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꺼져. 너 여기 계속 있으면 진짜로 죽여버릴지도 모르니까,
꺼져 미친 새꺄."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김동이 그리고 광팔이.
마지막으로 바닥에 누워버린 날 쪽팔리게 만드는 무뚝뚝이 아부지.
"내 아들 이름 함부로 막 팔면 안 되는 거다.
그거 내가 지어준 건데, 나한텐 세상에서 젤 비싼 이름이다."
"미안해요."
"정종은....... 맛있었는데."
"아껴 먹어요."
"앞으론 그러지 마라."
"그래요."
"강순아, 안에서 이놈 티 한 장만 갖다 줘라."
문틈으로 빠끔히 고개 내민 강순이에게 땀에 젖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하는 우리 아부지.
그러자 강순이는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으로 쏙 들어가버린다.
이으그고 아바도 집 안으로 쾅 하고 들어가버려 이곳에 남은 건 동영이랑 광민이뿐.
두 녀석은 고등학교 시절 쌈박질하던 때의 눈을 하고서 비겁하게 날 미친 듯 야렸다.
"그렇게 살지 마라."
"네, 형님."
"하. 진짜 너, 나 아직도 장난하는 거 같아? 그래 보여?"
일단 광민이보다는 덜 무서운 김동이가 내게로 슬슬 다가와 내 어깨를 움켜잡고 일으킨다.
금방이라도 날 죽일 거 같은 얼굴을 한 광민이는 아무 말 없이 그냥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나를 내려다 보고, 동이는 왼쪽 주먹으로 가볍게 내 뺨을 두들겼다.
"우리가 젤 싫어하는 거 은형이 죽은 거야.
우리가 젤 슬퍼하는 거 은형이 죽은 거고,
우리가 젤 아파하는 거 은형이 죽은 거야."
"......^-^"
"근데 그런 웃는 얼굴하고 내 소중한 친구를 몇 번이나 모욕했다 이거지."
말하다가 흥분해버린 우리 김동이.
피할 틈도 없이 강한 펀치로 내 콧잔등을 날려버리고
파리새끼 죽일 힘도 남지 않은 나는 또 어이없이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러자 동이는 뼈만 남은 오소리 배 위에 올라 앉아 눈물과 함께
마구, 마구 주먹질을 한다.
"은형인데! 내 친구 은형인데!
니가 속였다 이거지, 내 친구 은형인데! 권은형인데!
너 같은 새끼가 몇 번이고 웃는 얼굴 하고서 내 친구 팔아먹었다 이거지!"
====================================================
====================================================
퍼억. 퍼억. 둔탁한 주먹질.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김동영 니 주먹이라면 천 번 맞아 죽어도 괜찮으니까,
그보다 광팔이 말 한마디라도 하지.
더 무섭다 임마. 그러고 노려보는 게.
"말해! 새꺄! 말하라고! 은형이 정보 어디서 다 빼냈어!
누구 노리고 접근한 거야! 강순이였냐? 아니면 단순히 우리 놀린 거야?"
"......."
"말해봐! 어디 대답해보라고 개새꺄! 그 전엔 변죽 좋게 잘 개겼잖아!
그때처럼 주둥이 나불대봐!"
"놀린 거야. 니들 다 놀리려고 그래. 뭐."
"진짜 개새끼."
퍼어억. 마지막 주먹 소리.
온힘이 다 빠진 김동영은 주먹으로 눈물을 스윽 훔쳐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선수 교체라는 듯 말없이 잠자코 있던 광팔이가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건넸다.
에이 씨. 코피범벅 스켜놓고 입에 또 피 잔뜩 고이게 만들어놓고
뱉은 틈도 없이 바로 2차 공격이냐.
"너 진짜 이름 뭐냐."
".....?"
일단은 대답하기 위해 이빨 사이로 흐르는 피를 찍 뱉어버렸다.
그러자 인상을 찌푸린 광팔이가 손가락으로 툭툭 내 이마를 밀어낸다.
"나는 괜찮다 쳐도. 강순이랑 동영이 어떻게 책임질 거냐."
"책임....... 못 져."
"죽고 싶냐.^-^"
"죽기 싫지. 당연히 죽는 거 정말, 싫다."
"근데 왜..... 왜!"
점점 목소리가 커지는 광민이.
이러면 나 12시 될 때까지 짤 없이 그냥 터져야 하나 보다.
피식 웃음이 삐져나와서 눈을 질끔 감으며 고개를 내밀었다.
뭔가 섭섭한데, 뭔가 미칠 듯 슬프고 서러운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날 너무 미워하고 싫어해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픈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웃음으로 모든 걸 감춘 채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냄새가 밴 티셔츠 하나가 내 머리 위로 던져졌다.
"아저씨!"
"그거라도 입어라. 그리고 광민아, 그놈 데리고 병원 가."
"이거 은형이 옷이잖아요!"
"은형이 옷이지."
"이거 이 새끼 왜 줘요! 이 새끼가 어떤 짓 했는데요!"
"그래서 주는 거야."
"아 진짜, 아저씨!"
쾅. 다시금 닫혀버리는 문.
저 집 안에서는 우리 아부지랑 마누라,
내 앞에는 잔뜩 골난 광팔이랑 김동이.
그리고 내 머리 위엔 아빠가 중 3때 잠옷 하라고 사다준 내가 젤 아끼던 하늘색 티셔츠.....
꾸역꾸역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셔츠에서 풍기는 내가 즐겨 쓰던 바나나 향 바디샴푸 냄새.......
결국 난 흐느끼며 티셔츠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그 안에 얼굴을 묻고 진짜 제대로 쪽팔리게 막 울어 버리고 말았다.
"내 옷. 내 옷. 내 옷인데........
이거. 씨발, 니들 다 왜 아무도 안 믿냐,
이거 내 거 맞는데, 나쁜 새끼들. 아무도 못 알아보냐.
짜증나, 니들 다 절교다, 개새끼들"
"너 미쳤냐."
"......."
당황한 듯 내 이마에 손을 짚어보는 동영이.
나는 그런 놈의 손을 홱 뿌리치고 멍해 있는 광팔이를 앞에 둔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아빠가 갖다 준 티를 챙겨 입었다.
"벗어. 니 맘대로 권은형 거 가져가지 마."
무겁게 가라앉은 광팔이의 목소리.
"내 거다. 니들 아무도 나 안 반겨줬으니까.
나 이거랑 같이 돌아갈거다."
"그만하고 벗어."
"잘 먹고 잘 살아라. 임마들아. 가서 강순이나 위로해."
"넌 내 말이 안 들려서 씹는 거냐 아니면 그냥 맞는 게 좋아서 그러는 거냐."
"바나나 냄새. 내가 젤 좋아하던 거."
소매 끝으로 피랑 눈물이 범벅된 얼굴을 스윽 문지르고,
어디든 12시가 되기 전에 이놈들,
그리고 강순이랑 아빠 눈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그 자리에 그냥 박혀 있으려는 발 두 개를 간신히 빼내 걸음을 옮기려는데,
마지막까지 말썽인 광팔이가 내 티셔츠 끝자락을 꽈악 잡아버린다.
"이거 벗어놓고 가라고!"
"80년 뒤에 보자. 실컷 살다 100살 되면 올라와."
"벗기 전에 못 가."
이상하다. 광팔이 놈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슬플 때나 촛불처럼 이리저리 너울지던 놈의 눈동자 두 개가
내 얼굴 위로 꽂히더리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흔들리기 시작한다.
====================================================
====================================================
"놔라."
"권은형은 죽었지."
"......"
"내 친구 은형이 죽었지."
"그럼."
"그래. 죽었는데"
"........."
"나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말하는 나 또라이 같다고 느끼는데."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는 광민이 눈.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압박감에 터질 듯 뛰어대는 내 심장.
"나 왜 니가 은형이로 보이냐."
"......"
뭔지 모를 거다.
무거운 쇳덩이가 입을 꽉 메워버린 느낌.
그래서 뭐라고 말을 꺼내려 해도 입이 벌려지질 않고
목구멍이 열리지 않는 기분.
광민이의 떨리는 목소리에 난 할 말을 잊은 채
코피범벅된 멍청한 얼굴로 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기가 막힌 동영이가 광민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다시금 현관문이 열리더니 실컷 울고 나온 우리 마누라가,
다시는 못 볼 줄만 알았던 우리 마누라가 갑자기 튀어나와 내 앞에 번개같이 다가섰다.
"은형이 옷 벗고 가."
"뭐?"
"이거 은형이가 아끼던 거야.
내가 죽을 때 갖고 갈 거야. 그러니까 벗어."
"......"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어디서 그런 우악스런 힘이 나왔는지
오소리 몸에 걸쳐진 하늘색 티셔츠를 망설임 없이 벗겨버리는 강순이.
할 말 잃은 나는 티셔츠를 품 안에 안아든 강순이에게로 시선을 옮겼고
눈이 퉁퉁 부은 우리 마누라는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이렇게 말한다.
"들어가자. 광민아, 동영아, 여기서 뭐 해. 얘랑 얘기하지 마."
"강순아"
"내 이름 부르지 마."
"지금 몇 시냐."
"광민아, 동영아, 들어가자!"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놓곤 양손으로 광팔이랑 김동이 손을 붙드는 강순이.
무언가 할 말이 남은 광팔이는 묘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
나는 현관문을 열어젖힌 강순이에게 작별 키스 대신 한마디라도 더 건네기 위해
개미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럼 그 옷 니가 나중에 가져와."
"뭐라구?"
"셋 다 잘 있어. 슬펐지만 미치게 즐거웠다. 3일 동안."
"그만해 너!"
"잘 들어가. 이따 잘 자구. 좋은 꿈꿔.
강순이는 12시 되기 전에 집에 들어가고."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 못해서 미안하다.
이런 모습으로 갈 거면서 끝까지 우기고 내려와 미안하다.
결국엔 울게 만들어 미안하다.
그래도, 사랑한다..........
천천히 닫히는 현관문 사이로 세 사람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이강순, 내가 니 별이다."
바람에 희미하게 묻혀버린 내 목소리에 닫혔던 현관문이 다시 활짝 열려버렸다.
"방금 너 뭐라 그랬어."
뒤돌아선 나는 그냥 걷는다.
몸에 힘이 빠지니까, 목소리도 작아지니까,
갈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슬프고 더러운 예감에 무작정 비틀비틀 걷는다.
등 뒤에서 커다랗게 들려오는 강순이의 고함소리.
"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니가 내 별이라구 임마.
이강순, 내가 니 별이라구, 그거 맞잖아.
아니었나, 아니야. 맞지. 내가 니 별 맞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강순.........
내가 니 별이다.
"내 말 안 들려? 야!"
====================================================
====================================================
들리는데 이젠 갈 수가 없네요.
이젠 더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네요.
머릿속에선 시계가 열 두 번 울리는 환청이 들려온다.
====================================================
올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통이 빠개질 듯 아파왔다.
주저앉은 손에 잡힌 아스팔트 바닥이 강순이 얼굴만큼 애절하게 느껴져서
피투성이 손으로 바닥을 쓰다듬으면서 마누라 이름만 불렀다.
"나 권은형 맞는데, 진짜 내가 권은형 맞는데.
병신 같은 게 지 서방도 못 알아보고,
작별키스도 안 해줄 거면서 신경질이나 틱틱 내고,
나중에 임마 너 하늘 오면 혼내줄......"
신음에 가까운 목소리라도 내서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젠 정말 한계라는 걸 느낀 난 어딘지도 모를
우리 동네 어딘가에 누워 병신처럼 그냥 눈물만 흘려댔다.
====================================================
====================================================
"백십일만삼호여......."
분명하게 들려오는 하늘에 사는 영감탱이 목소리.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질수록 내 숨소리가 점점 작아지는 걸 느낀다.
"내가 뭐라고 했느냐, 후회할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꼭 그리 어리석게 행동해야 했느냐."
하아. 하아. 숨쉬기도 힘들다구요.
자꾸 말시키지 말아요. 나도 충분히 알아요.
미치도록 후회하고 있어요.
"조금만 참아라. 금방 끝날 것이다.
미안하구나. 3일이란 시간밖에 줄 수 없어서 미안하구나."
희미한 영감탱이의 목소리가 심장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울 사람은 나라구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처럼 굴어놓고 그러지 말아요.
같이 울지 말라구요. 그럼 나 너무 비참하잖아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뿌듯한 거 하나는 말하고 싶어도 꾹 참았다는 거,
내가 권은형이라는 거 말하고 싶었던 거 꾹 참아낸 거.
그래서 우리 강순이 대신 내가 아플 수 있다는 거.
내 여자니까, 나 때문에 아프면 안 되니까,
그래서 내가 다 짊어지고 떠나니까........
그거 하나는 다행이다.
그래도 놀이동산 가고 싶었는데.
천일 기념으로 갔던 강원도도 다시 가고 싶었는데,
학교도 가고 싶었는데. 하고 싶은 거 진짜 많았는데...........
3일, 너 임마, 너무 짧았다구.
====================================================
====================================================
집에서 아직도 울고 있을 강순이랑,
뭔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광팔이랑.
열 받아 씩씩대고 있을 동영이랑,
그냥 태연히 자고 있을 아빠를 떠올리면서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으로 눈앞에 있는 놀란 꼬맹이를 향해 씽긋 웃어주며.....
눈을 감았다.
성민재 놈을 놓아주었다.
땅에다가 안녕하고 인사해주었다.
다시 별이 되었다. 이젠 익숙해진 고통과 함께.
영원히 끝나지 않길 바랐던 그 3일은 그렇게 너무나 간단하고 어이없이 끝나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