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어디로 가고 싶은 날이었어
흑백영화속 남자주인공처럼
택시를 타고 아저씨 아무데나 가주세요 그러고 싶은 날
멀리 가진 못했어
그저 늘 다니는 회사가 아닌 우리 동네가 아닌
니가 사는 동네도 아닌 우리가 놀던 동네도 아닌
다른 어느 곳을 걸어다녔지
그러다가 그러다가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
아마 그때 바람이 휑 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길거리 상점의 조명이 들어온 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무심코 올려본 하늘이 너무 낮아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옆에 누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처음 그건 정말 누군가 였어
실체가 없는 그냥 누구
그림자처럼
그저 누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곧 욕심이 좀 생겼겠지
기왕이면 좋은 사람이었으면
욕심은 점점 커졌던 것 같애
그 누구가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내가 말하면 많이 웃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손이 따뜻했으면 웃는 게 예뻤으면 옆에서 재잘거려줬으면
생각해보니까
그건 너였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그냥 난 지금 좀 허전할 뿐이다
지금 그리운 누구가 꼭 너는 아니다
뿌연 거울에 그려놓은 그림을 지우듯이
손바닥으로 쓱싹쓱싹 머릿속에 그려진 니 얼굴을 지우고 주위를 둘러봤어
그것봐 역시 아무나였어
나 자신에게 증명하려고 지나가는 여자들을 하나씩 찍어보며 살폈어
그런데 그 여자들도 다 너였어
머리를 묶은 너 소리내어 웃는 너 바쁘게 걷는 너 주머니에 손을 넣은 너
다 너였어
그 후로 나는 아무것도 못 했어
너에게 전화를 걸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하지만 내가 이런 걸 알면 너는 내가 무섭다고 느낄 테니까
너는 참 질기기도 하구나 싫어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전화기를 꺼내는 일도 안 했어
나는 다만 그냥 전화한통 걸어서 안녕 말할 수만 있다면
그래도 그러면 안 되겠지
몸속에 맹장을 지니고 다니듯
잘 보이지 않는 눈 위로 안경을 걸치고 다니듯
내 마음은 항상 당신을 데리고 다닙니다
당신을 피해 멀리멀리 도망간 곳에서
온통 당신과 마주쳤던 날
그 질긴
사랑을말하다
-푸른밤,그리고성시경입니다
-사진: Pretty As a Picture" Blue Is So quiet In Sp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