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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이영주 |2008.11.18 17:09
조회 30 |추천 0


 

2008. 11. 13. ~ 11. 16. 인디스페이스

 

 

오프라인 잡지에 매달 고정적으로 원고를 내는 곳이 한 곳 있는데, 영화 선정이나 글의 주제를 따로 정해주지 않고 필자 마음대로 할 수 있게 열어두어서 매달 본 영화 중 그나마 그 매체와 어울릴 법한 영화로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 달엔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출품작을 가지고 글을 써달라고 요청이 들어왔다.

보통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요구하면 오히려 글 쓰기가 편했다. 요구사항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를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영화제 분위기가 어떤지 감조차 잡기 어려웠고 상영작 목록을 보아하니 노동운동에 대해 썩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쓰기엔 좀 버겁겠다 싶은 영화들뿐이다. 상영작 중 켄 로치 감독의 가 있긴 하나 이미 그 영화로 지난 달에 원고를 제출했으므로 그건 안 된다. 큰일이다.

정말정말 쉬고만 싶었던 일요일,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명동까지 행차했다. 워낙 느즈막히 도착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두 편뿐. 과 폐막작인 을 보았다. 두 영화를 내처 보고 명동까지 온 김에 스폰지하우스에서 까지 본 후, 몇 시간을 극장에 앉아 있었더니 삐걱삐걱 소리가 날 것 같은 허리를 두드리며 인천으로 내려오는 길. 머릿속이 복잡했다. 뽀글뽀글. 내가 과연 이 영화들을 가지고 원고를 쓸 수 있을까? 아니, 쓸 자격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두 편은 영화라고 하기엔 영화적인 요소가 너무 없다. 다큐멘터리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장르의 문제가 아니다. 두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릿속은 신자유주의시대 노동운동은 어때야 하는가 하는, 내 머리로 고민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주제로 복작거렸다. 이번에 처음 가봤지만, 도대체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왜 하는 걸까? 나같은 일반관객을 대상으로 영화제를 하려면 이런 영화 상영은 아니지 않나? 이런 영화 상영이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영화제라는 이름보다는 노동운동 활동가 포럼 같은 형식으로 상영회와 토론회를 이어가는 편이 훨씬 유의미하다는 이야기다. 극장에 있는 몇 안 되는 관객들과 어찌 보면 꽤 심각하면서도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내용이 담긴 이 영화들이 정말 잘 만나고 있는 건지, 내심 걱정이 됐다. (별 걱정을 다 한다... 참내... ㅡㅡ;;) 그리고 이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은 노동문화운동 하는 사람들이나 나같은 영화깨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주노총 지도부들이나 현장 활동가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심란해지기까지... (별 참견을 다 한다... 참내... ㅡㅡ;;)

 

어찌됐든, 아무튼, 하여튼!!! 영화를 봤으니 뭔가 썰을 풀고, 그 썰을 데스크에 제출할지 말지는 그 다음에 생각해 봐야겠다.

 

 

미국 퀵서비스 노동자들 SF MessㅣGreg Rodgersㅣ42minㅣ미국ㅣ2008ㅣ다큐멘터리ㅣcolor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퀵서비스 노동자 이야기라길래 당연히 오토바이를 떠올렸는데, 아니었다. 자전거 택배 노동자 이야기다.

정말 많은 인터비들의 인터뷰들이 40분 남짓한 시간 빼곡히 쉴 새 없이 흘러간다. 인터비들이 이야기하는 내용도 자전거 택배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부터 자동차 중심의 미국 도로사정, Critical Mess(자전거 타기 운동)와 자전거 택배노동과의 관계, 미국의 경제상황, 허울좋은 개인사업자 특수고용의 심각성, 개별 노동자들의 단결, 상급단체와의 관계, 노동자들의 경영권 확보 등 매우 다채롭다.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엔 인터뷰 속도가 너무 빠르고 내용이 산만하다. 4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들의 인터뷰는 하나도 놓칠 게 없다. 자전거 택배 노동자야말로 속도 중심의 자본주의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존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은 자전거를 사랑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자전거타기로 돈을 벌 수 있는 택배노동 또한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밥을 먹고 살 수 없고 사랑 하나로 씽씽 달리는 자동차도로에 자신의 생명을 내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영화 하나로 미국 퀵서비스 노동자들이 앞으로 어떤 투쟁을 벌이고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갈지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30년 후에도 이 일을 하고 싶다는 40대 노동자의 인터뷰에서 노동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장 소중한 가치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자전거가, 그들이 좋아하는 자전거 택배노동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가길, 태평양 건너 한국의 관객 한명이 응원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미국 퀵서비스 노동자, 화이팅!

 

 

무엇이 문제인가?- 독일금속노조, 이상과 현실

Not Just A Matter of Saving Our Skins / Utoia and IG Metalㅣ

Holger Wegemannㅣ81minㅣ독일ㅣ2007ㅣ다큐멘터리ㅣcolor

 

 

제목부터 묵직하다. 세상에, “무엇이 문제인가?”라니, 거기다 “이상과 현실”이라니…. 관객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라고 아예 작정하고 만든 냄새가 풀풀 난다.
그러나 이번 영화제 폐막작이다.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선정하는 작품이 바로 개막작과 폐막작 아니던가. 아마도 주최 측의 고민이 가장 응집된 작품이리라, 하는 기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2005년 5월 독일 베를린의 가전제품 회사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이 공장 폐업과 600개의 일자리 감소에 직면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들과 상급단체인 독일금속노조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마치 잘 정리된 투쟁보고서처럼, 친절하게도 중간제목까지 달아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2006년 베를린의 보슈-지멘스 공장의 노동자들은 파업 찬반투표에서 95%의 찬성으로 파업을 감행하고 공장을 점거한다. 공장을 폐업하려는 사측의 계획에 맞서 이들은 ‘단결의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독일 전역을 순회하며 연대행렬을 조직한다. 물론 그들의 투쟁에 시큰둥한 지역도 간혹 있었지만 행진 대열이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대공장이 있는 지역을 지날 때면 열렬한 환대와 연대의 인사를 받는다. 꽤 긴 시간의 투쟁이었음에도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이 힘 있게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연대’의 힘 때문이었다.
결국 사측은 2010년까지 공장 폐업을 유보하고 600여명의 노동자 중 400명의 고용안정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부분적 승리다.

 

무엇이 문제인가, 집요하게 캐묻다

 

자, 여기까지만 보여줬다면 그냥 그런 투쟁다큐멘터리로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파업 이후’, ‘협상을 추억하며’라는 중간제목으로 투쟁 이후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영화제목인 “무엇이 문제인가? - 독일금속노조의 이상과 현실”을 집요하게 캐묻는다.
사측으로부터 절반의 승리인 협상안을 이끌어낸 것은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의 투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협상안을 만들고 서명한 이들은 산별노조인 독일금속노조다. 보슈-지멘스 노동자들 중 65% 이상의 노동자들은 그 협상안에 동의하지 않았으나 25% 이상 동의를 얻으면 법적 효력을 갖는 현재 독일법 상 독일금속노조와 사측의 협상안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
금속노조의 협상안 앞에서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은 절규한다. “400명만 고용을 보장하면 216명은 일자리를 잃어도 된다는 겁니까?” “우리는 노동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실업수당이 문제가 아니라 고용보장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그것은 단지 보슈-지멘스뿐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라고 당신들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투쟁하는 우릴 보며 자랑스럽다고 했던 당신들의 말은 거짓이었습니까?”
영화 초반부 파업에 돌입하기 전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은 며칠 동안 강당에서 교육과 토론을 벌였다. 거기서 금속노조 간부들이 했던 이야기들은 반쪽짜리 합의문 앞에서 거짓부렁이 되고 만 것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아니다

 

감독은 사측과 타협한 독일금속노조의 반쪽짜리 합의문을 두고 이상과 현실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전체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개별 공장이 아닌 노동자 전체가 일할 권리를 가지는 것이 “이상”이었으나 지난한 투쟁을 계속 이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략 타협점을 찾은 금속노조의 “현실” 사이의 괴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본 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했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그리고 나름 내린 결론.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아니다. 어떻게 현장 노동자들의 공통된 절규인 고용안정, 일할 권리 보장이 이상이고 사측과의 타협, 다시 말해 금속노조의 ‘협상력’이 현실일 수 있는가?
신자유주의는 전 지구적인 노동시장 유연화정책, 구조조정으로 전 세계 노동자들을 고용불안의 지옥에 빠뜨렸다. 이전까지 노동자의 투쟁이 개별 사업장에서 노동의 대가를 얼마나 얻어낼 것인가에 집중돼 있었다면, 이제는 노동할 기회를 가질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의 문제가 된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인 노동할 권리를 지킬 것인가 빼앗길 것인가의 문제, 즉 인간으로 살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며 노동자와 그 가족이 생존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별 사업장의 문제가 아니라 한 나라, 전 세계 노동자의 문제가 되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몇 달 전 새사연의 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은 노동자가 대안실현 주체로 서려면 반신자유주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고, ‘총노동’의 요구를 대표하는 경제강령 아래 단결하며, ‘국민적 의제’를 주도하며 반신자유주의 연대를 형성하고, 경제적 이익을 넘어 정치적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 책을 읽을 때는 전체적인 맥락에는 동의하면서도 ‘총노동’의 요구가 도대체 뭔지, 노동계급이 주도할 수 있는 ‘국민적 의제’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잡히지 않아 답답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알겠다. 이미 신자유주의는 ‘총노동’의 요구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게끔 노동자들을 인간 이하로 내몰고 있으며, ‘총노동’의 요구는 ‘국민적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보슈-지멘스 노동자들의 행진이 왜 다른 도시에서 환영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베를린에 있는 한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며, 그 노동을 통해 먹고사는 국민적 의제이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그러한 요구를 저버리고 협상력에 집착할 때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정치적 운동’은 불가능한 것이다.
“노동자계급,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도발적이면서도 다소 암울한 올해 영화제의 질문에 대한 해답은 어쩌면 이미 나와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더욱 확실해진다.
이 영화는 나같이 영화 보고 가볍게 시시덕거리며 나불대는 사람이 아니라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 간부들, 노동운동가들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독일금속노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성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훨씬 유의미하다.
그래서였다. 그럴 자격도 없으면서 이런 영화가 굳이 영화제란 이름으로 상영되어야 했는가 걱정하고 참견했던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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