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 씨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국민요정'과 '줌마렐라'라는 생전의 찬사를 뒤로 하고 모든 이들의 애도 속에 '하늘로 간 호수'에 몸을 담갔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서둘러 길을 재촉했을까. 이제 더는 그이의 미소를 볼 수 없게 됐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해진다. 내가 너무 감성적이고 예민해서 그런가.
▲ 2008년 10월 3일자 한겨레 1면 우측상단 기사
사람마다 기억하는 코드가 다르겠지만, 내게 최진실 씨는 몸부림이다.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재기해 보려는 억척스런 몸부림. 속으로 울고 울어도 겉으로는 웃음 지어보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외로움과 상실감에 허덕이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지난한 몸부림 말이다. 굴곡으로 얼룩진 그이의 삶이 본디 그렇다.
처음 10년동안은 가파른 상승곡선이었다. 출연하는 것마다 히트했고, 최진실표 밝고 당찬 미소는 금세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국민요정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이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광고카피처럼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 절정에서 그를 흠모하는 한 남자를 만나 밀레니엄의 해에 '세기의 결혼식'을 치렀다. 그것이 그이 인생의 정점이었다. 인기 명예 돈 사랑 등등 모든 면에서 남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혼과 더불어 그이는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 들었다. '행복 끝, 불행 시작'이란 말 그대로였다. 요정의 귀여운 얼굴은 난폭한 피멍으로 물들었고, 톱스타의 품위는 이혼과 연관된 추한 잡음과 함께 휴지처럼 구겨졌다. 우울증이 찾아온 건 그때였다. 그럼에도 그이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며 버텨냈다. 자기에게 남겨진 두 자식을 생각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마침내 그이는 강인한 아줌마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 왔다.
그이는 TV드라마 에서 혼신을 다한 연기를 선보여 연기대상을 거머 쥐었다. 방송사를 바꿔 출연한 드라마를 통해서는 씩씩하고 당찬 '줌마렐라' 신화를 창조했다. 브라운관에 비친 그이는 늘 웃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 남모를 아픔과 외로움이 암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실상 그이의 하루하루는 이를 악물고 싸워야만 하는 전쟁과도 같았다. '최진실 사단'이라 칭하는 지인들과의 만남에 몰두한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영혼의 깊은 병까지는 공유할 수 없는 법. 그이는 여전히 혼자였고 외로움에 시달렸다. 거기에 두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압박과 부담감까지 더해지면서 연약한 몸은 점점 쇠약해져갔다. 그런 그에게 9월 초에 터진 안재환의 자살과 뜬금없는 사채 관련 루머는 카운터펀치나 마찬가지였다. 이혼의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엄마로서 생활인으로서 그리고 연기자로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이였지만 느닷없이 덧씌워진 사채업자 루머는 '똑순이' 최진실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짐이었다.
그럼에도... 그이는 집초처럼 일어서고자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일어서고자 몸부림쳤다. 그이가 루머 유포자를 잡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도 이런 몸부림의 일환이었을 터다. 그 와중에 CF 촬영을 강행하고, 출연을 결정한 것이 그를 반증한다. 그러나 계속된 악플과 전날 걸려온 최초 유포자와의 전화통화는 삶의 끈을 모질게 쥐고있던 그이의 손에서 기어이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근거없는 악성루머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놓고도 외려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해 선처를 부탁하는 인간의 어둠 앞에서 31kg의 가녀린 그이의 육체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결국 그이는, 우리가 아다시피, 술기운으로 우울증이 한층 더 깊어진 상태에서 이른 새벽 스스로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죽기 직전, 아무도 없는 텅 빈 화장실에서 그이는 홀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 곁에 아무도 없다는 허무함, 인생이 참으로 고단하다는 자괴감, 남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루머로 더렵혀진 자기 인생에 대한 연민,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등등, 필경 이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그 절망의 순간에도 그러나 그이는 마지막까지 손을 내밀었다. 살고 싶다는, 이렇게 억울하게 생을 마감하기 싫다는, 누가 나를 붙잡아달라는 무력한 몸짓 같은 것. 그이가 죽기 전에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오랜 전화통화로 죽음을 시사한 것을 달리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이의 손을 붙잡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이는 수첩에 적힌 대로 '외톨이'요 '왕따'였다. 이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지독한 외로움 탓에 그이는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압박붕대로 목을 맨 것과 다를 것 하나 없는 빈틈없는 질식 그대로였다. 그렇게 그이는 힘겹게 붙잡고 있던 삶의 끈을 놓고 돌연 저 세상으로 훌쩍 건너가고 말았다. 아! 눈물로 호소하던 그이의 통곡을 조금만 더 주의깊게 들어 주었더라면, 그이가 "죽겠다"고 하소했을 때 그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그이는 아직도 우리 곁에 있을 것을...
그이 말고도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죽고 싶은 사람들이, 죽을 지경에 처한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몰린 사람들이, 외롭고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헤어나올 수 없는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슬피 우는 사람들이, 왕따의 충격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주저앉은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미래를 거세당한 사람들이 어찌 최진실 씨 혼자 뿐이겠는가.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 곳곳에서 우리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단지 우리가 혹은 게으름 때문에 혹은 무관심 때문에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눈을 뜨고 보라. 비정규직의 비애를 안고 1,000여일이 넘는 기간 동안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기륭전자 조합원들의 뜨거운 눈물이 여기 있다. 귀를 열고 들으라. 높이 40m의 철탑에 올라가 고공농성하고 있는 ktx여승무원들의 절규가 저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