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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환난(1)

윤정원 |2008.10.13 12:58
조회 119 |추천 1

주께서 하시리,  오늘이 아닐지라도,

내일일지라도,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리.

우리의 소망은 쇠하지 않으리.

땅의 슬픔이 담긴 잔을 비우시리.

참으로 귀한 약속일세. 그가 약속하신 말씀

참으로 온전히 잠잠히 주만 의지하면 주께서 하시리.

 

우리도 그처럼 쓰러지기도 하며 미명에 죽기도 하네.

우리가 쓰러지는 곳이 알려지지도 않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눈이 그 곳을 지켜보네.

제국이 멸망하고 세상이 잊는다 해도.

그 후 멍에를 메고 그 잔을 마신 자들이

무궁한 영광 중에 주님이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일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선하며

그의 뜻은 가장 좋은 것일에.

마음이 상하고 멍에가 묶여 있지만

그 후에는 안식일세.

 

- 찰톤 -

 

 

환난과 기도는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도는 환난에 대해 놀라운 가치를 지니고 있다.

환난은 종종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도록 몰아내며, 기도는 환난 중의 인간의 소리이다.

환난을 당할 때의 기도는 놀라운 가치가 있다.

 

기도는 종종 환난에서 구출해 주며 더 나아가서 환난을 감당할 힘을 공급하며 환난 중에 위로하며

인내심을 키워 준다. 환난을 만날 때 기도하는 데 실패하지 않고 그 힘의 참된 근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13)라고 했다.

환난의 때는 모든 사람에게 그 생애 중 어느 때인가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곤고한 날이 이르러 마음이 그 무거운 압력을 느낄 때가 온다.

 

인생의 환난은 너무나 다양하다.

고난의 학교에서 겪는 인간의 경험 또한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사람도 동일한 환경 아래서 동일한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그 자녀들을 다양하게 다루시기에 환난 또한 다양하다.

 

환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 있으며 성도들을 완전케 하며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해 나가는

일에 있어 가장 유효한 대리자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인간에게 찾아온 모든 환난 속에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모든 불유쾌한 생의 경험을 명하시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찾아오는 모든 고난과 고통에 대해 하나님 자신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환난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성도나 혹은 죄인들의 생애에 찾아오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다.

환난은 하나님을 초월하거나 그의 통제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는 무관한 별개의 것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근원에서 솟아났든지 혹은 어느 곳에서 생겼든지 간에 하나님은 그 기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시며,

하나님은 그 손길을 그 환난이 있는 곳에 펴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으시며, 지혜로운 분이며 또한 하나님도

성도들의 최상의 복지에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시는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계신다.

 

환난 자체는 죄가 아니며 죄의 입증도 아니다.

선량한 사람이건 악한 사람이건 모두 환난을 경험한다.

비가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에게 공히 내리듯이 가뭄도 의로운 사람에게나 악한 자에게 공히 찾아온다.

역경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입증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그러한 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욥이 이 경우의 예이다.

그의 깊은 경건에 대하여 분명히 증거했지만 하나님은 지혜롭고 유익한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이 겪어 보지 못한

곤경에 욥을 몰아넣도록 사탄에게 허용하였다. 환난 자체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방해할 힘이 없다.

 

로마서 8:35에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훈련 과정에서는 실제적으로 같은 의미이지만 단어 자체는 서로 다른 세 단어, 즉 시험, 시련 및 환란이 발견된다.

 

시험(Temptation)은 마귀로부터 혹은 인간의 육신적 성품에서 나오는 악에 대한 유혹이다.

시련(Trial)은 테스트다. 시련은 그것이 우리에게 찾아올 때, 우리가 그것에 순복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할 때,

                   우리를 확인하고 테스트하고 우리를 더 강하고 더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다.

환난(Trouble)은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고통과 슬픔과 괴로운 일들을 다 포함하고 있다. 그렇지만 시험과 시련도 실제로는

환난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생애 중에 있는 모든 악한 날들이 전부 환난의 때에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환난의 때는

모든 사람이 당하는 운명이다.

 

우리는 먼저 환난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으며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고에 의해 발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성경에서 기록된 많은 부분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에 관해 더 분명한 개념을 가질 수 있다.

 

복음서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을 위한 분명한 위로의 말씀이 있다.

주님은 세상에서 슬픔을 당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위로해 주는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신령하고 지혜로운 선생이다.

예수님 자신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기도는 환난 날에 한 영혼이 해야 할 가장 적절한 일이다.

기도는 환난 날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도는 환난 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손길을 보는 것이며 그것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이다.

 

환난보다 우리의 연약함을 진실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다.

그것은 강한 사람을 겸손하게 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드러내 보이며,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음을 보여 준다.

환난 때에 하나님께 돌이키는 법을 아는 자는 복된 자다.

만일 환난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서 은혜와 인내와 순종을 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환난 때는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할 때이다.

억압받고 상처입고 깨어진 심령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일이 아니겠는가?  환난을 당하는 영혼이 골방보다 더 위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어디겠는가?

 

환난 때의 기도는 위로와 도움과 소망과 축복을 가져다 준다.

비록 그 환난을 제거하지 않는다 해도 성도가 그것을 더 잘 견디며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게 하는 능력을 준다.

환난 때의 기도는 하나님의 손길을 그 곳에서 보게 해준다.

 

모든 것을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현명하며, 훨씬 더 훌륭하며, 생의 환난을 견디기가 훨씬

더 쉽지 않겠는가?

환난은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그러한 사람들이 그것을 또한 발견한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편 119:71, 75)

 

어떤 환난들은 그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

그것들은 제2차적인 원인으로 생긴다.

그것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기인하며 우리는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는 선량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의 결과로 종종 고난을 받는다.

이것은 삶의 사건 중 일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고난을 겪지않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질서 안에서 허용된다 해도 그것들은 우리 삶 속에 결국은

유익을 주도록 되어 있으며 기도로 극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 때문에 생긴 우리의 상처나 과오나 손해를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한 일들은 기도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인가?

그것들은 기도의 법칙에서 예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그러한 모든 일에 대해 하나님의 손길을 뻗칠 수 있으며

그것들이 우리를 위하여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게 하도록 하실 수 있다.

 

삶의 모든 정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위로인가!

슬픔 중에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는 것은 상처받고 슬픔을 당하는 심령에 얼마나 위로가 될까!

슬픔을 당하고 있는 마음의 짐을 풀어 주는 기도는 얼마나 놀라운 자원인가!

 

오 당신은 슬퍼하는 자의 눈물을 말리시는 자,

이 세상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네.

이 곳에서 상처받고 속임을 받는 우리,

지금 당신께 달려 나아가리.

 

우리의 햇빛 속에서 사는 친구들이여,

겨울이 올 때면 달아나리.

그리고 눈물밖에는 줄 것이 없는 자여,

그 눈물을 홀로 흘려야 하리.

 

그러나 당신은 아픈 마음을 고치시리.

상처난 곳에서 향내를 풍기는 나무처럼

고통 중에도 아름다움을 맛보리.

 

우리의 환란은 결국 주님의 것이다.

그것들은 주님의 허락으로 온다.

주님은 그 모든 것 안에 계시며 그것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상하게 하려 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우리 환난의 원인이 무엇이라 해도 즉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든, 타인에게서 온 것이든, 사탄에게서 온 것이든,

아니면 하나님 자신에게서 온 것이든, 우리는 그것들을 기도로 하나님께 가져갈 수 있는 보장을 받고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것들로부터 귀한 영적 유익을 얻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환난은 축복이 되기도 하며 저주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환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취급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우리를 부드럽게도 하며 굳게도 한다.

그것은 우리를 기도하게 하거나 하나님께로 이끌든지 아니면 우리를 골방에서 밀어내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이사야의 입에서 나온, 하나님이 믿고 기도하는 자를 구원하신다는 다음의 약속의 말씀은 참으로 아름다우며

환난 중에 위로를 주며 믿음을 격려하는 것이 아닌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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