가 나오는 부분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한 사람의 그릇된 가치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해골들만 남은, 혁명은 전쟁을 수반하는 것일까? 존 레논이 이 영화를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들은 자본을 이용해 이런 포스터를 제작 전 세계에 설치하여 자신들의 혁명을 이루고자 했다. 신혼여행지의 호텔방 침대에서 평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 것은 매우 나이브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에도 언급했듯이 이벤트성일 수도 있으나 그것이 파급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비틀즈의 전 멤버이자 존 레논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다.

 

다큐멘터리는 오노 요코와의 결혼 후 존 레논의 여자 관계나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노 요코는 여기서 빈번하게 등장하고 별다른 나래이션 없이 기록물들과 인터뷰이들로만 채워지는데 특별히 삽입곡들이 원곡 그대로 쓰였다. 올해 개봉한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나 비틀즈의 카피곡들로 채워진 <아이 앰 샘> 사운드트랙이 어땠는가를 떠올려 봐도 <존 레논 컨피덴셜>은 전적으로 오노 요코에 힘입은 바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비틀즈의 노래가 영화 등에 그대로 쓰인 예가 없다. 대담을 이끌어간 두 분도 그런 점을 지적했다.

 

이 날 대담은 존 레논 같은 이가 왜 우리나라에는 없는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역할, 저항 등의 상징으로 보일 만한 인물이 왜 없을까? 대담자들은 사전 검열제도 등이 폐지된지 꽤 되었지만 그간 우리 나라 가수들은 그것에 길들여져 자기 검열을 지금도 하고 있는 거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때는 진정한 아이콘라고 여겼던 가수가 컴백하면서 왜 이벤트를 벌일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소회도 피력했었다. 자기 검열이나 검열제도에 대해 덧붙이자면 '주옥 같은 가사'가 나왔던 긍정적 측면도 있다. 검열을 피하다보니 노래들을 다듬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노래들은 아직도 기억되고 애창되기도 한다.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All we are saying "Give peace a chance" 

다큐멘터리 내내 존 레논은 평화에게 기회를 주자라고 역설하는데 나이브한 이런 주장이 먹혀들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이 참 서글프게 다가온다. 개별 정책에 항의한 것도 아니요 단지 그는 이상인 평화만을 외쳤을 뿐인데 위협이 되다니.....그런 시대를 살고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혹시 이 땅에서는 지금이 그런 시절이려나?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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