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케팔로스의 대화 : 정의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 : 정의란 무엇인가? 빌린 것을 갚거나 거짓말하지 않는 것을 정의라고 봐도 될까? 어떤 친구가 내게 무기를 맡겼는데 그 당시 친구는 멀쩡했다. 그런데 무기를 돌려받을 때는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에게 무기를 돌려줘야 할까 말아야할까. 진실을 말하거나 빚을 갚는 일 따위가 정의의 의미 규정이 될 수 없다.
-폴레마르코스 : 친구에게는 이익을, 적에게는 해악을 주는 것이 정의이다.
-소크라테스 : 병에 걸렸을 때 적절한 조치를 내리는 것은 의사이고 항해를 할 때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은 선장이다. 사람이 건강할 때 의사가 필요없고 항해하지 않을 때는 의사가 필요없다. 그렇다면 평화시에는 정의가 필요치 않는가?
-폴페마르코스 : 그렇지 않다. 정의는 계약과 같은 일을 할 때 필요하다.
-소크라테스 : 바둑을 둘 때, 유용한 사람은 정의로운 사람인가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인가? 유용은 정의라기보다 기술이다. 권투에서처럼 방어에 능한 사람이 공격에 능하듯이, 뭔가를 잘 지키는 자는 뭔가를 훔치는 데도 유능하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사람이야말로 불의를 행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결론이 나온다.
-폴레마르코스 : 정의란 친구에게 이익을 주고 적에겐 해악을 주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 인간의 판단에는 한계가 있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결국 악한 자에게 이득을 주고 선한 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람이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까?
-폴레마르코스 : 상대가 적이라면 해를 끼칠 수 있다.
-소크라테스 : 말 한 마리가 있다. 말이 상처를 입었을 때 그 말은 사납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면 그 사람의 미덕 또한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그 사람의 미덕이 정의가 아니겠는가. 의로운 사람이 자신의 정의로 다른 사람을 의롭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상대가 누구든 정의로운 자가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친구와 적을 구별해 이익과 해악을 나누는 것이 정의라고 할 수가 없다.
-트라시마코스 :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트라시마코스 : 정의란 강자의 익을 뜻한다. 지배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법률을 만들 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률을 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정의에 어긋난 범죄자로서 처벌을 한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의이고 이는 곧 강자의 이익을 말한다.
-소크라테스 : 법률을 만들 때 통치자들은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법을 따르는게 정의라고 한다면,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반대의 경우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 : 진정한 전문가라면 그런 과오는 범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위해 최선의 법을 만든다.
-소크라테스 : 그대가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의사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병을 고치는 사람인가, 돈벌이를 하는 사람인가? 의사가 의사로 불리고 선장이 선장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의술이나 통솔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의술과 기술이야말로 환자나 선원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 힘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의사가 의사인 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해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환자의 이익을 생각하며 지시를 내리는 것이다. 선장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통치자 역시 이와 같다.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지 않는다. 국민들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지시하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의 항변 : 진정한 의미의 통치자란
-트라시마코스 : 진정한 의미의 통치란 양과 양치기의 관계와 같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올까 밤낮없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정의란 강자의 이익을 옹호하며 통치자의 이익이며 통지자의 지배를 받는 이들에게는 해가 되는 것이다. 피통치자는 통치자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봉사하지만 그들 자신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선량한 자와 불량한 자가 사업을 하다 정리하면 손해보는 자는 선량한 자이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불량한 자는 한푼이라도 세금을 덜 낸다. 공직에 대해서도 불량한 자가 혜택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불의를 비난하는 것은 그 불의에 희생양이 될까 겁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 통치자 역시 피통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정한 통치자는 권력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가? 각각의 기술엔 저마다 이익을 주는 영역이 있다. 의술은 건강을, 항해술은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이익을 얻는 기술을 통해서이다. 그게 바로 보수를 얻는 기술의 특별한 기능이다. 각자의 기술이 가져오는 이익은 그 기술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얻는 이익이 있다면, 해당 기술자의 전문 기술 이외에, 그 이익을 가져오는 공통적인 보수 획득 기술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보수 획득은 전문가 특유의 기술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기술이 적용되는 대상에 이익을 줌으로써 그 기술을 구사하는 전문가에게 보수라는 이익을 부과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떤 기술이나 어떤 통치도 그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 즉 기술은 기술의 대상, 통치는 통치의 대상에 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통치자로서의 강자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기보다는 통치받고 있는 약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통치자는 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언제나 대상의 이익을 돌보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도 돈이건 명예건 보수가 주어져야 하며 그 지위를 거부할 경우엔 형벌이라도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통치자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트라시마코스가 주장한, 불의의 삶이 정의로운 삶보다 더 이익이 된다는 이유를 듣고 싶다.
-트라시마코스 : 나는 정의를 숭고한 단순함, 불의를 재기 넘치는 판단으로 부르겠다.
소크라테스의 주장 : 정의로운 자는 현명하다
-소크라테스 : 세상엔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조예가 있는 쪽이 지혜가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다른 전문가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할 것이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들끼리 말이다. 전문지식이 있는 자는 지혜롭다고 할 수가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앞지르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반대의 행동을 취할 것이다. 지혜롭지 못한 자는 지혜로운 자에 대해서나 그렇지 않은 자에 대해서나 자기가 더 뛰어나다고 여길 것이다. 정의로운 자는 지혜롭고 현명한 자를 닮았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을 닮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은 현명하고 지혜로우나, 그렇지 못한 사람은 무지하고 열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트라시마코스의 패배 : 정의로운 삶이 더 이익이다
-소크라테스 : 트라시마코스는 불의가 정의보다 더 크고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의가 지혜이고 덕이라면 불의보다 강한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우월한 국가가 불의에 사로잡혀 다른 국가를 예속시키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우월한 국가의 힘이 정의의 배경 없이 행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트라시마코스 : 제 견해로는 가능하다.
-소크라테스 : 그대는 악당들이 일을 꾸밀 때, 그것이 군대든 도둑이든 강도든, 서로가 서로를 해친다면 일이 잘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부정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일을 성사시키는 데 훨씬 낫다. 다시 말하면 불의는 분열과 증오를 부르는 반면 정의는 우애와 협조를 부른다는 뜻이다. 불의가 증오와 분열을 조장한다면 일을 도모하는 무리가 어떤 무리이든, 서로간에 반목과 질시가 판을 칠 것이니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떤 집단이든 개인이든, 그것이 개입되면 불화를 조성하고 일을 그르치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와 대립되는 것이 아닌가? 신은 정의의 편이니 부정한 자는 신들과 적이 되고 정의로운 자는 친구가 된다.
정리하면 정의로운 자는 부정한 자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지혜든 덕이든, 어떤 일을 도모하는 것이든 행동을 통일하는 데 있어서든. 정의로운 자의 삶이 그렇지 못한 자의 삶보다 더 행복한가의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눈,귀의 기능처럼 모든 사물들엔 각자의 고유한 기능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 고유한 기능을 우리는 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눈의 덕도 있고 귀의 덕도 있다. 눈과 귀가 그 덕을 잃으면 보지도 듣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악덕에 물들면 말이다. 정신도 그렇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정신의 기능에 의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의 기능을 상실한, 악덕의 정신을 가진 인물의 삶은 어떻겠는가?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잘 살고 그렇지 못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잘 살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고 행복은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의에 빠진 삶이 정의로운 삶보다 결코 이득이 될 수 없다.
정의Justice라는 개념은 상당히 모호한 개념입니다.
일률적으로 이를 말하자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땅히 따라야 하고, 이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도 합리적인것으로 인식되는 도리"정도로 말할 수가 있는데,
막상 그러한 것이 무엇이냐 라는 부차적인 질문에는 섣불리 대답을 할 수가 없게됩니다.
정의를 논하는 학자들은 많지만,
상당히 와닿는 말을 하던 학자들은
롤스J. Rawls '정의론' (무지의 베일 및 최소극대화원칙)
벤담J. Bentham '도덕과 입법에대한 원리서설'(공리주의)
이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정의란 어떤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하는가?
라는 다소 추상적인 물음에 답을 얻고 싶어신 분은 위 학자들의 저서를 접해보시는 것도 좋으실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