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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고함(孤喊)] 신 청춘예찬 - 젊은이들에게(feat. 빠굥)

박용호 |2008.12.03 19:48
조회 59 |추천 1

 

매우 착잡한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청춘은 도전의 앞날이 보장되어 있을 때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건만, 우리 주변의 현실은 그대들에게 암울한 그림자만을 드리운다.

우선 어느 대학, 어느 전공을 선택할 것인가

 

과연 나는 무난히 내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까

말이 논술이라지만 논술을 빙자하여 본고사에 가까운 형태의 시험이 부활할 수도 있다는데, 어떻게 시험에 대처해야 할까

이제 3불의 원칙도 깨져버리고, 엘리트 중심의 선발정책이 강화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지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정한 여건에 도달치 못하는 학생들로서는 좌절감만 깊어질 텐데, 이를 어쩔 것인가


정권의 변화에 따라 입시제도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그대들의 미래를 지배하려는 어른들의

단순한 탐욕 때문이다.

어른들은 자신의 가치관의 궤도에 따라 인간세의 미래가 이탈 없이 흘러가기만을 바라는 지배욕에 불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가치관을 그대들의 앞날에 덮어씌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그들은 사회 정의라고 부른다.

대학 진학에 수반되는 번문욕례나 제도의 변화만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 즉 현재 어른들이 연출하고 있는 이 사회 자체가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따라서 생산력이 저하되고,

따라서 고용인력이 감소되며, 모든 이들의 수입이 빈곤해지면 불경기가 심화된다.

 

그러나 아무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계적 현상”이라는 무책임한 말로써 자신들의 실존의 죄악을 회피하려 한다.

이들이 곧 그대들의 어른이다.

그 죄악의 업을 모조리 그대들의 미래에 유산으로 남길 뿐이다.

세계적 불경기야말로 우리의 호경기의 기회일 수도 있고,

세계의 절망이 분명 우리의 희망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어늘,

그러한 자신감을 외치는 어른들은 없다.

그러한 자신감을 토로하기에는 그들은 너무도 부패해 있다. 의타적이기만 한 것이다.

청춘 의 가장 심오한 정의는 아직 비극에 물들지 않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아직 이 시대의 비극에 물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시대의 참혹한 부패를 직접 체험하기까지는 아직도 창창한 전도가 있다.

제아무리 인간의 지식이 대단한 것이라 할지라도 직접 체험의 결여를 메울 수는 없다.

 

그대들은 아직도 무지하다.

무지하기에 순결하다.

 

그래서 아직도 몽롱한 중에 인생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 속을 헤매기 때문에 그대들은 빨리 웃고 빨리 운다. 빨리 행복하고 빨리 슬퍼진다.

빨리 용기를 느끼고 빨리 공포를 느낀다. 빨리 성공하고 빨리 좌절한다.

지난 금요일(28일) 나는 경희대 한의과대학에 가서 두 시간 강의를 했다.

오랜만에 청춘의 열기 속에 나의 존재가 함몰되는 것을 느꼈다.

두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내 강의를 들으며 웃고 울었다.

긴장된 폭소의 폭포가 내내 쏟아졌다. 그만큼 그들에게는 좌절감이 심각한 것이다.

걱정과 희망이 한 찰나 속에서도 수백 번 교차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과연 내가 무슨 인생의 열쇠를 선사할 수 있었을까


 

청춘은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다.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청춘의 기억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의 기억만이 청춘보다 더 오래 산다.

청춘 그 자체는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다.

그러나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청춘은 살아볼 가치가 있다.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른들의 작위(作爲)가 그대들에게 부과하는 입시제도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인생과 청춘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

입시에는 최선을 다함만이 있을 뿐이다.

운이 개재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운이란 호운, 악운이 모두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이다.

운에 억울함을 느껴서는 아니 된다.

그대들은 억울할 시간이 없다.

불확정적이지만 행운의 미래가 얼마든지 그대들을 맞이할 차비를 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청춘의 좌절이란 고귀한 것이다.

인생은 오로지 좌절만을 통해서 도약할 수 있고 진리의 문으로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오로지 좌절을 통해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의 좌표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순간 자기를 헌신할 수 있게 된다.

한 이성을 사랑해도 자기를 버릴 줄 알며 그 대상에게 헌신한다.

사랑이란 이기적 탐욕을 자기버림의 헌신으로 전환시킨다.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보편적 가치를 배워야 한다.

 

그 보편적 가치는 결국 내 마음에 평화를 준다.

입시를 앞둔 그대들의 마음은 격랑에 떠 있는 가랑잎처럼 요동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대들이 청춘의 힘을 깨닫게 된다면 초탈의 평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대학이 한국의 엘리트를 집중시키려고 온갖 몸부림을 쳐도 결코 이 세계를 변혁하는 힘은 그러한 집단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나의 실존이며 나의 실력일 뿐이다.

 

그 실력은 일류 대학 배지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대학 배지는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나뒹구는 것이다.

지금 못 주워도 언젠가는 반드시 주울 수 있다.

그대들에게 지속적인 의지만 있다면.

지금 실패해도 편입의 기회가 있고, 편입의 기회가 없으면 대학원의 기회가 있고,

대학원의 기회가 없어도 다시 공부할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오로지 문제되는 것은 그대들의 참실력일 뿐이다.

그 실력은 대학 입학의 순간에 보장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의 영욕은 결코 간판에 있질 않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토록 그대들 앞에 허약하게 노출되어 있는 것도 실력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력은 오로지 호학(好學)을 통해서만 배양되는 것이다.

 

호학이란 끊임없이 자기의 좌절을 딛고 서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공자는 말했다. “어느 조그만 동네에도 나만큼 충직한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호학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호학이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호학이란 인식의 지평을 무한한 가능성 위에 열어 놓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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