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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 미 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조광민 |2008.12.03 13:44
조회 88 |추천 1


 

나도 혼자, 내 옆의 그녀도 혼자, 그녀 옆의 그녀도 혼자, 그녀 옆의 그녀 옆의 그녀도 혼자였다.

 

지난 일요일 극장 안에서의 풍경이다. 내가 내 옆의 그녀 셋이 동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건 영화의 스탭롤이 오른 후 5분쯤 지나서였다. 가운데의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털었을 때 옆의 다른 둘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 셋은 동행이 아니었다.

 

흔치 않은 풍경이다. 극장 가장 좋은 자리 네 자리에 앉은 사람 모두가 혼자 영화를 보러 온 것이다. 여기서 퀴즈 하나, 내가 본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1. 퀀텀 오브 솔러스

2.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3. 미인도

4. 렛 미 인

 

아무런 힌트가 없더라도 경험만으로 맞출 수 있는 문제다. 답은 <렛 미 인>이다. 영화는 Made in Sweden이고, 뱀파이어가 나오며, 포스터는 음침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혼자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작품은 대개 정해져 있다. 예전의 <도그빌>이 그랬고, 지금의 <바시르와 왈츠를>이 그러하며, 앞으로 <북극의 연인들>이 그러할 것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그녀들은 왜 혼자일까? 불이 켜진 후 확인한바 그녀들은 셋 다 멀쩡하게 생겼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이것저것 바닥에서 주워 가는 걸 보니 최소한 막돼먹은 여자는 아닐 것이다. 나름의 아름다움과 기본적인 에티켓을 갖췄으니 이성 친구는 물론이고, 동성 친구가 없을리 없다.

 

그런데 왜? 혼자서? 그건 아마도 <렛 미 인>은 혼자 볼 때 더 좋은 영화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셋 중 한둘은 이번이 첫 번째 관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미 누군가와 봤던 영화를 한 번 더 혼자 찬찬히 즐기고 싶어서 극장을 찾았을 거라는 얘기다.

 

영화에 등급을 매기자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혼자 봐서 좋은 영화가 있고, 둘이 봐야 좋은 영화가 있고, 여럿이서 볼 때 좋은 영화가 있다. 둘이 봐서 좋은 영화라면 <러브 액츄얼리>나 <노팅힐> 같은 마음 따뜻한 로맨틱 무비 정도일 테고, 여럿이서 볼 때 좋은 영화는 <본 얼티메이텀>나 <007> 같이 화끈한 액션물 정도일 거다.

 

반면 혼자 보면 좋은 영화는 대개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가 많다. <원스>처럼 둘 중 하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데 나머지 하나는 지루함의 눈물을 쏟아낸다거나, <데스프루나>나 <플래닛테러>같이 지나치게 선이 곧아서 웬만큼 취향이 일치하지 않고선 같이 구경하기 힘든 익스플로테이션 무비가 그렇다.

 

말했듯 <렛 미 인>은 혼자 보기 좋은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위의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를 추천할 때는 조금 더 엄격해져도 좋을 듯하다. <렛 미 인>은 혼자 보기 좋은 영화를 넘어, '반드시 혼자 봐야하는' 영화다. 그래야만 영화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유는 영화를 관통하는 주된 정서와 관련한다. 이 영화의 스토리를 규정짓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지만, <렛 미 인>이 말하는 바만큼은 명확하다. 누구는 이 영화를 두고 '사랑'을 말하는 데 내 생각은 다르다. 영화가 말하는 바는 사랑이 아닌 '소통'이다. (엄밀히 둘은 전혀 다르다)

 

만일 당신 옆의 누군가 <렛 미 인>을 보다가 간혹 등장하는 잔인한 클리셰에 깜짝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다거나, 가끔씩 늘어지는 전개에 극장을 나가서 들릴 쇼핑몰에 대해 말하려 든다면, 당신은 이 영화와의 소통에 실패 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곳에 혼자 영화를 보러 왔고,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서도 혼자이며, 집에도 혼자 돌아가야 한다'는 쓸데없이 외롭고, 쓸쓸하고, 어딘가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하는 등의 얄팍한 감정이입 장치가 어쩌면 <렛 미 인>이 말하는 바를 더욱 와 닿게 할 지도 모른다.

 

영화는 소년(오스칼)의 집 근처로 소녀(혹은 소년, 이엘라)가 이사를 오면서 시작된다.

 

소년은 돼지코를 닮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매번 반항 한 번 못하는 겁쟁이지만 밤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년은 밤이면 칼을 들고 집 밖을 나선다. 그리고 칼로 나무를 찔러대며 말한다. "킁킁 거려봐. 돼지처럼, 더 킁킁 거려봐"

 

소녀가 오기 전까지, 소년이 자신의 감정을 유일하게 전달하는 상대는 어둠속의 나무였다. 나무는 소년에 맺힌 다소간의 괴로움을 풀 수는 있지만, 어떤 해결책도 제시해주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소녀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바뀐다.

 

<렛 미 인>의 줄거리를 요약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는 '뱀파이어'다. 소녀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어야만 견딜 수 있는 뱀파이어인데, (사람의 피를 빨아 먹지 못하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 사실은 소년과는 다른 의미로 소녀가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뱀파이어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영화에서 소녀가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맥거핀으로 작용한다.

 

만일 소녀가 뱀파이어가 아니라 벽을 타고 오르는 스파이더맨이었거나, 하늘을 나는 원더우먼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고, 오히려 남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입장이었다고 생각해 보자. 만일 그랬더라도 영화의 분위기가 바뀔 수는 있었을지언정, 감독의 연출에 따라 충분히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 안가 고뇌하던 스파이더맨을 떠올려 보라)

 

중요한 건 소녀가 사람을 죽이고, 그래서 피를 빨아 마셔야만 살 수 있는 가해자 입장의 뱀파이어라는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건 그녀가 '운명적으로 남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의 따돌림에 정신분열 증세를 일으키는 소년과 마찬가지로 소녀도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달라서 바깥 세계와는 소통하기 힘든 존재이며 또 그것이 운명적인 것에 기인한다는 사실이 뱀파이어가 내포하는 핵심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소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영화에 접근하려 든다면 영화는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영화 중반 (엄마에겐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고 둘러댄 다음) 소년은 소녀에게 사실은 뺨의 상처가 아이들이 괴롭혀서 생긴 것이라고 (아마도 처음으로)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자 소녀가 말한다

 

"오스칼, 잘 들어. 그럴 땐 더 강하게 나가야 해. 그래야 아무도 널 우습게보지 않아" 그리곤 한 마디 덧붙인다. "혼자서 힘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사채업자에 쫓기는 친구의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눈물로 같이 밤을 지샐 뿐 빚을 해결해 주지 못한 나는 친구와 소통에 성공한 것일까? 나는 빚쟁이 친구에게 하룻밤의 위로였을 뿐, 실제로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건 소통이 아니다. 진정으로 통한다면 해결해주어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최소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

 

나는 푼돈이나마 어렵게 모은 저축통장을 내어주었든가, 여기를 가면 돈을 구할 수 있다더라 같은 귀동냥 정보라도 친구에게 흘려주었어야 했다. 그것이 실질적 의미의 소통인 것이다.

 

소녀는 소년과 완벽히 소통했다. 소녀는 소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녀가 제시한 방법이 실패할 경우) 영화 후반부 수영장 시퀀스에서는 직접 소년의 상황을 해결해주기까지 한다.

 

소년 역시 소녀와 소통한다. 비록 소년은 소녀에게 필요한 피를 구해다주지는 못하지만 세상사람 중 유일하게 (소녀의 아버지마저도 버거워했던) 소녀의 존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소녀가 여성성을 박탈당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소년은 소녀의 생식기에 Suture가 된 것을 알게 돼지만 잠시 놀라고 말았을 뿐이다) 소년은 소녀와 맺은 '사귐'의 관계를 깨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 소녀가 사람을 죽이는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이 소녀와의 관계를 깨려 하지만 이 역시도 쉽게 회복된다. 살인에 대한 소년의 추궁에 소녀는 말한다.

 

"난 살기 위해 사람을 죽일 뿐이야. 넌 사람을 죽이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죽였잖아. 오스칼, 나는 너야. 단 한 번이라도 그런 나를 이해해 줘"

 

이후 소년은 자신도 그녀 혹은 그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둘의 소통은 더욱 견고해 진다.

 

소년의 집에 들어온 소녀가 머리에 피를 흘리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에 하나다.

 

소녀는 처음 소년의 집에 발을 들였을 때 소년이 '내가 널 초대했어'라고 말하지 않으면 자신이 이상해질 거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소년은 그 말을 하지 않고, 소녀의 머리에선 피가 넘쳐흐른다. 그때서야 소년은 황급히 외친다.

 

"알았어!!! 그러지마!!! 내가 널 초대했어!!!!!!"

 

소년이 입으로 내 뱉은 이 선언은 소녀의 마음속에 있는 깊은 불안을(자신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 소년이 자신이 떠날 것이라는 불안) 해결해 주는 (최초의) 실제적인 청각 증거이며, 소년이 소녀를 이해하게 된 후 나누는 둘의 키스는 소년과 소녀가 완전히 소통했음을 보여주는 (두 번째) 실제적 시각 증거다.

 

세 번째 소통의 실제적 증거는 촉각 증거인데, 영화 마지막 텅빈 열차 씬에서 상자에 담긴 소녀와 모르스 부호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포스터를 한 번 보도록 하자.

 

때로 포스터는 과거 <아이덴티티>처럼 영화의 모든 것을 암시해주기도 하는데 <렛 미 인>의 경우도 그렇다. 포스터엔 영화 속 소녀가 소년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이기도 한 "빛이 사라지면 너에게 갈게"가 쓰여 있다.

 

일반적으로 빛은 밝고, 따뜻하고, 유익한 정상적 이미지지만 그와 반대되는 어둠은 검고, 차갑고, 위협적인 비정상적 이미지다.

 

빛이 사라지고 나서야 소년에게 가겠다는 소녀의 대사는, 소녀(그리고 소년의)의 상태가 정상적인 궤도에서 멀찌감치 이탈해 있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만일 둘이 소통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 소통은 널리 외부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 둘 만의 내부적인 소통으로 그칠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승객이라곤 아무도 없는 기차에서도 소년과 달리 소녀는 (뱀파이어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상자 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소년과 소녀는 모르스 부호를 이용해 소통에 나선다.

 

기차가 달린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소년은 더이상 따돌림 당하지 않는 곳으로, 소녀는 사람들이 자신이 뱀파이어인 것을 모르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모든 게 해결되었을까? 앞으로 그들의 소통은 외부로 뻗어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소년의 비정상적인 점은 치유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만, 소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은 현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회복될 수 없는 '운명적인 다름'인 까닭이다.

 

소녀의 '운명적 다름' 탓에 둘의 소통은 어디를 가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훗날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한 소년이 소녀를 떠날지도 모를 일이다.

 

포스터의 나머지 문구는 이렇다. '전 세계를 매혹시킨 슬픈 사랑 이야기' 서두에 밝혔듯 '슬픈 사랑'은 '슬픈 소통' 혹은 '슬픈 이야기' 정도로 반드시 수정될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자. 새로운 세계가 열렸을 때 만일 소년이 소녀를 떠났다면, 그 이유는 다른 소녀(다시 말해서 다른 사랑)를 찾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소년이 소녀를 떠난다면 그것은 소녀보다 정상적인 소통의 상대 (흉측한 뱀파이어가 아니고 마음 놓고 과자도 같이 먹을 수 있는)를 찾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영화에서 소년과 소녀는 사랑했다고 볼 수 없다. 그저 순수하게 서로 '통했을 뿐'이다. 알다시피 사랑이란 소통의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렛 미 인>은 슬픈 영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극장 문을 나설때까지 그들의 슬픔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했던 어제 보다, 유일하게 소통 가능했던 상대를 잃은 바로 오늘의 상실감이 더 강력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영화가 막을 내린 후 당신이 극장문을 빠져 나왔을 때 그 둘은 (특히 소녀는) 지금보다 더 슬퍼질 것이고, 더 아파할 것이다. <렛 미 인>을 꼭 혼자 보고 극장 문을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만일 극장문을 나섰을 때 당신이 혼자라면, 그들의 겪었던 슬픔과 앞으로 겪어야 할 슬픔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사람은 혼자일 때 더 잘 느낄 수 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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