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여년전의 일이군요. 서울의 동숭동 대학로가 주말에 차량운행이 통제되던 시절, 저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언제나 기타 하나로 노래를 불렀었죠. 87,88.89.90..한창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데모가 끊이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저 음악이 좋아 거리를 떠돌며 마이크도 없이 무작정 노래만을 불렀던 그 시절, 공원 한편에선 몇명이 그룹을 만들어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카셋테잎에 음악을 틀어 춤을 추기도 했었죠. 저는 그 공간속에서 주말이면 늘 한쪽 벤취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나의 노래를 10시간정도 계속 불렀죠. 계속돤 공연(?)으로 어느새 많은 여중고생 팬들도 생겼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죠. 팬레터가 너무 많이 와서 제가 살던 아파트 경비아저씨가 저를 연예인으로 착각했을 정도로...!, 그때 방위로 근무하던 중 저의 팬이되어 제가 노래할때마다 사람들 앞에서 가끔 우스개 소리를 하던 윤효상이라는 친구는 지금은 대학로에서 길거리 개그맨으로 널리 알려져 개그프로그램을 포함한 각종 방송활동을 겸한 이벤트의 프로가 되었죠. 가끔 저와 술한잔 할때면 그때 저와의 인연이 자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당시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1기로 조규만,문희옥등과 같이 음악을 공부했었고, 88년엔 강변가요제에 이상은, 이상우등과 같이 본선에 나가기도 했었어요. 하지만 저는 짜여진 틀에서 하는 노래보다는 길거리에서의 노래를 더 사랑한 결과로 다른 음악도들에게는 이단아 취급을 받았었죠. 그러다 군에 입대를 하게되고 제대후에는 절친한 대학 후배의 소개로 음반을 취입하기까지 이르렀지만 본격적인 PR시점에서 제가 소중히 쌓아가던 첫사랑과의 헤어짐으로 저의 인생은 곤두박질을 치게 되고, 음악은 커녕 방황의 늪에서 아주 긴 세월을 허공에 날렸죠. 술과 도박 등등..,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참 힘에 겨웠어요. 자영업 실패후 외판원,독서회원모집, 써빙, 택시등의 숱한 직업을 거치다 이제야 비로소 우체국쪽으로 몸담으면서 어느정도 안정적인 생활에 접어들었죠. 내나이 40을 넘어 중년이라는 현실이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지만 현실은 현실! 그러나 자꾸자꾸 떠오르는 옛생각마저 묻기에는 너무 아름다웠던 나의 청춘!
그때 나를 지켜주던 그사람들이 그립습니다! 보고싶습니다!
얼핏 머리를 스쳐가는 이름들, 김미정, 장안젤라등등...,지금은 어엿한 주부들이 되어있을 그들이지만 진심으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