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밤,
가게에서 혼자 청소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주방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랐다.
가끔 요앞 이대근처 안산(鞍山)에서 내려온다는 청솔모인가하고
주방으로 가보았다.
충격적이다.주방에서 마늘빵을 훔쳐먹던 놈을 붙잡았다.
머리가 벗겨지고,
옷은 거의 너덜너덜해진 촌스럽고 찢어진 파란 양복을 입은,
불에 그슬린듯한 코트에, 넥타이,목도리까지 맨,
구색은 맞춘, 중년인듯한 얼굴에 거리의 신사였다.(줄여서 걸신)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혀에 날을 세우고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에다대고 놈은 뜻밖의 소리를 한다.
"이 이보게, 젊은 친구,나, 나좀 도와 주게,
이래뵈도 내가 저 지구 밖의 세계에서 온 지적생명체라네, 응?"
"뭐라구요? 아저씨! 지금 그게 마땅한 변명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보죠?!"
"아 글쎄, 내 말좀 더 들어달라고,니크사르. 나는 사실 지구인들이 말하는 소위 '외계인' 이라니까."
어이가 없었다.
웃겼다. 그래서 웃었다.
잔뜩 화가난 분노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겨우 진정시키고,
이거 재밌는 이야깃감이 될수도 있겟다 싶어 한번 들어주기로 했다.
"그게 말이야, 그 지구인들이 말하는, 오리온자리에는 적색 초거성
'베텔기우스'라는 별이 있네. 뭐 지구말중 아랍어에서 유래했는데,
'거인의 어깨'라는 뜻이지. 그런데 그 별을 둘러싼 베텔기우스계에는 이곳과 비슷하게,또 탄소를 기반으로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그런 한 혹성이 있다네."
거짓말이겟지만 어째 말이 점점 그럴듯해진다.
"그래 난 거기 출신이지, 자네도 알다시피, 베텔기우스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핵융합 하기 때문에 폭발할 수도 있다네.그래서 일찍부터 모든 과학기술의 완성을 이룬 우리는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생각하게 되었지.그 후보행성이 몇군데 있네, 그런데 여기를 태양계라고 하지? 그래, 여기 태양계에는 후보지가 되는 별이 3개나 있더구만.붉은 별 마르스(화성),차가운 유로파(목성의 위성,얼음으로 뒤덮여있음), 숨쉬는 별 가이아(지구). 이렇게 3개나 말일세."
그래,어디까지 가나 보자생각하며, 조금씩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그중 여기 초록별 지구를 조사하러 오셨다구요?"
"뭐, 나는 정식 파견단은 아니네, 그 인턴쉽 조사원 같은 거지."
-'그래 그냥 넌 거지'
"그런데 왜 함부로 가게에 쳐들어와서 맘대로 드시고 계셧던거죠?"
"아, 우리는 평화로운 종족이라네,쳐들어가거나 그러지 않네.
이미 자네들 지도자들께 이 행성의 조사를 해도 된다는 서명을 받고 왔네, 이게 그 사본일세."
주섬주섬 종이쪼가리를 꺼낸다.누렇게 찌든, 명함크기보다 조금더 큰 크기로 찢어진 종이를 내밀어 보여준다.꼭 내손으로 이걸 받으면,손에도 여드름이 날것만 같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조지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버락 오바마 미합중국 차기대통령,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의 친필 서명들일세."
-'얼쑤 놀고 있음일세'
그 마늘빵 기름 뭍은 꼬깃 꼬깃한 누런 종이에는 실제로 워드로 그런내용이 써있었다. 서명도 있긴했다.너무 뻔하게 가짜티가 팍팍나는 서명이었다.그리고 모든게 한글로 써있었다.심지어 미국차기대통령의 서명까지도.
"우리가 만약에 여길 이주지로 정하게 된다면, 자네들과 충돌할 일은 없을꺼네, 우린4차원적 평행적인 공간의 겹침을 이용해 우리의 생활공간을 지을꺼니 말일세."
뭔 소린지는 모르겟으나 내가 원하던 답은 아니었다.
나는 더이상 못견디고 재차 따지고 들었다.
"아 그러니까 왜 함부로 마늘빵을 드시고 계시냐구요? 기술발전의 끝을 찍었다면서요? 그런데 사람말도 제대로 못알아들어요?
아저씨, 바보에요?? 아 그냥 이쯤하시고 나가세요."
"아 그래,날 알아보는구만, 역시 자네 답군.니크사르!
N. i. c. s. a. r.! 그래 날세, 더스피트 D. u. s. p. i. t.! 천재적인 완벽한 족속의 단하나의 오점이라면 바로 나지.수많은 천재속의 유일한 지진아,군학일계 더스피트라네."
결국,참고있던 분노에게 놈을 물어뜯으라고 명령했다.
"뭐라구요? 사람 잘못 보셧어요,전 니크사르가 아니고요,그게 누군지도 모르겟고요!! ,아니 그리고 음식을 훔쳐 먹다 걸렸으면,
그냥 빨리 사과하고 나가면 되죠!!! 왜 자꾸 헛소릴 해요!!!!
빨리 당장 나가세요!,경찰을 부르겟어요!.
저 이제 무력씁니다!!,
무폭력 평화주의 외계인이라 대걸레로 안맞아 봤죠?!
당장 꺼지세요!!!! 당장!!!!"
내가 대걸레를 들고 소리를 치자,
그 중년의 사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뭔가를 중얼거리며, 굉장히 빈둥 거리는 몸짓으로, 괜히 못이기는 척 자리를 뜬다.
"자네, 많이 변했구만 니크사르, N. i. c. s. a. r.....,자네가 누군지 알아보게.그럼 난 이제 가겟네"
퉁명스럽게, 나는 밖으로 나가는 그의 뒤통수에 대하고 고했다.
"안녕히 가세요!"
그는 밖으로 나가서더니 모퉁이로 막 돌아 서려다 말고
다시 문앞에까지 와서는
"사실,난 우리 종족이 먹을 식품을 조사중이었다네, 이것 참 맛있구만!"
그는 반쯤 먹은 마늘빵을 손에 쥐고 해맑은 웃음을 짓고있었다.
난 더이상, 끓어오르는 분노의 목줄을 잡고있을 수가 없었다.
대걸레로 그를 내리치려고 문앞에 까지 날아갔다,그는 정말로 너무나 깜짝놀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꽁무늬가 빠지게 달아난다.
기분나쁘다.
그가 한 말은 별로 사실 같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중엔 웃기지도 않았다.그리고 그는 이야기의 초반엔 좀 논리적인듯 했으나 후반에 가서는 페이스를 잃고 허우적거리다 나를 화나게 했다.그 아저씨는 그런식의 거짓말을 할꺼면, 지구의 지도자들이야기를 하지 않는게 더 좋았다.그냥 쳐들어올꺼다 했으면 오냐 내가 막아주마 분노의 대걸레를 받아라하고 바로 쫓아내버려서 대화가 길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밤이 깊었다.집에 돌아왔다.
쓸데 없는 말이 자꾸 거슬린다.
"자네 많이 변했구만 니크사르, N. i. c. s. a. r....."
책상위에 하릴 없이 놀고있는 종이에 학교 체육대회때 받은 볼펜으로 n. i. c. s. a. r.라고 적어보았다. 잠깐동안 멍하니 있었다.
순간 머리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이건 아나그램이다!!'
(*아나그램: 글자의 순서를 이리저리 바꿔놓는 암호)
Narcis...숲의 요정 에코의 고백을 뿌리쳤고, 그래서 저주를 받아 물에 비친 자신에 모습에 반해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가 되었다는 그리스신화속의 소년. 나르키소스라고도 하는 그 소년.
나르시스는 자기사랑,이기주의,자기중심주의,자아도취등등 여러가지로 해석된다고한다.그런데 나는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지
영 모르겟다.
그럼, 그 거지 이름도 아나그램일까,
그러나 아무래도 그 거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에잇, 헛소린데 설마 이렇게 깊게 생각해야겠어?
그냥 어떻게 내가 잘 끼워 맞추니까 그럴듯 해 보인, 그런거지 뭐.
그리고 외계인이라면서 왜 지구인의 신화를 바탕으로 이름을 짓겟어...... '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인거 같다.
이제 그만 자려고, 침대에 이불속으로 기어들었다.
'지구라는 작은 혹성에 태어난 생명들이
왜 서로를 증오하며 싸우고 있는가.'
.
오늘은 내가 너무했다.
내일은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겟다.
.
.
1월달 겨울밤은 추웠다.
.
.
.
.
.
오늘밤에도 달은 밝게 떴다.
오리온 삼태성위의 적색 초거성,노랗게 빛나는 베텔기우스와 함께.